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五里霧中)
김현임(수필가)
국제적 망나니인 김정은이 또 어떤 짓거리를 벌일지, 참으로 짙은 안개 속이다. 최근 넉 달째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도발은 작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시작됐다. 이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성공 한 달 뒤 대륙탄도미사일급 장거리 로켓을 쐈고, 2월엔 1, 2차 때보다 폭발력이 커진 3차 핵실험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날이면 날마다 우리를 향해 갖은 전쟁용어를 들먹이며 전쟁도발을 하겠다는 협박이다. 그 여파다.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 전쟁괴담이 요란하게 퍼진다. 올 3월엔 ‘북미사일 서울 공격준비’, ‘학교휴교령’ 같은 3차 대전 임박설이, 4월엔 ‘연평도 포격으로 62명 사망’이라는 허위보도도 퍼졌다.
무작정 달랠 수도 그렇다고 수수방관(袖手傍觀), 너하고 싶은 대로 지껄여라, 오만방자한 북한의 태도를 묵인할 수도 없다. 어린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했던가. 문득 떠오른 이웃나라 인기 축구선수의 이야기다. 자꾸만 소음을 일으키는 옆집을 거액을 주고 아예 사 버렸단다.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어대는 이웃을 넘어 걸핏하면 흉기를 들이대며 죽이겠다 협박을 되풀이하는 아주 위험스런 이웃인 북한,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제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라던가.
‘고아원 원장의 아들(The Orphan Masters Son)’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담 존스의 소설 제목이다. 북한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주인공인 박준도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줄거리다. 엄마는 본 적도 없다. 어린 시절 내내 굶주림에 지쳐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처지인데 평양에서 전송된 목소리에서는 이 모두 거룩한 ‘고난의 행군’이라 둘러댄다. 거짓선전에 세뇌된 준도는 군대에서 충성심을 인정받아 일본인 납치라는 비밀임무를 맡게 된다. 이후 뛰어난 납치 공로로 집중 영어 교육을 받고 특수정보요원 팀으로 발탁된 준도다. 이렇듯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이윽고 준도는 이제까지 자신을 옭죄던 사상의 허구를 깨닫는다. 무너진 정체성과 누를 길 없는 사랑에 이제껏 꼭두각시처럼 통제해 온 북한 체제에 분연히 맞서는 게 이 대작의 에필로그로다. 영어에서 준도(John Doe)는 보통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니 작가는 ‘준도’를 통해 북한 내의 대다수 사람들의 처참한 실상을 널리 알리고 싶었단다.
그 굳건하던 중동의 부패권력도 하나 둘 무너지는 지금. 여전히 시대를 역행하는 북한의 시계가 신기하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까지 대를 이은 권력세습은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다. 신화에 가깝게 각색한 우상화, 그 두 어른(?)의 분위기 계승을 위해 김정은은 학창 시절 호리호리했던 몸매를 지금의 비곗덩어리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선천성 간경화증까지 선조들에게 물려받았을까. 뚱뚱 부은 간이 배 밖으로 돌출할 지경에 이른 간장병 환자가 무엇이 두렵겠는가. 김정은이라는 하룻강아지가 세계를 상대로 깡! 깡! 깡! 짖어대는 격이다.
‘오리(五里)보고 십리(十里)간다.’는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큰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한다는 속담이다. 하지만 애써 나선 그 길이 자욱한 안개길,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니 어찌할꼬! 환관이나 외척이 정치를 주무르던 후한의 한제 때다. 성도 출신으로 장패라는 학자가 있었다. 장패도 존경을 받았지만 그의 아들 장개는 춘추, 고문 상서에 능통하여 그의 문하에 백 명의 제자가 있을 정도였다. 장패에 이어 장개로 승계된 학문의 맥, 하여 수레와 말이 거리를 메우고 장개를 옹위하는 무리들이 황금빛 물고기의 비늘처럼 번쩍거렸다. 조정의 환관들과 임금의 친척들까지도 그와 교분을 갖기 위해 애를 썼다. 학문뿐 아니라 성품도 부전자전(父傳子傳), 장개 역시 아버지처럼 떠들썩한 교제나 이득을 매개로 한 일체의 거래를 꺼려 인파를 피해 낙향했다. 조정은 장릉의 지방 장관으로 임명했으나 거절하고 번거로움을 피해 홍농산 깊은 골짜기로 은거한 장개, 그러나 그가 머무는 곳마다 학자들이 운집해 언제나 그 집 앞은 문전성시(門前成市)로 큰 저자를 이루었다. 그가 훗날 머물었던 화음산 남쪽 기슭에 아예 공주라는 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니 그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장개는 행함에 있어서는 원헌 공자를, 아량은 자사를, 그리고 지조에 있어서는 이제와 숙제에 버금 간다”
새로 등극한 순제 임금은 이런 칭송을 하며 예를 다해 장개를 맞아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럴수록 장개를 향한 천거의 손길은 더욱 기승을 부렸지만 그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학문만 출중한 게 아니라 도술도 뛰어난 장개는 방술을 써서 오리무(五里霧)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애초 오리무로 출발한 말이지만 나중에 중(中)이 붙었단다.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 스승의 흔적을 찾으려 쩔쩔 매며 헤매는 제자들에게서 파생된 단어이니 가운데 중(中)이 무리 중(衆)으로 착각될 뻔도 하리라. 이때 아주 고약한 배우란 자가 등장한다. 애초 배우는 장개를 찾아 도술을 전수받으려 했으나 만나지도 못했다. 홀로 어렵사리 터득한 방술로 배우는 겨우겨우 3리에 이르는 안개를 피우는 재주를 얻었다. 하지만 재주를 못되게 활용했다. 범죄혐의가 발각돼 체포된 배우는 엉뚱하게도 장개에게서 그런 술책을 배웠노라 누명을 씌운다. 2 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중에도 변함없이 경서를 탐독하고 성서의 주를 짓던 장개. 매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마침내 사실무근으로 석방되고 또 다시 벼슬자리에 천거되었으나 이번에도 사절한다.
‘세상은 안개 속을 헤매듯 외롭다’했던 건 헤르만 헷세다. 장개의 오리무중이 펼쳐진 듯 사방 5리의 안개에 갇혀 도대체 동서남북의 방향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현 시국이 답답하다. 잠잠해 지는가 싶으면 또 다시 도지는 북한의 히스테리, 못된 심성에 모두가 외면하자 따돌림의 극에 달한 아이랄까. 북한이란 철부지의 팽배한 심술에서 기인한 발작은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과자로도 매로도 쉬이 그칠 것 같잖아 대책에 갈팡거리는 형국이다. 산등성이를 휘감은 운무(雲霧)에 진보도 후퇴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중국의 어느 황제는 지남철 수레를 만들어 방향을 탐지했다던가. 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정국을 시원히 타개할 비법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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