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황상연재소설14

황상(14)

낡은 집 서까래엔 이끼가 꼈고(3)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정신을 가다듬어 힘쓰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

그러므로 황상이 ‘부지런 하고 부지런 하고 부지런 하는’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었던 것도 곧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열네번째 풍격은 치밀한 구성의 진밀(縝密)이다. 진밀은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이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엄밀하게 하며 글을 지음에 있어 구성이 치밀하여 피륙처럼 잘 짜인 문장을 지어야 한다. 황상은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빈틈이 없이 진중하고도 꼼꼼하게 일과를 보냈고, 시를 짓는데 있어서도 설야래(薛夜來), 즉 삼국시대에 위나라 조비(曹丕)가 총애하는 여자가 설야래였는데, 그녀는 바느질 솜씨가 워낙 뛰어나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능히 바느질을 하되 엉성하고 새는 곳이 없을 만큼 바느질을 한 것처럼 시작(詩作)을 하였다.

열다섯번째의 풍격은 예법에 얽매임이 없는 거의 소야(疏野)이다. 이백의 시가 소야인데 「산 속에서 은사와 함께 대작하다 山中與幽人對酌」를 보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둘이 함께 술을 마시니 산에는 꽃이 피고

兩人對酌山花開

한 잔 또 한 잔, 그리고 또 한잔을 마신다

一杯一杯復一杯

나는 취해서 자려 하니 그대는 이만 가게

我醉欲眠卿且去

내일 술 생각나면 거문고 들고 오게나

明朝有意抱琴來

나는 이미 취해버렸으니 너는 그만 가라! 그러나 내일 또 술이 생각나면 오라! 이 말은 예법에 얽매임이 없는 말이다. 거칠지만 또 내일을 기약하는 멋도 있다. 이백은 술을 마시되 산 속에서 마셨고,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열여섯번째 풍격은 청결하면서도 기이한 청기(淸奇)이다. 청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성격이 독선(獨善)에 가까울 만큼 ‘나홀로’ 이다. 고독과 마주할망정 타인과 함부로 어울리거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좋다가도 싫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독야청청(獨也靑靑) 선비의 기개가 있다.

산 정상에 외롭게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지만 그의 풍모는 고고하고 맑고 청결하다. 기이하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독창성을 의미한다. 황상은 그렇게 살았다. 고금의 사적을 두루 섭렵하고 익히면서 산(山)과 수(水)에 마음을 주고 즐기며 살아가는 황상의 삶은 청기, 바로 그것이었다.

열일곱번째 풍격은 자세한 사정과 곡절의 위곡(委曲)이다. 위곡은 작품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기법이다. 감정의 곡절을 구절양장처럼 이어가는 오묘한 맛이 있는 것이 위곡이다.

위곡은 판소리에 있어 극적 갈등양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위곡의 기법이 없다면 이미 판소리의 재미는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춘향가> <적벽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등의 창본에 나타난 극적 갈등양상은 듣는 이의 맛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위곡의 미학을 잘 작품에 적용한 시인은 백거이로서 장한가(長恨歌)나 비파행(琵琶行) 등을 들 수 있다.

열여덟번째의 풍격은 진실한 경지의 실경(實境)이다. 본대로 느낀대로 과장없이 진실한 정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실경이다.

다산은 여기에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어미 닭이 병아리를 거느린 그림에 제하다」란 제목의 작품이 그것이다. 변상벽은 닭을 잘 그린 화가이기도 했지만 고양이 또한 잘 그려서 변고양이란 별명이 얻기도 했다.

변상벽은 변고양이 별명을 얻었으니

卞以卞貓稱

고양이 그림으로 이름이 났구나.

畵猫名四達

이번엔 병아리를 그려냈는데

今復繪鷄雛

깃털이 하나하나 살아있느니.

箇箇毫毛活

어미 닭 이유 없이 화를 내고

母鷄無故怒

낯빛도 몹시 사나웁구나.

顔色猛峭절

목의 깃이 고슴도치처럼 일어나더니

頸毛逆如蝟

부딪치면 성내어 소리 지르는구나.

觸者遭嗔喝

뒷간 옆을 가거나 방앗간에서

煩壤與碓廊

땅을 긁어 언제나 흙을 파는 듯

爬地恒如발

낟알 하나 구하면 거짓으로 쪼는 척

得粒佯啄之

고통스럽게 먹고 마시는 것을 참네.

苦心忍飢渴

사방을 보아도 보이는 것 전혀 없더니

瞿瞿視無形

숲 속에서 솔개가 지나가는구나.

