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황제 여색을 중시해 미인을 사모했지만 / 수 년 간 천하를 다스리면서도 얻을 수 없었네 / 양씨 집에 이제 막 장성한 딸 있는데 /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 남들은 알지 못했지 / 타고난 고운 자태 버려지기 어려운 법 / 하루아침에 뽑혀서 군왕 곁에 있게 되었네 / 눈길 돌려 한 번 웃으면 온갖 교태 생겨나니 / 육궁의 후비들은 화장해도 빛이 안 났네 / 봄추위에 화청지 목욕을 허락하시니 / 매끄러운 몸에 기력이 없어 시녀가 부축했으니 / 그것이 처음 은총을 입던 때였네 / 검은 머리 꽃다운 얼굴에 한들거리는 금비녀 / 연꽃무늬 휘장 따스한 곳에서 봄밤을 보냈지 / 봄밤은 너무 짧아 해가 중천에 떠올라도 / 이때부터 군왕은 조회에 나가지 않으셨네 / 환심을 사 연화 모시느라 쉴 틈이 없으니 / 봄이면 봄놀이 따라가고 밤에는 밤을 독차지 / 후궁에는 아름다운 삼천궁녀가 있어도 / 삼천 명에 내릴 총애 한 몸에 모아졌네 / 황금 궁궐에서 단장하고 고운 자태로 밤 시중을 드니 / 옥루의 연회가 끝나면 취기가 봄과 어울렸지 / 형제자매 모두 다 봉토를 나눠먹으니 / 부러워라. 광채가 가문에 번쩍이는구나 / 마침내 온 천하의 부모들 마음이 / 아들 낳기보다 딸 낳는 것 중시하게 되었네 ---중략---
백거이의 <장한가>이다. 이 장한가는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를 장편 서사시로 꾸며 자세히 노래했다.
양귀비는 누구인가? 그녀는 고아 출신으로 양씨 집안의 양녀로 들어가 17세에 현종의 아들인 수왕(壽王)의 비가 되었다. 그러나 양귀비를 보는 순간 절대적 매혹을 느낀 현종은 다른 여자를 아들에게 주고 양귀비를 자신의 곁에 두고 절대적 사랑을 나누었다.
화청지는 화청궁(華淸宮)을 일컫는 곳으로 온천으로 이름 난 여산(驪山) 북쪽 기슭에 있다. 주나라 때 이곳을 왕실의 별장이 만들어졌고, 당나라 태종은 탕천궁(湯泉宮)이라고 했던 이곳을 현종은 747년에 화청궁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재위 41년 동안 36번이나 이곳을 찾았고 751년 겨울에는 이곳에서 96일 동안 양귀비와 함께 지냈다.
화청지에는 구룡호와 함께 여러 욕탕(浴湯)이 있는데, 성신탕(星辰湯) 곁에 양귀비의 상이 있다. 당시 양귀비는 대충 키가 164cm, 체중이 69kg 정도의 여성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화청지 양귀비상은 밀로의 비너스상과도 비슷하게 쭉 빠진 몸매이다. 게다가 상반신은 물론 하반신의 한쪽 다리를 다 드러낸 모습이어서 요즘 같은 세상에 인터넷에서조차 볼 수 없을 만큼 전라(全裸)이다. 이 같은 것은 이탈리아 공원에 있는 전라의 남성상을 본떠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양귀비 상 앞뒤로는 여러 욕탕이 있다.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성신탕, 신하나 시녀들이 이용했다는 상식탕, 현종 전용의 제법 큰 연화탕, 그리고 특별히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어 준 해당탕이 있다. 액취증이 있는 양귀비는 목욕을 즐겨했는데, 현종은 비염이 심해 그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양귀비의 묘는 무릉박물관에 있다. 현종이 양귀비의 미색에 빠져 안록산의 난을 겪게 된다.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양귀비의 엉덩이만 만지작거렸으니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양귀비의 친척인 재상 양국충이 동북 지방의 장군 안록산과 대결구조에서 755년 2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북경에서 낙양으로 쳐들어왔다. 관군이 반군에 의해 대패하자 현종은 양귀비와 함께 사천쪽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런데 현종은 급하게 피난을 가는 바람에 식량을 제대로 추스르질 못했고, 분노한 호위병들은 양국충을 죽인 다음 양귀비까지 죽게 만든다. 756년 7월 15일 그 무덥던 날, 양귀비는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양귀비에 홀딱 빠져 나라를 9년간의 전란 속으로 몰아넣은 현종은, 그러나 마지막 양귀비를 죽임으로써 살아날 수 있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양귀비의 묘에도 양귀비 상이 있다. 한백옥으로 만든 것으로 유명한 화가 왕서경의 설계로 1989년 만들어졌다. 묘에 있는 양귀비 상은 3.8m로 38세의 나이를 의미하며 긴 치맛자락을 드리운 자태이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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