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공약 (公約)과 공약 (空約)
윤기향(강진출신: 미국 플로리다 어틀랜틱대학교 경제학 교수)
지금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대선 때 국민에게 약속했던 각종 공약(公約)을 뒤집고 있다고 해서 여야 간의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데 대해서 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진영 복지부 장관이 공약 후퇴에 대한 반발로 사퇴하는 등 정국이 어수선하다.
경제이론에 “정치적 경기순환” (political business cycle)이라는 이론이 있다. 대통령 연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집권당의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갈 무렵 다음 선거에서의 재선을 위해서 정부지출을 늘리고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돈을 풀게 해서 경기를 부양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는다. 그러한 경기부양 정책의 결과로 일자리는 늘어나고 국민들의 지갑은 두툼해 진다. 국민들은 경제상황이 좋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집권당 후보에게 표를 주며 그 결과 현직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에는 재정적자가 늘고 물가가 상승하며 금리가 오르는 등 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물가를 잡고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돈줄을 죈다. 이러한 긴축정책의 여파로 경기는 다시 나빠지고 국민들은 선거의 쓴 맛을 보게 된다. 정치인들은 화장실에 갈 때의 마음과 화장실을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정치적 경기순환이론은 실증적으로 이를 설명해 준다. 미국에서는 닉슨 대통령이 이러한 정치적 술책에 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경기순환은 공약 (公約)을 공약 (空約)으로 만드는 경우와 비교하면 시빗거리로 삼을 만한 것도 못된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거의 한결같이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이 당선되면 65세 이상 되는 연로하신 분들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일률적으로 지불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다. 이러한 공약이 선거 결과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 여론도 시끌벅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박 후보가 문제인 후보를 근소한 차이 (2 퍼센트 포인트 이내)로 이겼고 박 후보의 그러한 공약이 연로하신 분들의 표심을 사로잡아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박 후보나 그의 정책 보좌관들이 재정상황을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해서 그러한 공약을 실행할 수 있었다고 판단하고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면 5년 간 국정을 책임지는 한국호 선장으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재정상황으로 봤을 때 그러한 공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데도 그러한 공약을 내세웠다면 이는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평소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는데 그의 공약 파기는 그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신은 잠시 동안 모든 사람들을 속일 수 있고 또 항상 얼마만큼의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항상 모든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한국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로 들린다.
짧지 않은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역사를 보더라도 대통령 후보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실행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공약을 내걸었는지 씁쓸한 뒷맛을 남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 임기 중 연 7퍼센트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공약이 나왔는지를 묻자 그는 상대방 후보 (이회창 후보)가 6퍼센트의 경제성장률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좀 높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그러한 숫치를 제시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설명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747 공약’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다. 747은 미국 보잉사의 점보여객기의 이름을 따온 것인데 통 큰 공약을 내건다는 야심으로 747 공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 747공약은 그의 임기 중 연 7퍼센트의 경제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그리고 세계 제7위의 경제규모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가 퇴임했을 때 그의 공약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임기 중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3퍼센트가 조금 넘었고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조금 상회했으며 한국의 경제규모 (GDP)는 세계 제15위로 오히려 후퇴했다. 그야말로 그의 747공약은 반 토막난 공약이 되었다.
그러나 국민과의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정치인중 단연 돋보이는 정치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혁명공약으로 “2년 안에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군대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민정이양 약속 시한이 다가오자 대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예편하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4년 임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당시 헌법은 4년 임기에 연임을 허용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4년 후 다시 연임에 성공해서 10년 권좌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임기가 가까워오자 그는 대통령 임기를 4년 더 연장하는 3선 개헌에 착수했다. 그리고 1백만 명이 모인 장충단공원 선거유세에서 그는 이번이 그의 마지막 선거라고 국민에게 약속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진정성 있는 눈물이 아니었다. 세 번째 임기가 끝나갈 무렵 그는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10월 유신을 단행하고 1979년 10월 그의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18년 6개월 동안 청와대를 떠나지 않았다. 이러한 헌정 파괴는 이전의 약소 파기들을 좁쌀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정치인들은 그들의 공약이 신뢰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지만 국민들은 번번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국민들이 항상 속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