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같이 흘러가는 인생사
한 세상을 살아가며 잠시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일지라도 삶에서 만나 서로 헤어지는 마지막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았으면 싶네요. 그러나 살다보면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사소한 감정의 차이에서 불씨가 되어 멀어져야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발생한답니다.
오늘이 마치 나의 마지막 인생의 날인 것처럼 상대를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듯이 등 돌릴 때가 있지만, 인간의 인연이란 한번 만나게 되면 정말 쇠심줄보다 더 질긴 것이 인연입니다.
실날같은 희망을 주던 사람이어서, 그 사람만 생각하면 격정(激情)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메어지도록 또 다시 보고파지고 어디서 무얼 하고 살아갈까? 왜? 그리 쉽게 헤어져야 했을까? 좀 더 내가 양보하고 참아주고 했으면 될 일을.......하며 후회 섞인 아쉬움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필자의 경우 남태평양 피지에서 이민생활 당시 ‘나후토카’ 이웃에 살던 피지안 여인 ‘스잔나’ 아줌마의 딸 ‘이년아’가 우리와 이별이 싫어 서럽게 울던 그 애가 지금은 얼마나 컸을까? 또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동경(東京) 번화가 ‘유라꾸죠(有樂町)’ 밤길을 홀로 헤매던 때 길 안내로 우연히 친해졌던 예쁜 여대생 ‘야애꼬’는 지금 어디서 살까? 중국 복건성(후첸생) 복청에서 길 안내를 함께해 준 젊은 ‘스지이’, 중국에서 6개월 만에 고국에 돌아와 울산 동갑내기를 찾아갔더니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은 ‘김사용’ 친구. 철원 매봉산 전투에서 상이용사로 돌아왔으나 투병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꽃다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슬픔의 그리운 얼굴 ‘김일환’ 친구, 친분이 두터웠던 한분의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해 보증을 섰다가 나중에 나마저 추운겨울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던 일, 그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형편이 좀 풀렸을까? 한편, 내 곁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재산을 말아먹던 악연들.
인생사가 다 삶이 구름 같고, 흘러가는 강물 같아 아무렇지도 않게 고요히 흘러갔지만, 그 헤어짐의 아픔들이 시간이 많이 흘러갔어도 더욱 남는 그런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지요.
만남의 흔적들을 기억하는 속에서도 아름다운 흔적들로 남고 싶군요. 마치 오늘 내가 걸어갈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듯(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과연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상으로 심어주었을까? 를 생각해 봅니다.
만나보면 볼수록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 다시 만나보고 싶어지는 사람, 진솔하고 정겨웠던 그 사람, 좋은 사람으로 깊이 마음을 주고픈 사람,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등등..... 그러나 행복할 때의 사람보다 불행한 위기 때 생사를 함께했던 고난의 친구가 더 강렬하게 기억에서 지을 수 없는 까닭은 함께 아픔을 참으며 겪었기 때문이겠지요.
심여수(心如水)란 뜻은 햇빛같이 밝고 연꽃과 같이 맑은 생각을 말하는데 날마다 기쁜 마음으로 살아있으란 뜻으로 같은 물이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우리들 인생같이 평범한 진리에 순응하며 심여수(心如水)의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세월도 빨라 이 해가 저물어가는군요. 자두꽃 향기에 취해 눈이 감겼던 봄이 어제 같은데 벌써 짙게 물든 선홍빛 단풍이 샛노란 날개를 달고 석양깃을 넘어가는 동짓달 오솔길 여기저기에 잎새들이 나뒹굴고 있군요.
가을은 정녕 아쉬운 감정을 수놓는 계절인가 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 계산없이 살아온 한해의 날들이 저물어가는 아픔을 달래려면 이런 때 그리운 이에게 모진마음 다 내려놓는 애절한 한통의 편지를 띄워 보십시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