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군동면 금강리 안풍마을 오문재(82세)
“5대조부터 살아온 터인데, 아버지가 살던 집이 너무 낡아 새마을 운동 때 주택개량을 했지, 그란디 저기 저 나무가 매우 위험해요.”
집 뒤편의 낮은 언덕위에 있는 거대한 팽나무를 바라보신다.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사방으로 늘어진 덩치 큰 팽나무가 위태위태하게 마을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아버지 대부터 뒷집과의 울타리역할을 해서 놔두었다는 팽나무가 너무 커버려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내가 6학년일 때 나이가 많은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랑께 이웃 간이학교였던 금천학교를 마치고 들어온 친구들이었는데 5살 6살이 더 많았지요. 그 친구들이 지앙통 노릇을 많이 했지요. 여학생들을 건들고 울리고 연애편지를 적발하고 그런 거시기가 있었어요.”
오할아버지는 시종일관 깊이 사색하는 표정이다. 그러한 표정에서 깊숙이 간직한 에피소드를 듣고 싶어 물었으나 매우 신중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역시 싱겁다.
“군동국민학교를 16살에 졸업하고 강진농고 시험을 봤어요. 6:1로 시험에 합격을 했지. 그래가고 집안은 가난하고 해서 문중에서 장학금을 받고 졸업을 했어요. 그래가고 인자 21살에 교편을 잡았는데, 그때는 본인이 희망만 하면 도에서 발령을 냈어요.”
오할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강진농고를 처음으로 입학한 학생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조용조용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듯한 어조에서 모범생 까까머리 남학생을 떠올리게 한다.
“군동국민학교에 처음 교사발령을 받았어요. 서울영동농장 용복씨가 나로서는 수제자에요. 5학년 6학년때 담임을 했는데 용복씨는 글씨를 잘쓰고 절대 남한테 질라고 하는 거시기가 없었어요.”
혹시 생각나는 학생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더니 두 명의 제자를 말했다.
“양희복이라고 남편이 전남지사를 했어요. 기회가 되면 연락도 해오곤 했지요.”
46년동안 후학들의 전인교육에 헌신해온 오할아버지는 1992년 8월에 강진 칠량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1996년 강진향교 전교 재임시에 제19회 군민의상 충효도의상과 성균관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오할아버지는 한평생을 말하자면 여그저그 친구들과 전화하는 낙, 자식들과 전화하는 낙, 과거에 한 직장 다니던 사람들과 전화하는 낙이라고 말한다. 10년 전에 부인을 먼저 보낸 이후 혼자서 지내다가 외로움을 함께 나눌 한 할머니를 만났었다고 한다.
“어느 날 400만원만 빌려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간 뒤로 연락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몇 달 후 광주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 터미널에서 만났는데 200만원을 돌려주면서 다음에 200만원은 가지고 내려오겠다고 하더니 소식이 없어요.
몇 개월을 함께 살았지만 별다른 정은 없었다고 말하는 오할아버지는 서로 간에 정이 깊다면 그까짓 돈이 무슨 소용이겠냐고 말한다. 나이 들어 만나 적적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생활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평생을 교직에서 보낸 오할아버지는 6.25때 좌익계에 가까운 활동을 했다 해서 발령을 안내주던 때 여러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을 해서 영암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영암 국사봉에 반란군들이 들어와 가까운 마을로 침범한다는 소식에 모다들 숨었는데, 그때 아이를 업고 눈 싸인 대밭에 피신했다가 살았어요. 그때 죽은 사람 많아요. 또 한번은 군경들이 후퇴한다고 해서 모두들 군동 화방으로 숨었는데 글쎄 화방으로 들어온다고 하여 병영으로 넘어가는 쪽으로 내뺐지요. 그때는 군경들이 무차별하게 함부로 죽여 분다고 해서 무서웠지요. 그런데 또 병영쪽으로 진주하는 바람에 제주도가 고향이던 이선생이란 사람하고 둘이 나락이 익을 때까지 나락 밭에 들어가 숨어있어 살았지요. 그때 눈에 띄면 죽여버리는 것을 보았어요. 아주 위험한 꼴을 겪었어요.”
오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8시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 진입로까지 나간다. 그곳에 자전거를 매어놓고 버스를 타고 강진읍 수성당으로 간다. 같은 조인 2조 친구들과 점심을 사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끼니는 꼭 챙겨 먹으며 술과 담배는 안하신다. 큰아들(오호일60세)은 삼성제약 전남지부사장을 지냈으며, 아들 오호성(49세)은 광주교육청 장학사, 세딸도 교사이다.
“어제 아들이 벌초하러 와서 12봉 전부 벌초하고 함께 점심 먹고 보성해수녹차탕에도 다녀왔어요. 추석 때도 내가 올라가지만, 내일 모레가 아내 기일이니 내 가마 했어요.”
사색 깊은 표정의 오할아버지가 어제 아들이 벌초하러 왔던 모습이 눈에 선한지 모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으신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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