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의 정치, 쇼의 정치 (1)
윤기향 (미국 플로리다 어틀랜틱 대학교 경제학 교수)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월 25일 발표된 경제혁신 계획안에서 박 대통령은 소위 “4-7-4 공약“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2017년까지 경제성장률을 4%대로 끌어올리고, 고용률 70%를 달성하며 국민소득 4만불 시대로 가는 초석을 다지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박 대통령의 4-7-4공약은 언뜻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공약을 뒤엎어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전 대통령이 집권 청사진의 큰 틀로 “7-4-7”공약을 내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핵심 내용은 임기 중 연 평균 7%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을 이뤄내며 그 결과 한국의 경제 규모를 세계 7위로 올려놓겠다는 공약이었다. 그의 747 공약은 보잉의 점보 여객기 747기를 연상시키는 구호이다. 보잉의 747기는 여객기로서는 아직까지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전 대통령이 그러한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은 점보 여객기 747과의 연상 효과를 통해서 통큰 공약을 국민에게 제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청와대를 떠나던 날 그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의 재임 기간 (2008년 1월 - 2013년 12월)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2.9%로 그가 공약한 7%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12년 말 2만2,590불로 4만불의 반을 조금 넘어섰다. 2012년 말 GDP (국내총생산) 기준 한국의 경제규모는 1만1,296억불로 세계 15위를 기록했다. 순위가 7위보다 두 배 이상이나 뒤쳐진 것이다. 그의 구호를 빌리면 그의 경제 성적표는 “2.9-2.3-15”의 점수를 받았다. 그야말로 반 토막난 경제 구호였다. 이는 낙제점이다.
이 전 대통령은 그의 구호의 달성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5년 후의 목표를 그렇게 엉뚱하게 잡고 빗나가는 전망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달콤한 무지갯빛 약속을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면 그것은 국민을 속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한국의 정치인들은 구호의 정치를 통치술로 사용해 왔다. 그 원조는 단연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3선 개헌 후 영구 집권을 꿈꾸기 위해서 유신 체제를 선포했는데 그때 그가 내건 공약이 “10-100-1000”의 구호였다. 그 내용은 “10월 유신-100억불 수출-1000불 소득“을 198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황당한 공약과는 달리 박 전 대통령은 이 공약을 약속한 기간 이전에 달성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발생한 정치적, 경제적 대가는 너무 컸다.
야당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공약으로 경제성장률 7%달성을 내걸었다. 집권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느 기자가 어떻게 7% 성장률 공약이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의 경쟁자였던 이회창 후보가 6%의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에 그보다는 조금 높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숫자를 하나 높게 잡았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공약도 마다하지 않는 한국 정치인들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번 박 대통령의 경제혁신안도 이전 지도자들보다는 목표치를 낮게 잡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쇼의 정치를 접는 것이야 말로 선진국에 이르는 도약의 진정한 단계일 것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경제 성장률 목표치와 같은 구호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지 않는다. 그것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원을 무리하게 배분해야 하는데 이는 시장경제의 기능을 저해하고 결국에는 경제에도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는 정부가 잠재적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크지 않다. 그 대신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나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기껏해야 일자리를 몇 백만 개 늘리겠다는 정도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주십시요”라는 명연설을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미국 대공황 때 대통령에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유명한 말을 전함으로써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구호의 정치, 쇼의 정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러한 정치가 국민들에게 먹혀든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 국민들에게는 그러한 구호가 거의 먹혀들지 않는다. 때마침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한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박근혜 후보의 대선캠프 총괄본부장을 지냈던 그는 지난 2월 20일 행했던 한 강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참모들이 써준 공약을 그대로 읽었다. 정치인은 거짓 공약으로 국민을 속여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건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약이나 기초연금에 대한 공약도 참모가 써준 것을 그대로 읽은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 공약에 대한 그녀의 신념과 사명에 대해서 큰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