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향해 총을 겨눈 북한군 병사
“썅깐나 새끼덜! 쏴 죽일끼다!” 외치며 총 겨눴다가 돌팔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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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반이 끊어진 압록강 철교 |
중국 단동(丹東)은 옛 이름이 안동(安東)이었으나 1965년 단동으로 개명된 도시로 압록강 하구부의 신의주 대안에 자리하여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되는 곳이다. 두 개의 철교가 압록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하나는 6·25 때 개미떼처럼 밀려오는 중공군들을 막기 위해 압록강 철교를 파괴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과 중국이 하루에 한 차례씩 무역을 하기 위해 오고 가는 철교였다. 그러므로 하나는 부러진 철교요, 다른 하나는 이어진 철교이다. 중국 땅 단동에서 압록강 절반쯤 갔다가 되돌아오면서 6·25 그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중공군만 물밀 듯이 쳐들어오지만 않았더라도 남북통일은 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 중공군들을 막기 위해 유엔군 폭격기는 이 압록강 철교를 부숴버렸지만 끝내 통일은 이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아픔은 분단국가로서 60년 세월 가까이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오고 있다.
발밑으로 흐르는 압록강 저 너머에는 북한땅으로 신의주가 너붓이 내다보였다. 우리의 땅이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분단의 아픔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러나 한반도를 두 동강이 난 철교. 아래로는 한국인 관광객보다는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고 즐기고 있었다.
절반이 끊어진 압록강 철교를 뒤로 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압록강 공원을 바라보며 상류를 향해 달려갔다. 이성계가 회군한 뒤 고려를 무너뜨렸던 위화도가 보였다. 위화도를 건너 이쪽으로 오면 명나라의 땅이었다.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성계는 싸움에서 죽거나 패전지장으로 귀양살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명나라는 이제 막 일어서는 신흥국가였기 때문에 이성계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낮았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말이다. 전투할 수 있는 병력은 불과 4만도 못되었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역사가 흐르는 위화도를 바라보며 좀 더 위쪽을 올라가자 이번엔 압록강에 있는 큰 섬 하나가 나타난다. 북한군인들이 사는 섬이었다. 113개의 섬 중에서 3개는 중국 땅이고 무인도 등 100여 개는 북한 땅이다. 그곳에 중국에서는 유람선을 띄우고 있었는데, 유람선을 타고 북한 섬을 절반 가까이 들어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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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지역 풍경 |
유람선에 오르자 그 배는 강물을 따라 북한 땅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북한군인들만 산다는 큰 섬은 염소와 소 등을 방목하고 있었고, 북한군 군인들이 드문드문 보초를 서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군인들이 강폭이 좁아진 본토에서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모습이 신기했던지 두어 사람이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북한병사에게 카메라를 대고 한차례 찍었을 때였다.
“썅 깐나 새끼덜! 쏴 죽일끼다!”
북한병사는 가슴에 품고 있던 총을 번쩍 치켜들더니 당장 총알을 날려버릴 태세를 취했다. 카메라를 찍던 관광객이 얼른 카메라를 어깨에서 내렸다. 북한병사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이번엔 총을 내려놓고 배 안에 있는 조약돌을 들고 있는 힘을 다 해 던졌다. 배의 속도 때문에 조약돌은 유람선까지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이었다. 만일 그 북한병사가 총알을 날려버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먼저 중국 탓을 할 게 분명했다. 북한 영토 내의 압록강에 유람선을 띄울 수 있게 한 북한은 왜 한국인들은 들어오지 않게끔 하라는 약속을 어겼느냐고 따질 것이었다. 그러나 인명이 살상되었는데 그게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었다. 북한과 중국은 상당한 갈등이 생길 것이고, 한국은 중국에서도 압록강, 두만강을 비롯한 북한 국경지역에는 관광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었다. 어쨌든 북한병사는 화를 단단히 내면서 섬으로 건너갔고 유람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섬 절반을 돌고 빠져나왔다. 손에 닿을 듯한 북한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총을 겨눴던 북한병사를 바라보면서 이것이 조국의 현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옥수수만 지천으로 심어진 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북한병사들. 여러 척의 유람선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왔다 갔다 하고 쾌속선은 일부러 북한땅 가까이로만 다니는데도 사진을 찍는 것에 그토록 화가 치밀었을까.
