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 32
자위부은(子僞父隱)
김현임(수필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압수수색은 짜고 치는 고스톱’ 하니 성과를 기대하지 말란다. 그러니까 국정원 사태로 대표되는 온갖 국정난맥을 향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돌리기 위해 꺼낸 비장의 카드라는 지적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못한 일을 하니 칭찬 받아 마땅하다는 건 소수의 의견일 뿐 전두환 대통령의 벌금추징 엄포는 현 정부의 권모술수(權謀術數策)에 불과하다는 주장들이 많다. 성동격서(聲動擊鼠)라고 칼 빼는 소리만 요란했지 그 칼로 내려치는 치는 건 고작해야 생쥐 한 마리다. 두고 봐라,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거란다. 설마 그럴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금 추징에 따른 일가의 재산 추적, 그 환수 처리를 놓고 설왕설래 말도 많다. 아닌 게 아니라 통장 50개에 분산된 자금을 발견했노라고 하루는 우리의 귀를 시원케 하는 낭보를 전하였다가 또 하루는 ‘고단한 계좌 추적, 귀금속도 환수 쉽지 않을 듯…’ 운운하며 그를 번복하니 지지부진한 처리과정에 영락없이 격화소양(隔靴搔癢), 가죽신발 위로 가려운 곳 긁는 답답함에 빠진다. 이 난국을 어찌 해결해야 할까? 명쾌한 해답은 전 국민을 상대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이는 전씨, 그의 자식들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라. 겨우 사오십 대에 불과한 그들이 단숨에 몇 천 억대를 주무르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가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까닭을. 이는 코흘리개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난이도(難易度) 최하위(最下位) 답변이 아닌가.
해마다 5월이 되면 은근히 그의 안위가 걱정 되는 사람. 겨우 글자를 깨친 어린아이조차도 시를 지어 충고하는 사람, 최근 대한민국에서 통장에 겨우 29만원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최하위 계층의 극빈자다. 그런데 하룻밤 투숙에 200만원을 호가하는 호텔에서 숙박한다니 경제관념 전무한 망발기 다분한 노인인 그 사람은 천억 대 부자 아들들을 둔 범법자다. 거액의 벌금이, 세금 미납금이 뒷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죄인 신세다. ‘30억은 알토란같은 내 돈이니 건들지 말라’는 늙은 아내의 서슬은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전 국민 위에 군림하던 영화(榮華)를 함께 누릴 때는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였으나 재산에서만은 예외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밤이면 밤마다 뇌리를 짓누르는 벌금에 끙끙대며 전전반측(輾轉反側), 신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지아비의 고통을 이렇듯 남몰라 할 수는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파렴치한 노인의 자식들은 하나 같이 알부자다.
며칠 전인가. 쓴웃음이 나왔다. 전 씨 아드님들이 운영한다는 ‘블루 아도니스’, ‘허브 빌리지’라는 이름들에. 그렇다면 미소년 아도니스를, 청정 허브를 사업 명으로 내세우는 그대들이여. 다시금 묻는다. 불과 십 수 년 전 당신들의 아버지가 대국민들을 상대로 즐겨 쓰던 서두 ‘국민여러분’, 입만 벌리면 친애해 마지않는다고 강조하던 국민들을 향해 이런 저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초라한 몰골을 보이고 있다. 그런 아버지가 그대들은 가엾고 부끄럽지도 않은가? 동물모양의 금덩이, 다이아몬드 등등의 귀금속, 여기 저기 친인척 명의의 땅, 숱한 미술품… . 전하는 재산목록 헤아려 듣기도 짜증이 난다. 자타가 공인하는 출판사가 고작해야 850 여 만 원의 순수익을 올렸다는 명백한 증거인 회계장부이다. 그런데 그를 부정하며 천문학적 숫자의 재산을 그 발판으로 늘렸노라는, 제 아비 빼닮은 맏아들의 뻔뻔한 대답도 가증스럽다.
동산, 부동산, 해외 재산의 세 줄기 수사를 하겠다고 한 검찰은 만약 지금이라도 자진납부를 하면 아량을 베풀어 모든 수사를 중단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발표했다. 그것도 우리를 경악에 빠트린다. 전 국민을 상대로 벌인 사기극, 그 엄청 난 부피의 죄가 말끔히 씻겨 벗겨지는 기적, 그런 특혜가 어찌 가능한가. 이러니, 정말 이러니
“천하의 죄인 전두환, 노태우는 버젓이 살려두고 왜 애꿎은 우리만 잡아 들이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들먹이며 저 악명 높은 지존파마저 일갈했던 거다.
부자지간의 천리인정(天理人情)이라. 자식은 아비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위증을 하고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사실을 숨긴다는 현대판 자위부은(子僞父隱)이 눈물겹다. 자로부미(子路負米),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가난하게 살면서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이르는 말 아니던가. 수 천 만 원 대의 재산으로, 아니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를 배출한 것만으로도 명실상부 로열패밀리다. 그 명문가가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의 손가락질 받는 조롱감으로 전락했다. 이는 국가적 망신이다. 진나라 환원이 ‘사나이가 백 년의 향기를 남기지 못할 거라면 백 년의 악취라도 남겨야 한다’며 반역을 꾀해 왕이 되려다 죽었다던가. 유방백세(遺芳百世)는 쉬운 일 아니지만, 당신들의 아비가 유취만년(遺臭萬年), 천추만세에 지울 수 없는 고약한 악취를 남기는 것만은 피해야하지 않을까.
컨설팅 1회 당 2억 5,000만원을 받는다는 리더십의 세계적 대가인 골드 스미스, 그에 따르자면 맨 먼저 ‘자신이 95세 노인이란 상상을 하라’ 권했다. 구순(九旬)도 훌쩍 넘긴 당신이니 그럴 때 당신은 바로 현재 난감한 고민에 빠진 당신에게 무슨 조언을 할까? 그것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조언이란다. ‘타인이 건네는 솔직한 조언을 깊이 새겨들어라. 그 어떤 지적에도 절대로 화를 내지 말고 그걸 받아 들여라. 자아와 자존심? 그런 건 버려라.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물어라.’고 귀띔했다.
방금 들어 온 뉴스 속 ‘마흔 초입 전씨의 3남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1,000억원 상당의 와이너리를 소유했다’는 소식에 이 땅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 젊은이들이 느낄 박탈감을 생각해 보라. 빈 화살도 아니 맞는 것만 못하다 했다. 좋은 일을 하는 집안엔 경사가 생긴다는 적선가필유경(積善家必有慶)이 어찌 한 집안에만 국한 될까. 남을 칭찬해 제 복을 짓는다(與人爲福)니 우리 모두 되도록 욕은 삼가며 살고프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를 칭찬해 얻는 복 쪼가리, 그 이삭은 두고두고 이 나라의 귀한 복의 씨앗이 될 테니까.
‘인생은 배우처럼 활개 치다 사라지는 것, 의미가 없다. 꺼져라! 짧은 촛불! 무대에서 한동안 안달하며 소음, 광기, 가득한 이야기를 백치처럼 지껄이다 사라지려니 의미는 전혀 없다’
섹스피어의 멕베스 대사 중 한 대목이다. 부디 부디 전 씨 세 아들의 머리 맞댄 조속한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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