鴟影度林末

놀랍구나 자애로운 어미의 성품

嗟哉慈愛性

하늘이 내려준 것을 누가 능히 빼앗으리.

天賦誰能拔

병아리들이 어미 곁을 졸졸 따르니

群雛繞母行

보송보송한 노란 옷 곱기도 하다.

茸茸嫩黃褐

밀랍 부리 막 굳은 듯 보드라운데

蠟嘴軟初凝

붉은 볏은 희미하게 엷은 빛깔이다.

朱冠淡如抹

병아리 둘 서로 쫓아 달려가나니

二雛方追犇

허둥지둥 저리 빨리 어디로 가나.

急急何佻撻

앞에 녀석 부리로 벌레를 물자

前者咮有垂

뒤 녀석이 빼앗으려 하는 것이네.

後者意欲脫

두 병아리 지렁이를 두고 다투느라고

二雛爭一蚓

같이 물고서 서로 놓지를 않네.

雙銜兩不脫

새끼 한 마리 어미 등에 올라타더니

一雛乘母背

가려운 곳을 혼자서 긁고 있네.

癢處方自撥

한 녀석은 저만치 따로 떨어져서

一雛獨不至

채소 싹을 이제 막 따먹는구나.

菜苗方自捋

형상마다 세밀하여 진짜 같은데

形形細逼眞

도도한 그 기운을 막기 어려워라.

滔滔氣莫遏

들으니 이 그림 처음 그렸을 때

傳聞新繪時

수탉이 잘못 알고 떠들썩했다지.

雄鷄誤喧聒

이밖에 고양이 그림도 잘 그려

亦其烏圓圖

뭇 쥐들을 겁먹게 할 만했겠지.

可以群鼠愒

뛰어난 기예가 여기 이르니

絶藝乃至斯

만질수록 마음이 자주 가는구나.

摩挲意未割

거으로 산수를 그려 넣으니

麤師畵山水

거침없는 손놀림이 시원하여라.

狼藉手勢闊

옛날 송나라 때 정명도 정이천 형제는 병아리를 일컬어 ‘인(仁)’이라 하였는데, 병아리를 관찰해보니 어미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지극할 뿐 아니라 형제끼리도 그 우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효제(孝悌)는 인(仁)을 이루는 근본이니 너희들도 미물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도록 형제간의 우의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다산이 병아리를 키우는 두 자녀에게 했던 말인데, 황상에게도 그 같은 말을 했다. 황상도 마당에 닭을 기르면서 「병아리를 읊다」3수를 지었으니 그 한 대목이 다음과 같다. 스승 다산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열아홉 개 달걀을 한데 품으니

菢卵十有九

병아리 열다섯 마리를 깠구나.

生纔十五雛

붉은 볏은 그 누가 짜준 것일까

絳幘誰所織

황금발톱 풀무질 필요 없구나.

金距不須爐

깃 하나도 아껴서 애호하나니

愛護惜一毛

양주를 사모한 것은 아니라네.

非是慕楊朱

매화밭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해서

但防入梅園

행여 꽃술이 상할까 두려워해서지.

或恐捐花鬚

서로 마주 물어 지렁이를 서로 다투고

對吻爭紫蚓

부산하게 내달아 개미를 쫓는구나.

疊趾趁玄駒

여기서 족히 인(仁)을 볼 수 있느니

於斯足觀仁

정이천은 참으로 큰 선비였네.

伊川誠大儒

다산과 황상이 이러한 시를 지은 것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많은 시인들이 즐겨 창작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특히 정약용과 황상은 이러한 시를 많이 지었다.

열아홉번째의 풍격은 슬퍼하고 개탄하는 비개(悲慨)이다. 비개는 비분강개(悲憤慷慨), 비통개탄(悲痛慨歎) 등의 말과도 비슷하다.

스승 다산의 일생이 비개의 삶이요, 비분(悲憤), 비탄(悲歎)의 삶이었다. 다산은 「하담별(荷潭別」이란 시에서

아버님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 어머님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 우리 가문 갑자기 뒤집혀져서 / 형제가 일사이적(一死二謫) 되었네요 / 내 목숨 겨우 부지했으나 / 육신은 슬프게도 이지러졌네요 / 아들을 낳으시고 부모님 기뻐하셨건만 / 기르실 때 품안에 안으시고 정성 다하셨어라 / 천륜의 공 갚으라 말씀하셨지요 / 어찌 유배죄인 되려니 생각하셨겠어요 / 세상 사람들에게 바라는 바는 / 다시는 아들 낳았다 기뻐하지 말라

「하담별」이란 시는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집안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을 참회하면서 불효에 대한 가슴 아픔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정약현이 사형 당하고 중형인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을 갔으며 다산 자신은 강진에 유배된 신세였으니 슬퍼하고 개탄하는 비개의 시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황상 역시 비개의 시를 지었다.

