몸의 움직임이 생각이 된다
몸의 긴장이나 촉감, 움직임을 마음속으로 불러내는 일은 불가능 하지 않다. 그러나 대개 우리들은 이 상상의 느낌을 포착하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그런 느낌들을 설명적인 언어로만 표현하라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몸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헬렌 켈러 같은 사람의 예가 필요하다.
그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애 덕분에 몸의 언어와 경쟁 관계에 있는 시각적 · 청각적인 정보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1930년대에 켈러는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 스튜디오를 수차례 방문했다. 그때 켈러는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진동을 느끼면서 음악을 '듣곤' 했다.
그녀는 또한 발로 마루판의 진동을 느끼고, 얼굴과 손으로는 공기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무용수들의 춤을 '보곤'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어려운 점은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발레나 그레이엄이 창안한 현대무용에 대한 시각적인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육체적인 지각도 없었다. 켈러는 정상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달리기나 뛰어오르기, 제자리 돌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행동은 시각장애가 있는 소녀에게는 너무 위험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몸에 대한 이미지가 없음을 잘 알고 있던 켈러는 어느 날 그레이엄에게 물었다.
"마사, 도약한다는 게 어떤 거죠? 전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레이엄은 그 질문에 대답해주기 위해 즉시 제자 한 명을 불렀다(그가 바로 머스 커닝햄이다). 그레이엄은 켈러의 손을 잡아 그의 허리에 대보게 했다. 그레이엄은 당시의 정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머스는 켈러의 손을 허리에 붙인 채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스튜디오 안의 모든 눈이 여기에 쏠렸다. 그녀의 손은 머스의 움직임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녀의 표정은 호기심에서 기쁨으로 바뀌었다. 켈러의 얼굴에 떠오른 그 희열이라니. 그녀는 어쩜 이렇게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지?' 라고 말하면서 공중으로 손을 뻗고 탄성을 질렀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켈러는 그레이엄이나 많은 무용수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진실을 감동적으로 확인해주었다. 도약은 생각의 일종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랜 훈련을 통해 그레이엄과 휘하의 무용수들은 움직임이 어떻게 생각이 될 수 있는지 완전히 이해했다. 안무가라면 반드시 몸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안무가 엘리어트 펠드Eliot Feld*는 이렇게 말한다.
"몸으로 안무를 해야지 마음으로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켈러에게 몸으로 생각하기란 전적으로 정신적인 차원에 속 해 있었다. 무용수가 도약할 때 몸의 에너지를 모았다가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그 과정은 켈러에게 어떤 관념이 의식 속으로 갑자기 뛰어 들어오는 양태를 떠오르게 했다. 켈러 자신은 이런 종류의 정신적 도약을 자주 경험했다. 장 콕토는 바슬라프 니진스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몸에는 지성이 있다." 콕토에 따르면 니진스키는 자신이 행한 무 용의 혁신에 대해 말로는 거의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단지 그 누구도 두지 않았던 위치에 발을 두었고, 그 누가 했던 것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도약했을 뿐이었다. 그레이엄 역시 "무용의 논리란 그냥 운동 수준의 그렇고 그런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용이 지적 관 심사의 산물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레이엄의 공책에는 온갖 문장과 상징으로 자신의 춤을 분석한 다양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녀의 말은 춤이란 몸 이 공간과 힘과 시간을 이 용한 것으로서, 순수한 몸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엘리어트 펠드 Eliot Feld 1942- ,미국 안무가이자 예술감독. 