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은 다산의 가르침대로 유인(幽人)의 삶을 살기 위해 대구면 백적산 기슭에 일속산방(一粟山房)을 짓고 30년간 땅을 일궈 살았다. 일속산방은 황상상 예순 둘이 되던 해, 그러니까 30년을 살고 나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 뒤편 언덕에 한 칸짜리 산방을 가르키는 것으로 ‘좁쌀만한 방’이라는 뜻이다. 다산이 해배되던 1818년 백적산에 와서 살기 시작했고, 1849년에 일속산방을 짓기 시작해 6년이 지난 1855년 완공했다.
황상은 그런 일속산방을 ‘소천하’라 불렀는데, 이는 손바닥만한 방에 세계지도를 붙여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네 개의 문에 각기 다른 이름을 내걸기도 했다. 동쪽은 석영옥, 북쪽은 만고송실, 남쪽은 일속산방, 서쪽은 노학암이라 명명했다.
황상은 일속산방가 첫 구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일속산방 작은 천하 새롭게 지으니
一粟新成小天下
담복화(치자나무:황상의 별호) 늙은이 호방하게 노래하네
薝蔔花叟放浩歌
황상은 일속산방에서 독서를 하고, 시를 짓고, 차를 마시며 지냈다. 한평생 꿈꾸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셈이었다. 특히 일속산방 좌우로는 땅 속에 박힌 거대한 바위가 있었으므로 자연미가 넘치는 곳이었다.
일속산방을 완성했을 때 다산의 큰아들 정학연은 축하의 편지를 보냈고, 초의는 일속암가(一粟庵歌)를 지어 보냈으며, 만년에 교류했던 김류는 일속산방설을 보냈다. 소치 허련은 일속산방도를 그려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일속산방은 많은 지식인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땅 속 알 수 없는 마귀의 시샘이었을까. 황상은 일속산방을 지어놓고 1849년부터 남린이 시작한 송사에 휘말리게 된다. 피를 말리는 송사에 그저 책 밖에, 시 밖에 모르는 샌님 황상은 안절부절한 세월을 살 수 밖에 없었다. 30년 이상 살아오면서 일궈온 터전을 송두리째 내놓아야할 처지는 참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정학연에게 어떤 방법이 없겠느냐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갈수록 일은 꼬였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빚을 갖다 쓰고 갚지 않은 채 도망치려 했다는 것이 황상의 죄목이었는데, 마침내 황상은 강진 현감에게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갈 상황이 되고 말았다. 120석을 당장 바치고 1천 냥 금전으로 보상하라고 엄명이 내려졌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아껴주던 정학연이 세상을 떴고, 황상은 강진현감에게 불려가 곤욕을 치렀다. 남린은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던 중 전답 문제로 서운함이 생겨 보복 차원에서 황상을 괴롭혔다는 말도 있지만, 황상의 늘그막은 그 일로 암담하고 참담했다.
황상은 강진현감에게 대죄(待罪)를 겸한 탄원서를 보내게 된다.
--남이 밀쳐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지내며 쟁기와 보습으로 농사일에 힘쓰며 살아왔습니다. 이웃에 사는 늙은이가 산속 해가 저문 것을 알려주면 괭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는 어제나 오늘이나 명아주국을 내오지만 맛이 모두 달기만 합니다. 쑥대머리 손자는 차 한 잔을 내오니 이것이 산에 사는 늙은이의 평범한 일상입니다.
황상은 이렇게 시작한 탄원서에서 4언 8장의 시를 지어 자신의 일생을 술회하는 글도 함께 강진현감에게 보냈다.
첫장에서는 다산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촌놈이 다산 같은 인물을 만나 자상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둘째 장에서는 스승 다산으로부터 <삼근계>를 받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다산은 그야말로 산처럼 우뚝했다는 내용이었다. 셋째 장은 스승이 해배되어 두릉으로 가셨으나 10년 동안 스승을 찾아뵙지 못한 회한의 세월을 말했다. 넷째 장은 스승의 회혼을 맞아 뒤늦게 길을 나섰다는 내용이었고, 다섯 째 장은 스승의 재회였다. 스승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나 며칠 후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상복을 입은 채 고향으로 돌아온 내용이었다. 여섯 째 장은 추사 산천과 글로 맺고 권돈인의 부름을 받아 따뜻한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일곱째 장은 정학연이 세상을 떠난 슬픔으로 가득찬 내용이었다. 기댈 곳이 없고 편지 하나 보낼 곳이 없음에 대한 마음의 병을 말했다. 마지막 여덟째 장은 이번 송사로 인해 사또를 성가시게 했다는 점과 그 원인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너그럽게 처분을 해 주십사하는 내용이었다.
황상은 이 여덟 편의 시로 자신의 일생을 간단히 설명하고 간곡하게 인자한 처분을 바라는 내용으로 탄원서를 보낼 만큼 말년이 절박했다. 10년 이상 남린에게 괴롭힘을 당한 황상. 그 때마다 정학연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했던 황상이었다. 그래서 정학연은 새로 부임한 강진현감에게 부탁하겠으니 일을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보내곤 했다.
남린은 허점을 이용해 남의 토지를 빼앗는 인물이었다. 그 남린 때문에 황상은 애간장을 녹이며 말년을 보내야 했으니 이 같은 일을 일컬어 호사다마라 해야 옳을까.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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