애절양(哀絶陽)이 그 중 하나인데 1803년 봄, 노전리(蘆田里)에 사는 남자가 스스로 남근(男根)을 잘라버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한 시였다. 애절양이란 남근 자른 일을 슬퍼한다는 말이었는데, 황상은 이렇게 노래했다.

노전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蘆田小婦哭聲長

아이를 가졌으나 낳지도 않았는데 지아비는 남근을 잘랐구나

婦孕不育絶陽

시아버지 죽은 해에도 포수 군포에 오르더니

舅死之年砲手保

올해도 봉군으로 또 충원되었네

今年烽軍疊充行

칼을 갈아 방으로 들자 자리에 피가 낭자하니

磨刀入房血滿席

민 땅 아이 잔혹한 자식 거세도 슬프고

閩囝殘酷良赤慽

거세한 돼지 말도 슬퍼할 일이거늘

幩豕騙馬尙可悲

하물며 사람으로 자기 핏줄을 끊다니

况乃人類戕血脉

부자들은 일년내내 한 푼도 걷지 않고

豪家終歲無寸費

종과 거지 부류들은 벗겨가고 잘라가네

剝割偏傷傭丐類

이 법 바꾸지 않으면 나라는 필시 약해지려니

此法不變國必弱

깊은 밤 이 생각에 속이 끓어 오르네

中夜念此腸內沸

당시 다산은 아전을 아버지로 둔 적이 있는 황상이 이 같은 시를 쓰자 절대 남에게는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한 뒤, 자신도 나중 애절양이란 시를 지었다. 제자가 지은 애절양의 제목 또한 동일하게 다산은 그 사건을 노래한 것이다. 황상이나 다산은 동일한 전개방식을 취했음에도 황상의 애절양은 그 분량이 짧으면서도 결말이 절실하게 표현한 대신 다산은 16구로써 분량도 많을뿐더러 비판의 흐름이 달랐다.

황상은 강진에서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폭정을 보고 가만히 있질 않았다. 기막힌 심정을 한 편의 시에 토해냈던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 해도 그 곡성이 그리 처절하지는 않았을 것은 남근의 거세는 이미 죽은 목숨과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피눈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곡지통은 들려왔던 거였다.

그러다 보니 애절양도 스승 다산과 함께 창작했지만 같은 제재, 같은 제목으로 하는 시들이 여러 편 되었다. 승발송행(僧拔松行)이 그러하고 봉두부(鳳頭婦)가 그러하며, 풍년탄(豊年歎)과 여위모(女爲茅)가 그것인데 모두 시회의 모습을 보고 비판한 시였다. 황상은 비개의 심정으로 봉두부란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나그네 발길 봉두촌에 묵는데

客杖投鳳村

구슬푸게 우는 늙은 부인

悲啼老婦人

어찌 하여 이렇게 곡을 하여

奈何哭如此

눈물이 앞을 가리게 하는가

使我瘺不看

부인이 말하기를 관아의 명이 너무 엄해서

婦設府帖怒

사람 잡아가더니 끝도 없이 괴롭힌다네

捉人窮復苦

닦달하기를 종과 기병과 보병이 함께 하니

急隸騎步軍

마치 하양의 수자리로 달려가듯 한다네

如赴河陽戍

집 노인은 살날이 다 되었고

家翁年限至

세 아들은 금어영에서 죽었으니

三男禁御死

노인이 죽더라도 수습할 사람조차 없다네

翁死無人收

가장 원통한 일은 손이 끊긴 일이라네

至寃絶嗣矣

군적에 올린 가짜 이름은 누구인가

虛名果何人

이제 세 살 난 손자라네

謂有三歲孫

노인은 병들어 나를 잡아두는데

翁病捕我去

누가 온전한 치마를 빌려주리오

誰家借完裙

해 저물어 날씨는 싸늘해지건만

日暮氣亦衰

오늘 어떻게 성을 다녀올까나

今胡向城歸

잠시 부역에서 되돌아 와보니

須庾停官捕

부엌엔 아침거리 떨어졌네요

廚中斷朝炊

봄 보릿고개는 언제 끝나나

春飢胡不絶

다시 이 지경을 당해보니 목이 매네요

復此當鳴咽

당장이라도 연못에서 죽고 싶지만

卽欲赴淸池

노인이 있어 차마 떠날 수도 없다네

不忍在翁別

제시(題詩)가 ‘봉두부’인 이 시는 다산이 지은 「용산리」의 주인공인 한 늙은 과부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그런데 황상은 이 시를 지으면서 두보의 「석호마을에서」와 방식이 같다. 또 몇 가지 두보의 시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두보의 시를 그만큼 익히고 베껴 써보았음을 알 수 있다. 두보는 <늙은 영감 혼자와만 작별하니라>고 끝을 맺은 대신, 황상은 <노인을 두고 차마 떠날 수 없다>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다산은 향리가 세금을 내지 않자 그 몫으로 소를 빼앗아 가는 참상을 그렸는데, 말미에