그러나 나는 유람선을 타면서도 가까운 곳에 우뚝 서 있는 산과 그 산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듯 서 있는 산성을 바라보았다. 고구려 때 세운 성(城)인데도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의 시작이라며 동북공정의 깃발을 치켜든 역사적 현장인 셈이었다. 중국은 국경지대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배경지역의 역사와 현장을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아, 고구려여! 광개토대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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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왕릉 |
4시간 반 고구려유적을 찾아 집안시(集安市)로 달리는 동안 바깥풍경은 온통 옥수수 밭이었다. 다른 작물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질 않고 오직 옥수수뿐이었다. 집안시에 도착하자마자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북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엘 들어갔다. 식사가 끝나자 북한 연예인들이 북한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며 환영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고 ‘반갑습니다’ ‘다시 만나요’ 등의 노래를 불렀는데, 사진을 찍으려 하니까 북한마크를 단 예쁜 여성이 찍지 말라고 만류했다. 몰래 찍었지만 여간 신경이 쓰였다. 그 북한 마크를 단 여성도 마지막 무대에 올라가 열창을 했는데, 내가 사진 찍지 말라는 말이 무섭더라고 하니까 뭐가 무서워요? 하고 웃어보였다. 그녀들은 중국인 업주에게 뽑힌 북한 여성들로서 모두들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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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아가씨들의 공연 |
국내성이 있었던 집안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성터는 아파트에 묻혀있거나 많이 훼손되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먼저 광개토 태왕릉비를 향했다. 붉은 기와지붕에 유리로 벽을 만든 건물 안에 광개토 태왕릉비가 보존되어 있었다. 고구려 신시(神市)였던 국내성 동쪽 들판 한가운데에 거대한 돌덩이가 우뚝 세워져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광개토 태왕릉비이다. 동양에서 가장 큰 비(碑)로써 높이가 6.39m이고 한 면이 1.35m~2m인 사면의 각력 응회암이다. 모두 44행에 1775개의 글자가 어른 주먹보다 크게 예서체로 음각되어 있는 광개토 태왕릉비.
이 비가 발견된 것은 1880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비의 내용은 첫머리에 시조인 주몽이 역사에 등장하는 과정이 신화의 형태로 적혀져 있고, 대왕이 언제 어떻게 정복활동을 벌였으며 점령한 지역들은 어느 곳인지 순서대로 음각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듯 큰 비도 나무가 자라서 뒤덮고 넝쿨과 흙, 풀로 뒤엉켜 있다가 어느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세월이 1600년가량 흐르다보니 글자가 마모되거나 없어져 식별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일본군 스파이 사까와 가께노부 중위는 이 글자를 변조하기에 이르렀다. 주로 1면 왼쪽 하도부인 소위 신묘년 조항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즉 일본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추진하면서 역사적 당위성을 찾기 위해 몇 개의 구절을 왜곡하거나 글자를 위조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광개토 태왕릉비는 고구려가 어떤 나라였고 고구려를 바라보는 모든 나라에게 고구려의 국가관, 세계관이 새겨져 있을 뿐 아니라, 태왕의 아들 장수왕이 적어도 고구려의 국정 지표를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이었다.
나는 그 비를 바라보며 참으로 웅대했던 고구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바로 지금 서 있는 이곳의 땅까지 국가를 건설했다는 점에서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광개토 태왕릉은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름답고 완전한 피라미드 형식으로 만들어진 광개토 태왕릉은, 그러나 제대로 복구를 해놓지 않고 있었다. 한 국가의 위대한 왕의 무덤이 몹시 허술하게 보였다. 중국 정부는 고구려라는 나라의 위대한 왕으로 보지 않고 50여 개 민족이 사는 중국에서 한 부족의 왕이었다는 점에서 방치하고 있다고 한다. 고구려 역사가 또렷이 부각될수록 중국이란 나라가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장수왕릉은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그곳은 거대한 돌로 쌓아놓은 무덤이었는데, 그 큰 돌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덤 가로 크고 기다란 바위가 듬성듬성 기대인 듯 세워져 있었다.
광개토태왕릉과 장수왕릉을 둘러본 후 집안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고려인들이 살았던 시대의 모든 것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전투할 때의 갖가지 장비며 생활도구 등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라는 나라는 강조되지 않은 진열 모습에 이 땅이 중국임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박물관을 빠져나와 환도산성을 올랐다. 늦은 시각이었는데, 때마침 보름달이 산 위로 올라왔다.
환도산성은 국내성 가까이에 산 능선을 잘 활용하여 7㎞에 달하는 산성으로 일종의 대피성 겸 장기전을 위한 수비성인 셈이었다. 그래서 산성의 뒤쪽으로부터는 수량이 풍부한 강물이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토를 가장 크게 확장시킨 광개토 태왕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은 심정으로 고구려의 유적을 둘러보면서 우리 민족성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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