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교양 칼럼 121
어느 두 노인의 현실적 비극
인터넷에 오른 어느 한 노인의 풍수지탄(風樹之嘆)같은 기막힌 유언장의 내용입니다.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외로운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 되었다. 그런대로 장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튼한 자물쇠를 채웠다. 그 후 아들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가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이 서로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다. 궁금해진 아들 둘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조사해보려 했으나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져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 금속들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한 아들이 그래! 이건 아버지가 평생 모아놓은 금은보화 일거야! 그러면서 그때부터 둘은 서로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잘 모시기로 했다. 그러던 얼마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들들은 드디어 그 궤짝을 열어봤다. 깨진 유리조각만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아들은 화를 내었다. “......당했군! ” 그리고 궤짝을 멍하니 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왜? 궤짝이 그래도 탐 나? 그럼 네가 가져버려라!” 막내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다. 얼마 후 막내아들의 눈에 맺힌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작은 아들은 그 궤짝을 자기 집으로 옮겨왔다.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궤짝을 왜 집에까지 들여왔느냐? 귀신 나올 것 같다며 짜증을 냈다.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조각만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그것을 읽다가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소리에 그의 아내가 급히 달려갔다. 손주 아들딸도 달려왔다. 「첫째. 나는 아들을 가졌을 때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때부터 30여년 동안, 수 천 번, 수 만 번 그들은 나를 울게 하였고, 또, 웃게 하였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그들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같았던 기억,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 지금은 사금파리 ․ 유리조각 같은 기억, 아 아!! 그래도 내 아들들만은… 나갖지 않기를… 그들의 늘그막이 나갖지 않기를 바랄뿐… 」아내와 손주 딸도 그 글을 읽었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들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들 집안에서는 자기를 낳아 준 부모의 고마움과 효도(孝道)의 참된 길을 알게 되었다.
다음 또 한 가지를 더 실어 봅니다. 제목은 ‘촌녀(村女)’입니다. 여자 홀몸으로 힘든 일을 하며 판사 아들을 키워낸 장한 노모는 밥을 한 끼 굶어도 배가 부를 것 같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과 오뉴월 폭염의 힘든 농사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나는 등 세상을 다 얻은 듯 해 남부러울 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걷이를 이고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의 아들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했으나 이날따라 아들만큼이나 귀하고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 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노(村老)의 눈에 신기하기만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됐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家計簿)였다. 부자 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며느리가 쓰고 있는 가계부를 보고 감격해 그 안에 들여다보니 각종 세금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 촘촘히 써 내려간 며느리의 살림살이에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녀 10만원’이라는 항목에 눈이 멈췄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쓰여 있나? 궁금증이 생겼으나 1년 12달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물건을 산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들 가족에게 줄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고 간 한해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 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길에 올랐다. 가슴이 터질듯한 기분과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금지옥엽 판사아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왜 안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 배어있었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아니 왜! 촌년이 거기 어디서 자...아!“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며 말을 잊지 못했다. 노모는 ”무슨 말?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잘 알게다“며 수화기를 내 팽개치듯 끊어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거니 판사 집에서 큰소리난다 소문이 날거고, 때리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 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날 며칠을 무척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됐다. 그런 어느 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나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를 하게 됐다. 처갓집에 도착해 준비한 보따리를 내놨으나 사위판사는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들어 오는가?”라는 말에 사위가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라고 대꾸하자 그 자리에 장모는 돌하루방처럼 굳은 채 서 버렸다.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고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 찾아 간 사둔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고 빌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난 다음 달부터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별도로 자리했다. 이 아들 판사를 보면서 지혜와 용기를 운운하기보다는 역경대처 기술이 능한 현실사회의 판사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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