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가는길
백두산 천지를 가는 길은 아침부터 마음이 몹시 설레었다. 첫선을 보러 가는 기분보다도,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형제를 만나러 가는 기분보다도 더 설레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날 이 평생 행사 때마다 불러보는 애국가, 그 첫머리에 나오는 ‘동해물과 백두산···’ 바로 그 백두산에서도 천지를 보러 간다는 기분에 뭔가 꿈을 꾸는 듯한 기분까지 느끼게 했다.
백두산 천지는 변화무쌍한 지역이어서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구름에 가렸다가도 순식간에 얼굴을 내밀기도 해서 장관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운이 없으면 죽어라 올라갔다가도 천지를 못 보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단다.
금강산도 그랬다. 구룡폭포가 있는 금강산이었는데,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자태에 혼을 뺏기다가 폭포의 상류에 있는 8담(潭)의 골짜기를 보기 위해 철 계단을 올라갔을 때였다. 기어이 보겠다는 욕심에 열심히 계단을 밟았지만 갑자기 날씨가 돌변하더니 가을철인데도 우박이 쏟아져 내리는 거였다. 결국 다시 내려오고 말았지만 8담을 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천지를 보러 가는 날의 날씨가 지나치리만큼 쾌청했다. 이 먼 길을 달려와 천지를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싶었는데 구름 몇 조각 걸쳐 있는 하늘이어서 틀림없이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은 마냥 설레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백산(長白山)이란 커다란 건물로 들어가 매표를 한 후 백두산까지 올라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관광객을 싣고 나르는 셔틀버스가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1시간가량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내처 올라가니 드디어 백두산 천지가 고개 위로 가려져 있다.
커다란 광장에서 내려 1441개의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천지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이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처럼 인(人)과 폭(瀑)이다. 거지반 다 중국인들이었는데, 백두산 천지는 우리나라 영토임에도 중국인들이 즐겨 다니는 광관지가 되어버린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있을 때 이따금 가마도 보인다. 두 사람이 앞뒤로 가마를 어깨에 메고 사람을 태운 채 올라가고 있다. 올라가는 데 10만원이라고 한다. 왕복은 15만원이다. 그냥 빈 몸으로 올라가기도 힘든 데 사람을 태우고 가마를 멘 가마꾼의 얼굴에서 붉은 힘줄이 그어졌다.
올라가면서 실낱같은 계곡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계곡 주변으로 여러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나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백두산의 정상부에 신비롭기까지 하는 야생화를 보면서 통일을 기원하는 염원이 저렇듯 야생화로 피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천지가 보였다. 운이 좋았던지 구름이 듬성듬성 깔려있는 맑고 투명한 자태였다. 아. 백두산 천지여! 내 조국 신령한 산이여! 내가 예까지 와서 그대를 보는구나. 나는 감격에 젖어서 한참동안 천지를 바라보았다.
13개의 봉우리 가운데 중국 소유의 것이 많지만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북한 쪽으로 더 많이 내려간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도 그 틈새에 끼어 평생 다시 한 번 또 올까 싶어 사진을 찍었다.
천지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풍광보다도 압권이었다. 단순히 넓은 호수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 꼭대기에 자리한 천지의 모습은 한마디로 신비함 그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백두산 천지를 찾아가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백두산 천지관광은 1년 중 5개월이 피크라고 한다. 5개월을 넘기고 나면 천지는 눈으로 뒤덮여 사람이 오갈 수가 없단다. 그 눈과 얼음이 녹은 이듬 해 봄이라야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역시 5개월 장사를 위해 열심히들 하는 모습이다.
하산한 후에는 금강대협곡을 보았다. 백두산이 화산폭발로 인해 용암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V자 형태의 계곡으로 폭 100m~200m에 깊이가 70m, 길이는 15km에 이른다. 이른바 ‘그랜드 캐년’이라 불린다고 한다. 백두산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윤동주 생가와 두만강
다음 날 아침, 3시간 동안 차를 달려 용정으로 향했다. 역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옥수수밭 뿐이었다.
용정은 남쪽으로 두만강을 둔 시로서 인구가 26만 6천 명이다. 그중 조선족인구가 67.6%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족음악과 무용, 그리고 민족풍속이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중국조선족민속문화의 보물고로 불린다. 용정으로 들어와 말로만 듣던 해란강과 일송정을 차창으로 볼 수 있었다. 연길해란호민속촌휴가구에 자리잡은 해란강 골프장은 동북 3성 최대규모의 골프장이 있다. 비암산 일송정은 비암산 북쪽 산정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틈에 뿌리박고 자란 소나무가 흡사 돌기둥에 청기와를 얹은 정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일송정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비암산 일송정은 용정의 교원과 학생들의 원족장소로, 반일투사들의 비밀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1930년대초 일제는 <용정에 든 수재는 일송정 귀신 탓>이라고 하여 트집잡더니 밤중에 군경을 시켜 나무에 구멍을 뚫고 후추가루를 가득 채워놓은 다음 쇠못을 박아 죽게 만들었다. 그후 일송정 푸른 솔은 시들기 시작하더니 1938년경 영영 죽어버렸다. 1991년 용정 사람들은 소나무 한 그루를 옮겨다 심었으나 살려내지 못했다. 그 이듬 해 3월 재차 소나무를 옮겨 심었는데 씩씩하게 자라났다.
<일송정 푸른솔은······> 언제 불러도 뭔가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 솟구치는 노래. 바로 그 노래의 탄생지인 일송정과 해란강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겨보았다.
용정중학교를 향했다. 옛날에는 대성중학교였는데, 당시 그 학교를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자기의 시와 삶을 바친 윤동주(尹東柱)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고, 기념관이 있었다. 윤동주 시인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다. 시인은 그 시집을 통해 일제식민통치를 저주하고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통탄했다. 다시 차를 돌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았다. 윤동주 생가는 최근 새로 지은 듯 말끔한 모습이었고, 기념관을 새로 지어 유품을 곧 옮길 예정이었다. 마당 여기저기에는 윤동주의 시가 조각된 돌들이 많았다.
윤동주 생가를 뒤로 하고 다시 도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두만강이 있었는데, 다리 하나를 사이에 놓고 절반은 북쪽, 절반은 중국땅이었다. 지척에 있는 북한땅을 바라보다가 두만강가에 나앉아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줄기를 바라보았다. 비교적 수심이 깊어 보이지 않아 얼마든지 북한땅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주 한 병을 까서 둘둘 마시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배사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를 젓는 배사공 대신 장난감 같은 관광선이 질주하는 풍경이다. 두만강 또한 중국의 관광선만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두만강가에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신 후 오랫동안 지체할 수가 없어 연길공항으로 향했다. 연길공항에서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어서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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