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다산의 1등 제자 황상의 ‘일속산방’을 그린 ‘백적산장도(白磧山莊圖)’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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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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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1등 제자 황상의 ‘일속산방’을 그린 ‘백적산장도(白磧山莊圖)’ 발견
소치 허련 작품으로 허련의 「一粟山房圖」외 또 다른 작품

  
미 발표된 백적산방도

일속산방도

황상은 다산의 1등 제자이다. 일속산방은 ‘좁쌀 한 톨 만한 작은 집’이라는 뜻으로 대구면 천개산 백적동에 있던 황상의 실학적 삶의 공간이었다. 허련은 1846년 권돈인의 집에 머물며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맺었다. 또한 정약용의 아들 학연과 교유관계를 맺었는데, 만년인 1856년에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그림그리기에 몰두하였다.

허련이 황상에게 ‘일속산방도’외에도 ‘백적산장도’를 그려 준 것은 허련과 가까이 지내는 학연, 그리고 권돈인이 황상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일속산방도’는 좌측에 본집과 동떨어진 ‘일속산방’의 작은 집이 그려져 있으나, ‘백적산장도’는 일속산방을 확대해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29.5×21.0㎝(사진 좌측)의 크기로 일속산방도(23×32㎝ 사진 우측)와는 크기가 약간 다르다.

정재원(1730-1792)은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의 아버지로 참봉을 거쳐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1780년(정조4) 예천군수, 1790년 진주목사가 된 이로 그의 편지 한 통이 필첩(筆帖)에 수록되어 있다. 이 필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추후 전시될 예정이다.

허련이 쓴 백적산장도의 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白磧山莊圖 (하얀 바위가 많은 산 속의 집 그림)

 

마을의 뿌리는 본래

邨居本是

송나라 월주 산음의 갈천민(葛天民)인데

葛天民但

다만 산이 푸르게 되어

到山靑便

곧 봄이다.

是春兩岸

벼랑에 복숭화꽃 핀 시내

桃花日溪

그 가운데서 노인이

水此中老

그물로 물고기 잡는다.

却打魚人

 

갈천민 : 송나라 월주의 산음인. 처음에 중이 되었다가 환속한 뒤 항주의 서호(西湖)가에 살면서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송하훈 기자

 

사진 2개

백적산방도 : 미발표된 백적산방도

일속산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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