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탐진강 이야기 8

‘강진의 젖줄’, ‘어족자원의 보물창고’라 불리던 탐진강은 이제 없다. 점점 줄어드는 어획고, 사라져가는 패류, 쌓여가는 진흙으로 인해 예전의 명성마저 퇴색되고 있다. 심지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낄 만큼 탐진강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생기 넘쳤던 그 시절이 다시 오기를 기대하면서 탐진강이 강진의 미래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탐진강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원류를 따라 걸어본다. -편집자 주-

탐진강 물길은 장흥읍에서 군동면으로

장흥읍을 지나온 탐진강물은 군동면으로 흘러간다. 눈이 온 뒤라 하늘이 높고 푸르다

정남진 장흥토요시장 구경을 하면서 한숨을 쉬었던 탐진강물은 장흥대교와 평화교 아래를 통과하면서 강진군 군동면 방향으로 물길을 이어간다.

지난 1일 새해를 맞아 기쁜 마음으로 정남진 장흥토요시장 부근에서 다시 길을 나섰다.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목도리도 두르고 모자도 쓰고 신발끈을 단단히 매고 탐진강변을 좀 걸어보려고 했는데 이날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조금 걸어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얼른 가까운 주유소 주차장에 둔 내 차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눈보라는 어찌나 심하던지 짙은 안개가 낀 듯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운전에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이날 하늘은 눈을 한바탕 쏟고 나서인지 대단히 높고 푸른색을 띄었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눈 내린 탐진강과 하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삼일 뒤인 4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강 하나를 끼고 군동면이 둘로 나뉜 형국이라 먼저 군동면소재지 건너편 마을 방향에서 둘러보기로 했다. 석교다리를 지나 석교마을, 덕천마을, 양산마을, 대곡마을, 중산마을, 금안마을을 차례로 통과한 뒤 탐진강변으로 갔다.

그제와 오늘, 겨우 이틀 사이인데 날씨는 천양지차였다. 바람에서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고 탐진강변을 걷다가 잠깐 쉬려고 앉았다가 드러누워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포근했다. 탐진강변에서 먹이를 뒤지는 고니와 물오리, 왜가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편안했다. 그런데 탐진강변을 걷는 내내 길 왼쪽에 줄을 지어 서 있는 간판이 나의 눈을 불편하게 했다. 물론 탐진강을 지키려는 관공서의 노력임을 알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저 간판만 없으면 탐진강이 더 멋져 보일텐데...’.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탐진강둑의 갈대밭 사이를 걸으면 마치 배우가 된 것 같은 착각에 괜히 모델처럼 자세를 잡아보고 셀프카메라를 찍게 된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 나들이 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오늘은 위치만 확인하자’는 생각으로 편하게 갔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때마침 휴대전화가 정신없이 울렸다. 읍에서 ‘차 한잔 하자’는 어떤 선배님의 연락이었다. 농담으로 하는 얘기지만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했던가? 일은 나중에라도 하겠지만 반가운 선배님의 연락인지라 거절 못하고 다시 읍으로 가야했다.

탐진강과 전설(傳說)

못가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용소 전설. 그리고 배경이 된 용소에서 고니가 먹이를 찾고 있다

기쁘고 좋은 일은 금방 가고 나쁘고 불편한 일은 무지 더딘 것이 시간이라더니 어제는 너무 빨리 하루가 지나버렸다. 그래서 탐진강을 제대로 둘러볼 시간이 모자라 5일 아침부터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탐진강으로 나갔다. 두 번이나 군동면 지역 탐진강을 둘러봤지만 그럴싸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풍동리까지 왔는데 탐진강변을 둘러보고 인터넷 지도를 보다가 ‘용소리’를 발견했다. 용소리(龍沼里)는 지명에서 바로 용과 연못이 연상됐고 ‘용은 물을 사랑하고, 불도 사랑하고, 무거운 것도 좋아하고 글도 좋아한다고 했으니 가보면 뭔가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군동면에 살아도 군동면 마을 위치도 제대로 모르니 네비게이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용소마을’을 검색하니 길이 딱 나왔다. 네비게이션은 사송마을, 못가, 안지마을을 차례로 안내하고 된장으로 유명한 신기마을을 지나 골짜기로 나를 인도했다. 골짜기까지 와서 보니 아무리 봐도 용이 사는 연못은 안 보이는 지라 지나가는 할머니께 군동면 시목마을(감나무골)에서 온 윤 아무개라고 소개를 한 뒤 여쭤봤다.

“어르신! 용소라는 연못이 어디 있나요?”

이른 아침 찬 바람 맞으며 길을 걷던 할머니는 “용소? 나는 비자동에서 시집와서 용소가 뭣인지 모른디!” 라고 하시더니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께 나를 인도했다.

“여말이오, 감낭구골에서 온 젊은이라는디 용소가 어디요? 좀 갈쳐주씨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씀을 바로 알아들으시고는 “이~잉, 쩌그 사송 다리 옆에 탐진강이 용소여!”라며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길을 나서려는데 할머니께서 “젊은이 가는 길이믄 마을 회관까지만 태워줄랑가?”라고 물으셨다.

어르신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바로 조수석 먼지를 한 번 탈탈 털어주고 어르신께 자리를 청했다.

차로 가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겠지만 쌀쌀한 날씨에 200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야 했던 할머니께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는지 차를 내리시면서 연신 “고맙네, 으짜든지 잘 되소”라는 덕담을 주고 회관에 들어가셨다.(오늘(5일)은 군동의 10개 마을에서 동계가 있는 날로 마을마다 회관에서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준대로 사송에 도착하니 안지 마을 앞에 있는 큰 하천(탐진강)이 보였다. 낚시하는 분께 용소리 전설을 물어보니 외지인이라 모른다고 손사래를 쳤다. 할 수 없이 민가를 두드렸다. 할머니 한 분이 동계에 참석하시려는지 멋지게 차려입고 출타를 준비하셨다. 시목에서 왔다며 소개를 간단히 하고 용소에 대해 묻자 바쁘실 텐데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셨다.

“예전에는 늪이었다고도 하는디 500m의 길이에 폭은 약 80여m 정도 되는 용소는 어떤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었다고 해. 당연히 물고기가 많이 살고 덕분에 낚시꾼도 많았제. 그라고 저 위에 소(沼)의 북쪽 언덕에는 낭떠러지 절벽이 있어. 그 절벽에 굴 세 개가 있었다고 하드라고. 용소에 잠겨 있어서 그 굴의 깊이는 몰라도 어렸을 때 어른들 말씀에 그 굴에서 용이 살았다고 하드란 말이시. 그란디 그 옛날 큰물 지고, 논 경지정리 한다고 뭣을 하다본께 인자 다 메워져 부렀제. 지금은 수심이 얕아져서 얼마 안 깊은디 그래도 굴이 있는 부근은 아직도 시퍼런 기운이 있다고 하데.”

어르신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무릎을 치면서 “인자 동계에 가야쓰겄네” 하시며 몸을 일으키셨다.

나는 할머니께서 바쁘신 와중에 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으니 이야기 값이라도 할 겸, 할머니와 친구 분을 차에 모시고 안지마을회관까지 모셔다 드리고 용소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