아메리칸 발레시어 터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선구자>, <한밤중에> 같은 작품을 발표했다. 1959년, 엘리어트 돌 히친슨 은 육체적 기능이나 숙련을 요하는 창조행위는 몸의 감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모든 자기표현은 결코 언어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연주가, 조각가, 무용수, 외과 의사, 수공예 장인들에게 있어서 창조적인 생각의 발현은 하나의 운동감각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며 느낌은 다양한 근육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손가락은 연주하고 싶어서 근질거리고, 음악은 손에서 흘러나오며, 관념은 펜에서 풀려나온다. 무 용수와 오케스트라 지휘자 의 동작은 그들의 '이념'을 보여준다. 형을 뜨고 싶은 심미적인 욕구는 조각가에게 좀처럼 억누르기 어려운 것이다." 라고 운동기억이 어떤 생물학적인 원리에 입각한 것인지 열심히 찾고 있는 연구자들, 예를 들어 마크 제너로드 Marc Jennerod 같은 사람 들은 지각과 심상, 인식 간의 관계를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몸으로 '느껴야 하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회화나 드로잉, 부식 동판화 작업을 예로 들어보자. 창작행위의 운동적 측면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미술관 벽에 걸린 폴록의 드립 페인팅 drip painting ** 은 그저 관람용 그림 같지만 작품을 단순히 눈으로만 훑고 지나가서는 안되고 반드시 '느껴야' 한다. 폴록은 자신의 그림을 제작할 때 캔버스를 이젤에서 풀어내 마룻바닥에 깔아놓는다. 이것은 종래의 미술가와 재료의 관 계에 변화를 가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말 그대로 캔버스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물감을 흩뿌려댄다. 캔버스는 그가 하는 몸동작의 기록이 된다. 이른바 액션 페인팅 Action Painting이다. 만일 관람객이 폴록의 그림 작업에 결부된 이런 육체적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폴록의 그림을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추상화가만이 몸으로 생각하는 유일한 예술가들은 아니다.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의 교사였던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은 자신이 그리는 것을 동작과 촉감으로 느꼈다. 이텐은 학생들에게도 그런 느낌들을 작품 속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가 1921년에 쓴 글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 앞에 엉검퀴가 있다. 내 근육신경은 마치 몸이 뜯겨나가는 듯한, 혹은 발작적인 움직임을 경험한다.
내 감각들, 촉각과 시각은 엉겅 퀴의 날카롭고 뾰족한 형상(을 따라 움직이는 동 작)을 기록한다. 내 정신은 이 꽃의 진수를 목도하고 있다. 나는 엉겅퀴를 경험한다. 고유수 용감각적 사고는 조각에서 보다 분명 해진다. 노구치 이사무의 말에 따르면 진정으로 조각품을 보려는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만 그 형태를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록의 모습, 1950년경, 한스 실로 많은 조각가들에게 매체에 대한 사랑은 몸과 자신들이 다룬 재료 간의 상호작용에서 연 유한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조각에 끌린 이유가 작업에 수반되는 몸의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원래 화가로 출발했지만 곧 회화의 평면성이 싫어졌다. 나는 작품을 손으로 만지고 싶었다" 라고 말한다. 찰스 시몬스 Chales Simonds가 조각가가 된 것도 어린시절 공작용 점토를 가지고 놀았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나는 흙덩이의 일부를 떼어내어 근육질의 레슬러가 드러누운 모양을 만들었다. 점 토를 주무르면서 내가 느낀 홍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점토의 느낌, 그것과 내가 이어져 있다는 감각,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떤 조각가들은 이 육체적인 지각을 고양시켜 조각 자체로 전환 시키기도 한다. 아마 가장 유명한 사례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일것이다. 