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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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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청자축제장에는 정수사와 일속산방도 있다
청자축제 때를 이용한 강진의 가볼만한 곳 1등

청자축제와 함께하는 남도답사 1번지 강진기행

 

강진청자축제장에는 정수사와 일속산방도 있다

청자축제 때를 이용한 강진의 가볼만한 곳 1등

 

정수사

정수사

정수사는 청자축제장에서 10여리 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수사까지 가는 동안 양켠의 산에는 청자가마터가 있어 고려시대 때 180여기의 가마터에서 불을 지피던 모습을 상상하면 역사여행이 된다.

천태산 자락에 위치한 정수사는 신라말 애장왕 원년인 서기 800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골짜기 계곡이 절 앞까지 흐른다하여 쌍계사라 하였다가 조선후기인 1622년 정수사로 개칭하였고, 내암이 26동, 외암이 22동이나 되었다.

정수사 수현스님
“임진왜란이 일어나 서산대사는 승병을 모으기 위해 전국에 통문을 보냈었지요. 승병은 평양성을 회복하는 등 공을 세웠는데, 임란이 끝나자 임금 선조는 승병들의 노고를 위해 전국에 세군데 사찰을 정하고 편히 쉬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여수 흥국사와 밀양 표충사, 그리고 정수사가 그 대상이었는데, 워낙 많은 승군들을 묵게 하려다보니 내암 26동, 외암 22동이 된 것입니다. 암자 또한 9개나 되었어요”

정수사 주지 수현스님(74)의 말씀이다.

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수하 염걸(廉傑) 장군이 왜병이 쳐들어오자 두 아우 서(瑞)와 경(慶), 외아들 홍립(弘立)과 함께 정수사 골짜기로 유인하여 섬멸한 전승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정수사가 유명한 것은 청자를 굽던 도공들에게 선지식(禪智識)을 500년이나 전하던 곳이다. 도공들이 자주 찾아와 부처님의 자비로움 속에서 정신적 수양은 물론 고려청자를 잘 만들 수 있도록 기도를 올리던 사찰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청자축제 때면 무명도공을 위해 추모제를 지내온 곳이다. 한 때는 청자조합 조합원들이 고려시대 도공옷을 입고 혼불을 붙인 후 축제장 가마터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두 해 전부터서인가 그 행사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게 아쉬움이 남는 수현스님이다.

수현스님은 본사인 대흥사에서 20년을 보내면서 총무원에서 4년간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수사를 지켜온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이 다 되어 간다.

“정수사는 청자의 역사와 함께 해온 사찰입니다. 천년도공들이 혼이 담겨져 있는 곳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무명도공 추모제를 지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천년도공의 얼이 담겨 있는 사찰 정수사.

그래서일까. 천태산과 백적산의 산세 또한 푸른 기운이 질질 흐르는 듯해서 눈까지 시원하다. 축제기간동안 정수사에서 땀을 식히며 속진의 때를 잠시나마 벗겨보는 것도 이 여름에 진짜 휴가가 아닐런지. 특히 정수사는 다산이 다녀갔고, 다산의 1등 제자 황상이 자주 드나들며 스님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일속산방

일속산방이란 말은 좁쌀만한 방이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다산의 1등 제자 황상은 좁쌀만한 크기의 방을 만들고 유인(幽人)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소동파, 한유의 시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다산의 시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닌 명작을 바로 일속산방에서 썼다. 나중 추사가 극찬을 했던 그 시대의 최고의 시인 황상이 살았던 곳.

다산은 유인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황상유인첩>을 통해 일러주었고, 황상은 다산이 해배되어 강진을 떠나자마자 전답을 동생에게 줘버리고 백적산 아래에 둥지를 틀었다. 그래서 스승 다산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했던 곳.

이런 일속산방은 이번 청자축제 때를 이용해 가볼만한 강진의 1등 유적지이다. 지금은 팻말 밖에 없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당대 최고의 시를 쓴 황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나중 다산의 아들 학연과 함께 정황계를 맺어 우의를 가지기까지 해 황상의 시적 학문적 깊이는 놀라울 정도이다.

일속산방은 항동마을에서 왼손쪽으로 가는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희미하게나마 길이 나 있고 1km 남짓 되므로 그리 멀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왜 황상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생각해 볼만한 땅이다. 바로 눈앞에는 천태산과 백적산이 가로 막고 있다. 웅장한 산세이다. 발밑에는 훈정강이 흘렀고, 집 뒤에는 야트막한 야산이 앉아있어 기대인 듯 살 수 있었다. 천하명당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속산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다산의 시세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고, 중국의 이태백이나 소동파에 비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시인 황상이 살았던 곳, 일속산방. 세 가지가 둔하였지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며 또 부지런한 삼근계(三勤戒)와 피골삼천으로 이겨낸 강진의 최고의 시인이자 대한민국의 최고 시인이 살았던 일속산방을 엿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또 다른 역사기행이 될 것이다.

황상은 그렇게 다산의 말씀대로 살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았으며 유인의 삶을 끝까지 지켰다. 그리하여 시로써 독보적 세계를 열었으니 그의 행적을 그린 책들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하자면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쓴 <삶을 바꾼 만남>이다. 그 후 학자들은 황상에 대한 논문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연구하고 있는 중이며, 강진군에서는 올해 일속산방까지 임도를 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자취를 볼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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