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삼국지연의도 이야기 6

의석조조(義釋曹操)

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위촉오 세 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진나라 진수(陣壽:233~297)의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토대로 하고 〈한진춘추(漢晉春秋)〉와 〈삼국지주(三國志注)〉를 참고로 하고 14세기 작가 나관중(1330?~1400)의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 놓은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金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삼국지는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에서 모두 사랑을 받는 명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민화전이 최근 강진에서 열렸다. 한국민화뮤지엄에서 열린 ‘석지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 특별전’이 바로 그것이다. 석지(石芝) 채용신(蔡龍臣)은 고종 황제의 어진을 그렸던 초상화가로서 삼국지연의도를 단순히 삼국지연의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을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말 우리민족이 품고 있던 간절하고 원대했던 뜻을 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민화를 풀어주는 남자 ‘윤광제 시조시인’과 함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삼국지연의도의 비밀을 함께 풀어보자. -편집자 주-

적벽에서 선봉장 황개의 기습에 당해 큰 피해를 입은 조조는 황급히 적벽을 벗어나 오림이라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이 과정에서 상처입은 맹수를 잡아먹으려는 이리떼처럼 오나라 군사들이 조조의 위나라 병사들을 사방에서 덮쳐오자 100만 명이나 되었던 위나라의 병사들은 이제 채 1만 명이 되지 못할 정도로 병력이 줄어버렸다.

의석조조(義釋曹操) : 관우가 옛 의리를 생각해 조조를 놓아주다.

얼마쯤 벗어났을까? 조조는 추격부대들의 말 발굽소리도 잦아들고 사방이 조용해지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따르던 병사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냐?” “이곳은 오림의 서쪽이자 의도의 북쪽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의석조조도(義釋曹操圖)
병사의 말이 적잖이 해방감을 줬는지 갑자기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껄껄하며 승자의 웃음을 보였다.

곧 죽어가던 표정의 조조가 썩은 동삼이라도 먹었는지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는 웃음에 부하 장수들이 놀라 물었다.

“승상! 무슨 까닭에 그토록 시원하게 웃으십니까?”

“내가 웃는 것은 천하의 귀재라는 제갈량과 주유가 알고 보니 젖비린내 나는 초보 모사(謀事)꾼에 불과해 그런 것이었다. 내가 만약 군사를 움직였다면 이 숲과 골짜기에 미리 한 떼의 군사들을 숨겨 뒀을 것인데.....” 하며 제갈량과 주유 두 군사(軍師)를 비웃듯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혀 차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한 무리의 군마가 비탈길에서 쏜살같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중 우두머리 쯤 돼 보이는 홍안의 미청년이 한 손에 든 창을 하늘에 찌르며 소리쳤다.

“나는 상산(常山) 땅의 조자룡이다. 제갈 군사(軍師)의 명을 받들어 기다린 지 오래다. 역적 조조는 내 칼을 받으라!”

조조를 기다리는 관우의 모습
자룡(子龍)이라는 말에 조조는 숨이 덜컥 멎는 듯 하고 심박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지난날 당양벌에서 만부부당(萬夫不當:만 명의 군인이 당해낼 수 없는)의 위용을 떨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장수는 조운을 막으라!” 절규와 같은 조조의 명에 서황과 장합이 뛰쳐나갔고 조조는 황급히 몸을 빼내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제갈량의 단속이 있었기에 조자룡은 조조군을 무리하게 추격하지 않고 항복한 병사들을 거둔 뒤 조조군이 흘리고 간 군용물을 회수하는데 집중했다.

조조는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세우고 주위를 둘러봤다. 뒤따르던 병사들이 하나같이 초췌한데다가 무엇보다 배곯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와 말과 병사들 모두 휴식이 필요함을 느꼈다. 조조는 병사들에게 쉬면서 밥을 먹고 전투력을 복원해 다시 이동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다시 여유를 찾았는지 주위를 둘러보더니 또 주유와 제갈량을 생각하며 껄껄 웃어 제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비가 나타났다. 놀란 토끼 눈이 된 조조는 갑옷도 걸치지 못하고 황급히 말에 올랐다. 적벽을 벗어나며 그나마 남아 있던 1만 명의 병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심지어 무기는 물론 옷이며 갑옷을 제대로 걸치고 있는 군사가 드물었다. 보통 이쯤되면 참담한 생각이 들 정도였으나 조조는 그래도 전장에서 잔뼈 굵은 효웅이 아니던가 금새 여유를 되찾고 냉철한 눈으로 전방을 지켜봤다. 전방을 감시하던 정탐병이 조조에게 보고를 했다.

