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길목에서
어버이의 사랑과 자녀의 효
김영배 (호당, 의학박사, 전 중앙의원)
푸른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뜻있는 가정의 달이다. 근자에 <사랑과 효>의 의미를 되새기며 실천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런데 해마다 이날을 보내면서 느낀 것도 많으며 마음이 편치 않는 것도 많다. 여기서 부모의 자식 사랑이나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의 중요성과 가치를 새삼스럽게 비교하고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들로서도 서운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어른들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너무 크다.
어린이날에는 어쩐지 부모의 사랑이 지나쳐서 넘쳐 보이는 것 같으나, 어버이날에는 자식의 효가 세월이 갈수록 형식저이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미래이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생을 자식과 가정을 위해 봉사해 온 부모에 대한 효도도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물론 세상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어서 효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이 생존 논리처럼 강조되고 있는 오늘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변화해서는 안될 진리만큼은 변화로부터 그 본래의 큰 뜻을 지켜나갈 책임도 있다.
“사랑과 효”는 변해서는 안 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요 우리의 삶에 절대 필요한 덕목이다. 사랑과 효가 넘치는 가정은 인정과 평화가 넘치고, 사랑과 효가 메마른 가정은 증오와 불화가 끊이지 않는다. <폐륜아 라도 좋으니 튼튼하게만 자라다도> 라는 농담 아닌 악담이 한 때 유행할 정도로 자식에 대한 사랑은 넘치는데 어버이에 대한 효는 날이 갈수록 퇴색의 도가 높아지니 안타깝다.
옛날 원효와 그 아들 설총에 대한 이야기다. 설총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산사로 요서공주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행장을 차리고 아버지께 하직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원효는 길을 떠나려는 아들에게 마당을 쓸고 가라고 일렀다. 때는 가을이라 마당에는 노란 은행잎이 푹신하게 깔려 있었다. 설총은 아버지 말씀대로 은행잎을 말끔히 쓸었다. 그리고 다시 하직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원효는 마당을 잘못 쓸었다면서 다시 쓸라고 하면서 원효는 <낙엽이 한창 떨어지는 가을에는 그렇게 마당을 깨끗하게 쓰는 게 아니라, 가을마당을 쓸 때는 낙엽은 약간 남겨 두어야 하느니라, 너는 앞으로 가을마당처럼 여유 있게 살고 가을마당 쓸 듯 서두름 없이 학문을 해야 하느니라.>하고 일렀다 한다. 장성한 설총을 처음 만난 원효는 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 마당을 쓸라고 하였던 것이다. 원효와 설총의 이 짧은 이야기 속에도 효와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그 깊은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부터 엄한 부모 밑에서 효자 나고, 조동으로 키우면 불효자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옛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를 하나로 생각하며 사랑과 효는 한 뿌리라고 여겼다.
효 없는 사랑, 사랑 없는 효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면서 인간을 실용적 가치로 따지는 서양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어느 사이엔가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말았다. 효의 생명은 욕심의 집착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마음을 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욕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욕심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믿음은 깨지고 사랑과 희망은 변질되며 효 또한 생명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본디 마음인 항심을 지키고 사는 한 인간은 욕심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에 변화를 원하지 않게 된다. 변화보다 오히려 본질에 충실하고자 할 것이다.
세상이 변화하지 않는 본디 모습 그대로의 생명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가정이란 <작은 천국> 이 자식을 사랑한 만큼만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그 가정은 신록의 아름다움처럼 <작은 천국>이 될 것이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