그는 조각이 안에서 밖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로댕은 점토로 형을 뜨기 전에 조각하고 싶은 주제를 여러 번 그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눈으로 보는 것을 손이 어느 정도까지 느끼고 있는가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형을 뜨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필요 함은 물론, 인체의 모든 부분에 대한 심원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인체가 가지고 있는 선들을 통합해서 나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로댕의 유명한 조각작품 <생각하는 사람 Le Penseur>은 자신의 고유수용감각적 상상력에 육체적인 형태를 부여한 것이다. 로댕의 말을 빌자면 모든 시인과 화가, 발명가를 상징하는 한 벌거벗은 남자가 긴장감을 주는 자세로 바 위 위에 앉아서 생각에 빠져 있다. 로댕은 "내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머리, 찌푸린 이마, 벌어진 콧구멍, 앙다문 입술만이 아 니다. 그의 팔과 등과 다리의 모든 근육, 움켜쥔 주먹, 오므린 발가락도 그가 생각 중임을 나 타낸다" 라고 쓰고 있다. 헨리 무어 역시 이른바 '심원한 느낌'을 가지고 조각작업을 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의 작품이 추상적이고 비구상적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내적인 생명력과 스스로 감지한 형태의 자체 형상화와 분출이었다. 압출되는 형태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인 것이다
몸 전체를 가지고 '음악의 형상'을 춤으로 표현
무어는 이런 욕망을 바탕으로 다양한 유기물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그는 뼈에 관심이 많았다. "뼈는 모든 생물체의 내부구조다. 내가 에서 몸을 밀어 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뼈다. 다리를 구부리면 뼈 위로 무릎이 팽팽하게 당겨지지 않는가. 동작과 에너지가 발원하는 지점은 뼈에 있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무어는 몸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이 홍미를 느끼는 형태의 내적인 힘과 압력을 자주 느껴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세를 한번 잡아보는 것이 몸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하곤 했다. 이러한 사고는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 가 된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전체 동작의 일부로서의 내부 골격을 '느껴' 보라고 했다. 그녀는 제자에게 헨리 무어의 구멍 뚫린 조각품처럼 움직이라고 다그쳤다. 이 말은 뼈 안의 공동空洞을 통해 공기가 드나드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음악 또한 고유수용감각적 사고에서 태어난다. 잭슨 폴록의 드립 페인팅 작품을 그냥 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음악 역시 그것에 수반되는 육체적 행위를 느끼지 않고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보스턴 교향악단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Ozawa Seiji* 는 지휘를 "몸 전체를 가지고 '음악의 형상'을 춤으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격렬하고 역동적인 지휘를 통해 정념passion과 동작을 소리에 녹여내고 있다. 연주자들 또한 '몸의 상상력'으로 연주를 한다. 예후디 메뉴힌 Yehudi Menuhin**에 따르면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바이올린을 어떻게 쥐고, 활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서 있어야 하 는지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조지 앤틸 George Antheil 역시 피아니스트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근육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느린 트릴을 연습하고 나면 부푼 양팔이 넙적다리만 해져 평소 크기의 두 배, 세 배가 되거 나 그만큼 커져보인다" 라고 그는 말한다. 앤틸은 콘서트 연주를 15 리운드 권투시합에 비유한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고 땀을 많이 흘린다는 얘기다. 문제를 온몸으로 '느끼는' 과학자와 수학자들 놀랍게도 음악가들이 활용하고 있는 이러한 근육적인 느낌이나 육체적인 감각, 손기술, 머릿속 연주 등은 과학적 사고에서도 중요 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보면 많은 저명한 과학자들이 탁월한 화가 나 음악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매우 당연해보인다.