“앞 쪽에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좁은 길은 50여리가 가까우나 산기슭 몇 곳에 연기가 나고 있고 큰 길은 넓고 평평하기는 하되 50여 리가 멀고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조조는 선두에 서서 좁은 길. 즉 화용도라 불리는 산길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조조는 부하 장수들에게 병법에 대해 깨우쳐 주듯 일장 설명을 이어갔다.

“무릇 병서에 이르기를 허허실실이라, ‘있는 듯 하되 없고, 없는 듯 하되 있게 하라’고 이르지 않더냐? 제갈량은 꾀가 많은 자라 일부러 산에 불을 놓고 큰 길로 우리를 유도한 것이야. 만약 큰길에서 유비군을 만나게 되면 지치고 피곤한 우리 병사들 쯤이야 넓은 들에 놓인 메뚜기 떼와 무에 다르겠느냐. 다 내가 제갈량의 얕은 꾀를 헤아려 결정한 것이니 일절 다른 말은 말라!”

자신감 넘치는 조조의 말에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언덕을 올라가는데, 그곳에 바로 관우가 떡 하니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조조는 관우에게 포권의 례(包拳之禮)를 갖추고, 관우는 의로 조조를 풀어주다

눈앞에 관우를 만난 조조는 오금이 저려 말에 똑바로 앉아 있기 어려웠다. 관우의 부장인 주창이 청룡언월도 대신 들고 있고 적토마 위에 올라탄 봉의 눈을 가진 장수 관우가 노려보자 조조는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목숨 구걸을 한다. 이에 관우는 한때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고 지금의 적토마를 친히 선물해서 의형 유비에게 갈 수 있게 해줬으며 조조의 영토에서 5관을 돌파하면서 6명의 장수를 참(斬)했음에도 용서하고 통행증을 준 일 등 함께 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의리의 사나이 관우는 결국 조조와의 의리를 떠올리며 길을 터주게 된다.

관우에게 포권의 예를 취하는 조조
그림을 보자. 빨간 옷을 입은 조조가 비굴한 표정으로 관우에게 목숨을 살려달라는 듯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중국무협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조조의 손동작에 주목하자. 비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는 이런 자세를 포권이라고 한다. 천하의 조조가 포권(包拳)의 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포권은 말 그대로 주먹을 감싸쥐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왼손으로 오른손 주먹을 감싸거나, 왼손을 펴서 오른손 주먹 앞에 붙인 후 앞으로 내미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자세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빈손을 보이는 것으로 공격의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법이다. 동양문화의 경우 상대방과 신체적 접촉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서 하나의 인사문화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비슷한 것이 승려들의 합장인데, 소림파 승려들이 하는 합장은 한손을 세워 보이는 형태이며 주로 오른손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중에라도 무협영화를 볼 때 왜 포권을 하는지 생각하면서 볼 것을 권해본다.

전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선수 앙리가 당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더불어 악수례로 논란이 된 남자이다.
이러한 예는 서양에도 있는데, 악수와 거수 경례가 그것이다. 악수의 기원은 중세시대로
미국 해병대원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부터 왼손잡이보다는 오른손잡이가 많았기 때문에 오른손에 무기가 없음을 확인시키는 행위가 악수였던 것이다. 또 다른 평화의 메시지인 거수경례는 로마제국 말기에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암살 사건이 많아지면서 시민이 관리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손을 들어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이후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가 오른손으로 투구를 툭 쳐서 서로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으로 변했고 이 동작은 다시 모자를 벗거나 또는 살짝 건드리는 동작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경례가 변천을 거듭해 지금의 거수 경례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다만 지금도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두 손에 물건을 들고 있을 때, 전시상황처럼 상하급자의 신분이 노출될 위기가 있을 때는 경례를 피한다. 월남전 당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바람에 베트콩 저격수에게 사살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관우의 뒷이야기.

관우는 화용도에서 조조를 기다릴 때 제갈량과 목숨을 건 약속을 한다. ‘조조가 화용도로 오지 않는다면 제갈량을 참한다. 조조가 화용도로 왔는데 조조를 죽이지 못하면 관우를 참한다.’는 군령장을 썼던 것. 그런데, 이대로 돌아가면 관우는 죽은 목숨이 아닌가? 이때 유비가 나서서 두 사람을 중재한다. 제갈량에게 관우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 의형제를 맺으며 죽을 때는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했으니 만약 관우를 참하면 자신은 물론 장비도 목을 내 놓아야 한다고. 결국 제갈량은 유비군의 NO2. 자리를 관우로부터 빼앗는 조건으로 관우를 용서한다. 그동안 유비와 함께 10년 넘게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살았지만 단 한판의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새파란 젊은이에게 2인자 자리를 빼앗긴 관우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의석조조 장면은 삼국지연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큰 사건이었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