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가시고기, 문어와 같은 인생사 1
자식들도 이젠 남이다.
이형문(수필가)
벼가 익어가는 한여름 논두렁에 나가보면 수렁이나 논길에 서식하는 ‘우렁이’를 많이 봅니다. 어미가 알을 깐 후 새끼들이 다 성장하도록 어미 몸에 붙어 살을 뜯어먹으며 성장하는데 다 뜯어 먹힌 어미는 녹갈색 빈껍데기만 물위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지요. 또, 냇가 실개천 모서리에 늘어진 버들가지 나무아래 늪지에서 많이 서식하는 ‘가시고기’는 어미가 알을 까고 어딘가로 떠나버린 그 자리에 아빠 가시고기가 대신하여 새끼들이 다 성장하도록 자식들을 보호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몸마저 다 뜯어 먹히고 일생을 마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큰 바다 속 문어 또한 가시고기같이 자기 살을 자식들에 다 뜯어 먹히고 난 뒤 죽게 되면 물살에 떠밀려 해변 갯가에 까지 밀려와 흐물흐물 떠다니는 문어발을, 마지막엔 해삼들이 가득 붙어 있는 모습을 필자의 어린 시절 고향 해변에서 자라오며 자주자주 봐 왔던 기억을 해 봅니다.
그같이 특히 우리나라 옛날 부모님들도 마치 자식들을 위해 한 평생토록 희생하며 살아가는 우렁이나 가시고기, 문어와 같은 삶의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이 최근 2012년에 발표된 통계로 세계 제 1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젠 우리 부모님들도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그런 의식구조로 부터 늦은 감은 있으나 바꿔야 할 시대인 것 같습니다.
자살하는 노인들의 이유를 알고 보니 자식들에 처절하게 배신당하거나 양로원 혹은 의지할 곳조차도 없이 고독하고 우울함을 견딜 수 없어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나날을 보낸다는 노인이 65%이상을 차지한다고 하지요.
옛날에는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 미풍양속인 부자유친의 효(孝) 사상을 그 얼마나 부러워했던가요. 그러나 지금 시대는 이젠 꺼져 가버린 화롯불 신세마냥 재만 흩날리고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들에게도 당연히 책임은 있지요. 그저 내 새끼 오냐오냐하며 버릇없이 출세만 시켜두면 부모의 말년도 보장되고 편해 질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큰 잘못을 이제와 느끼며 후회하고 있으나 이젠 배 떠난 뒤 손 흔드는 꼴이 되었습니다.
서양인들이나 이웃 일본의 경우 성년식이 끝나는 그날 이후부터는 자식을 완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아주 냉정하게 대한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젊은 세대들이 성년 이후가 되어도 부모를 모실 생각은 접어두고, 우선 급하면 부모의 재산을 제 예금통장인양 강압적으로 꺼내 쓰려고 하지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노후를 포기하면서까지 이번만 봐주자 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거덜이 나고 맙니다.
그러다보니 옛말에 좋은 일은 천천히 오는데 나쁜 일은 곱으로 겹쳐서 달려와 더 답답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 나중엔 빈털털이 빗 좋은 개살구 신세가 되고 말지요. 이런 불공평한일이 또 어디 있습니까? 이 모두가 한국인들의 그 모진 부자간 정(情) 때문에 피(血)는 속일 수 없나봅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들어보니 9살짜리 자식이 스마트폰만 가지고 놀며 공부안한다고 엄마가 이마에 주먹질을 한 모양인데 얻어맞은 아들이 112로 경찰에 고발을 했다네요. 요즘 세상이 그렇게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 갑니다.
지금 환갑나이 60을 지난 7~80 세대들은 부모를 오직 존경하고 따르며 효도하는 가부장적(家父長的) 삶이 몸에 베여 살아온 마지막 세대이고, 가족 먹여 살리느라 뼈 빠지게 일만하다가 은퇴를 하여 노후라도 좀 즐기려 했더니 마지막에는 마누라에게까지 찍소리 못하고 벌벌 기는 여성 상위시대의 불쌍한 아빠들이 돼 버렸습니다.
이제 사회가 산업화하면서 교육받은 여성들도 시부모 모시기를 꺼려하고 서구사회같이 돼 갑니다. 서구는 우리나라보다 앞서 19세기에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농경사회가 붕괴되어 자연스럽게 효도란 풍습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세대가 노후대책으로 자생력을 키우게 된 원인이 되었지요.
그러므로 이젠 내 인생이 중요한 때입니다. 그토록 힘들게 인생항로의 파도를 헤쳐 왔으면 이젠 내 인생을 즐길 권리도 챙길 줄 알아야지요. 노년까지 ‘슬픈 전설의 가시나무 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식들의 멍에와 굴레에서 과감히 벗어나십시오. 이제는 자식들을 남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집 담보를 요청해도 매정하게 거절하고 손주 봐 달라고 해도 갖은 핑계를 대고 피해야 합니다. 있는 재산 아끼지 말고 노후의 남은 인생 즐기다 가야합니다. 우리 인생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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