과학자들은 실 험실 기자재를 '연주'하며 실험작업에 필요한 운동감각을 키운다. 발생학자인 C. H. 워딩턴C. H. Waddington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과학실험과 그림 그리기는 공통된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근육과 관련이 있을 테지만, 일단은 물질을 다루는 능력 을 말한다." 실제로 MIT의 금속학자 시릴 스탠리 스미스는 금속구조에 대한 감 을 키우기 위해 그래픽 아트를 일부러 공부했다. 여기서의 '감'이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인데, 그가 1972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오래전에 합금을 개발하던 때의 일이라네, 나 는 그때 뭔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는 느낌을 받았어. 무슨 말이냐면 내가 실제로 어떤 종류의 합금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왔다는 말이지. 경성, 연성, 전도성, 가용성, 변형성 등 금속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성질이 나의 내부에서 글자 그대로 감각을 타고 느껴졌다네." 이 말은 앞서 언급했던 아인슈타인과 파인먼이 경험한 고유수용감각적이고 운동감각적인 형상화 사례와 매우 비슷하게 들린다. 스며 스의 과학작업은 실제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취들 에 대한 근육의 느낌과 균형 잡힌 구조에 대한 미학적 느낌"에 의지 하고 있다고 한다. 물질에 대한 근육감각이나 촉각은 기계를 조립하고 건물과 구조물을 세우는 데 필수적이다. <엔지니어링과 마음의 눈Engineering and the Mind's Eye>이라는 책을 쓴 유진 S. 퍼거순Eugen S. Ferguson에 따르면 엔지니어가 구조물을 설계하거나 기계를 조립할 때는 기계학 교과서 에서 배운 지식보다 이런 감각에 더 많이 의지하게 된다고 한다. "대형 증기터빈 발전기 같은 기계를 설치할 때는 시각적인 것 외에도 촉각적이고 근육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런 감각적 지식과 기계학적 지식을 통합시켜 필요한 장비와 기술, 판단력을 적절히 운용할 수 있 을 때 비로소 엔지니어의 설계대로 일이 이루어진다" 라고 그는 말한 다. 기계공이나 목수, 여타 기능공의 작업은 손지식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손지식이란 것은 이를테면 나사를 얼마나 조여야 제대로 조인 것이며, 얼마나 돌려 깎아야 적당한 나사선이 만들어질 것인지 아는 지식을 말한다.
손지식은 또한 나무나 쇠를 부러뜨리지 않고 얼마나 구부릴 수 있는지, 또 유리를 녹여 붙이거나 불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 지도 가능하게 해준다. 이런 지식은 책에 쓰여 있지도, 청사진에 나타나 있지도 않다. 오로지 몸을 써서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이를 습 득할 도리가 없다. 근육과 촉각, 손재주에 의한 '생각하기'는 생물학이나 화학, 물리학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학에서도 마찬가 지다. 수학자인 켈비스 잰슨스 Kalvis Jansons는 난문제를 풀 때 엉킨' 죄 매듭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이 매듭을 말로 표현하거나 기억하 기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언어적 방식으로 접근하면 복잡한 매듭 간에 나타나는 유사성을 포착해낼 수 없다" 라고 말한다. 잰슨스는 난독중이 심했기 때문에 문제를 풀 때 기호로 된 수식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공간으로 환치해 내적인 몸의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마치 장님이 나무난간을 만지면서 느낌으로 길을 찾는 것 과 비슷하다. 그에게 있어서 난간의 나무 가로대와 콘크리트 기동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잰슨스는 실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손을 놀리지 않고도 마음속으로 매듭의 느낌과 그에 결부된 손가락의 움직임을 상상했다." 수식 기호를 쓰지 않고도 마음으로 수학문제들을 푼 것이다. 스타니슬라브 울람은 수학자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계산을 하면서 "숫자와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추론과 결합된 촉감으로 처리한다" 라고 한다. 로스앨러모스 LOS Alamos *에서 원자폭탄 연구를 할 때 그는 원자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고유수용감각적으 로 분명하게 상상해냈다고 한다. "나는 시각적 혹은 촉각적인 능력이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주된 것임을 알았다. 또한 문제에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어떤 물리적 상황을 상상해내는 방법도 깨닫게 되었다. 만일 누군가 열 개 정도의 방사나 핵의 상수 constants 를 '느낄' 수 있다면 그는 소립자의 세계를 마음속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으며, 이 그림을 입체적이고 정성적 定性的, qualitatively 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라고 그는 술회하고 있다. 우리(저자들)는 대학원 시절 한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이름은 오래전에 잊어버렸지만 그는 울람처럼 양자방정식 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세미나 도중에 누군가가 발표한 방정식이 원자의 상호작용을 너무 느슨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는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고, 또 누군가의 발표에서 원자들 간 의 간격이 지나치게 좁혀진다 싶으면 당장 화장실이라도 가야 할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서 발표자들은 그가 입을 떼기 훨씬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발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을 수 있었다.
정관웅 본지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