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탐진강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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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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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윤광제의 탐진강 이야기 5

  
장흥댐에서 바라본 탐진호

‘강진의 젖줄’, ‘어족자원의 보물창고’라 불리던 탐진강은 이제 없다. 점점 줄어드는 어획고, 사라져가는 패류, 쌓여가는 진흙으로 인해 예전의 명성마저 퇴색되고 있다. 심지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낄 만큼 탐진강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생기 넘쳤던 그 시절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면서 탐진강이 강진의 미래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탐진강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원류를 따라 걸어본다. -편집자 주-

 

탐진댐, 전남 서남부의 젖줄로

탐진강물의 지류가 모이고 모인 곳, 9개 지자체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곳이 장흥댐이다. 장흥댐은 왼쪽 끝이 장흥군 부산면 지천리 오른쪽 끝이 유치면 대리에 이르는 거대한 댐으로 1997년 11월 장흥군 부산면 지천리에 공사가 착공돼 2006년 6월 8일 준공됐다. 6,712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전남 서남부(목포시, 신안군, 진도군, 무안군, 영암군, 해남군, 강진군, 장흥군, 완도군)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원래 탐진다목적댐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2005년 6월 장흥다목적댐으로 바뀌었다. 탐진다목적댐이라는 이름은 강진군민들에게 공감가는 이름이기는 했지만 탐진댐이 위치한 곳이 장흥이다보니 장흥군민의 여론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장흥댐 관계자의 말이었다. 지역을 알리고 싶은 지자체의 마음이 묻어나는 대목인데 어쩌겠는가? 댐소재지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요구를 한 상태였고 수자원공사가 하천의 이름이 먼저냐, 소재지의 이름이 먼저냐는 논리에 대응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댐측에서도 소재지 지역민과의 유대가 중요한 만큼 수용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본다.(필자 또한 강진군민의 입장에서 탐진다목적댐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기는 매한가지이다.)

 

저수지 유역면적은 193㎢이며 총저수량은 1억9,100만㎥, 댐길이 403m에 저수높이가 53m이다.

댐은 앞에 언급한 전라남도 9개 시·군에 하루 35만㎥씩 해마다 약 1억 3000만㎥(톤)의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공급가능하고, 800kw급 수력발전기 1기를 갖추어 해마다 4,500Mwh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탐진강 하류의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장마철 8백만㎥(톤)이상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댐이 건설되면서 장흥군 유치면과 부산면, 강진군 옴천면 지역 일부가 수몰됐으며 보상면적은 11.25㎢(약 341만평)에 달한다. 더불어 697세대 2,121명이 수몰민이 됐다. 이 때문에 기존의 도로도 수몰됐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 31.3km(국도14.1km, 지방도이하 17.2km)의 길을 조성되기도 했다.

 

장흥댐 물문화관에서는 장흥댐의 역사와 함께 문이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기 쉽게 소개를 해준다.

또 수몰지역에 대한 회상과 그들의 희생(전남 서남부지역의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해 산 좋고 물 맑던 고향산천을 떠나야 했던 수몰지역 주민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풍년농사를 짓고 살던 시절,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아군과 적군이 대치되는 상황을 겪어야 했던 이야기 등 돌아보면 가슴아픈 우리네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시간이 되면 방문해볼 것을 권해본다.

 

탐진강물 따라 아름다운 정자 줄지어

탐진댐에서 흘러나온 물은 다시 장흥읍 방향으로 이동을 하는데 풍부해진 수량과 함께 형성된 절경 덕에 하천 곳곳에 아름다운 정자가 설치돼 있다. 용호정, 동백정 등 이름난 곳이 많지만 하천의 흐름을 따라 가면서 장흥군 부산면 기동리 기동교 옆에 세워진 경호정을 가장 먼저 찾았다. 경호정은 1593년 운암공 위덕관이 고향으로 돌아와 세운 곳으로 정자 앞에 식재된 왕버들나무는 수령이 250년을 넘겼으며 정자 앞을 지나는 강물과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연출한다.

높이 15m, 둘레가 3m에 이르는 왕버들나무는 지난 2012년 12월에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장흥읍 부산면 일대를 흘러가는 탐진강물
 

장흥읍 부산면 기동리에 위치한 경호정

부산면 기동리를 거친 강물은 부춘리로 향했다. 부춘리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된 부춘정 원림(富春亭園林)이 있는 곳이다.

부춘정은 남평문씨 문희개(文希凱)가 정유재란이 끝나고 뒤에 향리에 돌아와 세운 것으로 창건 당시에는 청영정(淸穎亭)이라 불렀다고 한다. 문희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참전해 공을 세워 고창현감을 지냈고, 정유재란 시에 성을 지킨 공을 세웠다.

이런 청영정을 1838년(헌종 4년)경 청풍김씨의 후손 김기성(金基成)이 사들여 오늘과 같은 정면3칸, 측면2칸의 2실(室)이 있는 팔작집으로 개축하고 이름도 부춘정으로 고친 것 전하고 있다. 정자의 서쪽에는 탐진강이 인접해 남쪽으로 흘러가고 강둑에는 적송·푸조나무·개서어나무·단풍나무 등의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뤄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현재는 청풍김씨 수암공파가 관리보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 수려한 풍경을 보면 무릎을 탁 치면서 장흥군이 자랑할 만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잠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근심, 걱정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탁 트인 전망과 맑은 물 그리고 파란하늘이 조합되는 순간, 정자에 앉은 내 자신이 잠깐 유체이탈을 해서 무릉도원에 온 느낌을 갖게 한다.

 

부춘정에서 그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 강물은 다시 부산교를 지나 장흥읍으로 향한다.

부산면은 탐진강물 덕에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지형적 영향뿐만 아니라 더불어 정신적 지주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둘러봤다. 그랬더니 부산면 맞은편 구룡리에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절이 하나 있고 그 절 위에는 희미하지만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던 불상이 나타난다.

 

아마도 마애여래좌상이 마을의 평온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애여래 좌상은 구룡리 산에서 탐진강을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 마애여래 좌상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수미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다. 마애여래좌상하면 떠오르는 장흥의 인물로는 원감국사 충지가 있다.

격동의 시대인 고려 후기에 활약했던 그를 다음주에 조명해본다.

 

목 마른 지구촌

우리가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물은 강이나 호수, 그리고 지하수 중의 일부만 사용이 가능한데 지구상 전체 물의 약 0.05%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강우량은 1,245mm로 세계 평균 880mm의 1.4배 정도이지만 국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아 1인당 강수량이 연간 2.591㎥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수치는 세계 평균 19,635㎥의 13%에 불과한데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에 해당된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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