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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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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1등 제자 황상 유물, 드디어 세상에 나오다
다산기념관 ‘치원소고, 치원진장, 치원총서, 곽경순 이아주, 황씨채화집’ 유물매입 결정

다산의 1등 제자 황상 유물, 드디어 세상에 나오다

다산기념관 ‘치원소고, 치원진장, 치원총서, 곽경순 이아주, 황씨채화집’

유물매입 결정

양광식 문사고전연구소장 직접 확인

“이 유물은 하나 밖에 없는 보물, 황수홍씨께 감사”

 

다산기념관(관장 박서진)에서는 5월 29일 오후 4시 다산의 1등 제자 황상의 유물인 ‘치원소고, 치원진장, 치원총서, 곽경순 이아주, 황씨채화집 등 5점을 매입 결정했다. 이날 황상의 유족인 황수홍씨가 유물을 직접 가져와 다산기념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양광식 문사고전연구소장이 일일이 진품여부를 확인했다.

‘치원소고’에는 황상이 쓴 정수사 중수기, 대흥사 두 스님에게 써준 글, 큰아들에게 쓴 글, 다산손자에게 보낸 편지, 중 철선에게 보낸 편지, 일속산방기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산의 아들이 정학연이 중간 중간 두평(頭評)을 해놓았다. ‘치원소고’는 38장 1책으로 되어 있는 황상의 친필 문고이다.

‘치원진장’은 서찰집으로 정학연이 쓴 편지와 황상이 쓴 편지 등을 묶어져 있었다. 특히 황상과 정학연의 정황계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었다. 양광식 소장은 “황상의 인장이 크게 찍혀진 것은 편지를 보낸 사람이 확실하다는 뜻에서이고, 빙빙 돌면서 편지를 쓴 이유는 어느 누가 뜯어보아도 쉽게 알 수 없도록 한 것이다”며 “황상의 동생 황경의 죽음에 대한 정학연의 서찰도 있어 이를 다 해석해서 세상에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광식 소장은 “황상이 쓴 편지 말미와 봉투 내용도 재미가 있는데, 치원 일속산방 회조(回漕)란 치원(황상의 호)이 일속산방(좁쌀만한 방)에서 보냈으니 돌아 봐주십시오,란 뜻이며, 심평(心平)이란 말은 마음이 편안할 때 쓴 글이다, 라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양 소장은 “편지 봉투에는 ‘付橘洞便’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는 귤동으로 가는 편에 서찰을 보낸다는 뜻이고, ‘一粟山房引受啓’란 황상이 직접 서찰을 열어보시오, 란 뜻이다”며 “서찰을 뜯어볼 수 없도록 둘만 아는 도장을 크게 찍은 것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치원진장은 모두 28통의 서찰 중 정학연이 쓴 서찰이 22통, 정대무가 쓴 서찰이 1통, 추사의 양아들 김상부가 쓴 서찰이 2통 실려 있다. 마지막 3통은 황상이 아닌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로써 여기에 묶여 있다.

‘치원총서’는 한문옥편을 그대로 옮겨 쓴 것으로 이에 대해 양 소장은 “공자도 이 옥편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의 아주 오래된 옥편이다”며 “그러나 연대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치원총서는「장자」를 동초한 것으로 장자 전문과 주석을 모두 옮겨 적었다.

‘곽경순 이아주’는 ‘치원총서’의 일부분인데 ‘곽경순’의 ‘이아주’를 옮겨 적은 것으로 첫장에 ‘자중자석’이란 황상의 소장인이 찍혀 있었다. 이 또한 황상의 친필로써 그 가치가 높다는 것이 양 소장의 평이다..

‘황씨 채화집’은 다산의 제자 황지초의 아버지인 황승룡과 백부 황진룡, 계부 황태룡 3형제의 시집이다. 양 소장은 “이 자료를 보아 황씨 집안이 다산의 강학 이전부터 해당 지역에서 문한이 있는 집안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희귀한 자료 선보인 황수홍씨

황수홍씨는 황상관련 자료 이외에도 180년 전의 세금납부 기록도 선보였다. 호방 김갑두, 내무과 이방 김석현 등이 세금을 확인한 것으로 어디에 쌀이 몇 섬, 콩이 몇 섬 등의 기록이 있는 자료였다. 또한 낭산 김준연씨가 보낸 편지와 함께 낭산이 장관을 지낼 때의 일화도 들려주기도 했다.

황수홍씨는 황상의 얘기를 써서 크게 반향을 일으킨 ‘삶을 바꾼 만남’의 저자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와의 일화도 밝혔다. 정민 교수로부터 황상의 자료를 촬영하고 싶다는 요청에 선뜻 응했고, 정민교수는 그 자료를 촬영하다가 다산과 황상과의 첫 만남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며 자료를 아예 빌려줄 것을 요청해 빌려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만일 황상의 자료를 보지 않았더라면 크게 오류가 생길 뻔 한 사건이었고, 결국 그 자료를 통해 ‘삶을 바꾼 만남’이란 역작이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당시 정민교수는 자료를 보면서 졸졸졸 한문을 읽어 내리며 해석을 히는 바람에 황상의 자료가 값지고 귀중한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황수홍씨는 “어렸을 때 부친이 캐나다, 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세계지도를 집안에 걸어놓고 계셨는데, 왜 틀린 세계지도를 걸어놓았을까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했으나 나중 그것이 일속산방에 걸려진 세계지도였음을 알았다”며 “그러나 보관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양 소장은 “그 시대에는 최첨단의 세계지도였다”며 “황상은 좁쌀만한 일속산방에서도 세계를 바라보며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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