며느리는 남편 없는 과부요

婦寡無良人

시아버지는 자손 없는 늙은이네

翁老無兒孫

눈물이 글썽거려 소만 보며 우노라니

泫然望牛泣

떨어져 내리는 눈물 적삼치마 다 적신다

淚落沾衣裙

마을의 행색이 극도로 피폐하건만

村色劇疲衰

아전은 버티고서 어찌 돌아가지 않는가

史坐胡不歸

쌀독은 바닥난 지 오래여서

甁甖久已罄

무슨 수로 저녁을 짓는단 말인가

何能有夕炊

죽치고 앉아 살 길을 끊어 놓으니

坐令生理絶

사방 이웃까지 목매어 울어쌓네

四隣同鳴咽

소를 포 떠서 권세가에 바치면

脯牛歸朱門

재간이 거기서 드러난다지

才諝以甄別

하고 지었다. 참으로 비참한 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재산 1호인 소를 빼앗고도 부족해 저녁밥을 바라는 가렴주구의 형태가 여실히 나타난 시로써 아전의 전형을 형상화해 내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렇듯 다산과 황상은 횡포와 수탈이 자행되는 상황을 비개의 마음으로 시를 지었던 것이다.

비개의 미학을 보인 작품은 특히 항우가 자살 직전 읊조린 노래이다. 항우의 해하기(垓下歌)는 비극적 영웅의 모습을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시가 아닐 수 없다.

힘은 산 뿌리를 뽑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건만 / 시세가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서지 않네 / 오추마가 나서지 않아도 도리 없지만 / 우(虞)야 우야 너를 어찌 한단 말이냐

우미인이란 연인을 부르며 마지막 심정을 토해내는 이 시는 그야말로 비분강개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둘러싸인 항우가 이제 자결을 앞두고 끝까지 천하가 자신을 버리려 한다고 울부짖는 비장미는 비록 비극으로 종말을 치닫지만 그의 비개는 중국 문학사에서도 압권이다.

스무번째 풍격은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의 형용(形容)이다. 형용의 본문 첫 대목은 이러하다.

정신을 집중하여 순수하게 구상하면 絶佇靈素

조금 뒤 새롭고 진실한 사물의 모양이 나타나니라 少回淸眞

물에 비친 그림자를 찾아 묘사하듯이 如覓水影

따뜻한 봄빛을 그려내듯 하라 如寫陽春

정신을 집중하면 사물의 진실한 모양이 나타나고, 물에 비친 그림자와 따뜻한 봄빛은 바로 형용의 묘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형용의 묘사는 두보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을 썼으니 황상 역시 두보의 시를 공부한 이상 그의 시는 형용해 내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스물한번째 풍격은 평범함을 뛰어넘어 높은 수준의 조예를 꿈꾸는 것이 초예(超詣)이다. 세속적인 현실을 초월한 세계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이뤄지는 꿈을 말한다. 신선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초월이다

이백은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푸른 산에 왜 사느냐고 묻지마는

文余何事悽碧山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笑而不答心自閒

복사꽃 물에 떠서 아득이 흘러가니

挑花流水香然去

인간세상 아닌 별유천지네

別有天地非人間

이라고 노래했는데, 너무나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산에서 왜 사느냐고 묻지만 웃기만 하는 시인의 마음이야말로 그지없이 한가롭다는 「산중문답(山中問答)」은 스스로 초예의 세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설암추붕(雪巖秋鵬)은 「깊은 산 진종일(幽居)」에서

깊은 산 진종일 찾는 이 없어

深山竟日無人到

뜰에 쌓인 흰구름을 오랫동안 쓸지 않네

滿地白雲長不掃

풀집은 맑고 그윽해서 다시 고요하거니

蝸舍淸幽更寂寥

처마끝 관음조의 우짖는 소리만 들리네

簷前但聽觀音鳥

라고 노래했는데, 이 시 또한 깊은 산에서 숨어 지내는 이의 마음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