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구운몽도 이야기 2
HOME 회사소개 이용약관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기본스킨 오렌지스킨 보라스킨 연두스킨 그레이스킨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뉴스홈 > 만평
2015-08-26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시조시인 윤광제의 구운몽도 이야기 2
양소유, 진채봉을 만나다

구운몽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한글소설이다. 비록 유복자로 자란 그였지만 평소 효심이 지극해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그러던중 1687년(숙종 13년) 장희빈 일가를 둘러싼 상소사건에 연루돼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고 옥에 갇혔다가 선천으로 유배되고 이후 선천에서 남해로 옮겨져 집에 갇히게 된다.

이전까지 《구운몽》은 남해 유배생활중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의해 선천 유배중에 지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귀양간 아들(김만중)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 전문을 한글로 집필해 김만중은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김만중은 ‘국문가사 예찬론’과 같은 논설문에서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며 한문을 다른 나라의 말로 규정했다.

이렇듯 그의 우리말 사랑이 가득 담긴 소설 ‘구운몽’을 바탕으로 그려진 민화가 한국민화뮤지엄 1층에 전시돼 있다. ‘구운동도’가 그것인데 8폭의 병풍으로 이뤄진 이 그림은 도화서에서 그린 석채와 금분을 이용한 하사품으로 추정되며, 국내 제일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민화를 풀어주는 남자 ‘윤광제 시조시인’이 구운몽도를 삽화 삼아 구운몽전을 들려주고자 한다. -편집자 주-

 

 

소제목 : 환생

팔선녀와 희롱하다가 지각한 성진이 육관대사에게 불려가서 단죄를 받는다.

“성진아!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성진은 깜짝 놀라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소자가 사부님을 모신지 10여 년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조금도 불순한 일이 없었는데 사부님께서 그리 엄하게 문책하시니 어찌 숨기겠습니까마는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정녕 모르겠나이다.”

육관대사가 크게 노하여 꾸짖듯이 말했다.

“이쯤 되면 정직하게 답을 할 줄 알았거늘……. 수행을 하는 중이 용궁에 가서 술을 먹었으니 그 죄가 작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돌다리에서 여덟 선녀와 수작을 벌였고, 꽃가지를 꺾어 던져 명주로 바꾸면서 희롱하는가 하며, 돌아온 후에도 불법에 정진해야함에도 세상의 부귀를 생각하고, 음탕한 마음이 가득하여 경내를 더럽히고 있으니 더 이상 여기에 머물지 못하겠다.”

그제서야 잘못을 깨달은 성진은 대사에게 울며 호소했다.

“소자가 실로 죄가 큽니다. 하지만 용궁에서 술을 마신 것은 주인이 강권하니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고, 돌다리에서 선녀들과 수작한 것은 길을 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제 방에서 망상을 하기는 했으나 즉시 참회했고 자책했으며 다른 죄는 짓지 않았습니다. 설사 다른 죄가 있다한들 사부님께서 종아리를 쳐서 경계 하는 것이 옳은 줄 아룁니다. 어찌이리 박절하게 내치십니까!”

그러나 육관대사는 가을 서릿발같이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황건역사(黃巾力士:귀신 가운데 무력을 맡은 장수신의 하나로 힘이 매우 세다)는 이 죄인을 압송하여 풍도 지옥에 있는 염라대왕께 부쳐라!”

육관대사의 명(命)에 따라 염라전에 이르니 마침 팔선녀도 도착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라대왕은 그 아홉을 불러놓고 분부하는데…… “아홉 사람을 각각 영솔하고 인간 세계로 나가라.”

염라대왕의 명령에 성진과 팔선녀는 인간세계로 가게 되고 팔선녀는 각기 흩어지고 성진은 당나라 회남도 수주현 양 처사와 모친 류씨의 아들로 태어난다.

양 처사는 그의 부인 류씨와 함께 성진을 보더니 아이의 골격이 청수(淸秀:맑고 빼어남)함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아이는 필시 하늘 사람인데 인간 세계로 내려온 거요”라고 하더니 이름을 소유라 붙였다.

양 소유가 열 살이 되던 해 양 처사는 부인에게 말한다.

“나는 본래 세속 사람이 아니오. 부인과 인간 세계의 인연이 있어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소. 금강산 신선인 친구가 편지로 부른지 오래인데 부인이 고단할 것을 염려해 가지 못했소. 그런데 하늘이 도와 영민한 아이를 얻었으니 내가 맘 편히 떠날 수 있겠소. 아이가 그대를 잘 보살필 것이니 내가 가는 것을 괘념치마오.”

하고는 백학을 불러 타고 홀연히 떠나갔다.

그 후로 모자는 서로 의지하며 세월을 보내는데 양소유의 재능이 탁월해 고을의 신동으로 통했으며 심지어 고을 태수가 조정에 천거했으나 양소유는 노모를 위해 벼슬길을 마다했다.

소유가 15세쯤 되자 풍채가 반악(潘岳:고대 중국 진나라의 문인으로 미남) 같고, 문장은 이백(李白:당나라 시인. 호는 태백)같고, 필법은 왕희지(王羲之:중국 동진의 서예가) 같고 지략이 손빈(孫臏:전국시대 전략가)과 같아 천문과 지리, 육도(六韜:강태공이 지은 병법서) 삼략(三略:고대 중국의 병서)과 창 쓰고 칼 쓰는 법이 귀신같았고 마음 씀씀이는 바다와 같이 넓고 컸으며 이치에 통달함이 범인(凡人:평범한 사람)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소제목 : 양소유, 진채봉을 만나다

하루는 소유가 모친에게 고하기를

“부친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때 집안을 영화롭게 하고 귀하게 하라며 소자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어렵게 살아왔지만 이제 나라에서 과거를 열어 인재를 구한다고 하니 모친 슬하를 떠나 과거를 보러 가려 합니다. 관리가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오니 부디 허하여 주십시오.”

겉으로는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결심을 하고 통보하는 수순이라 모친도 굳이 그의 활발한 기운을 막지 못함을 느끼고 부득이 허락하고는 행장을 차려주며 당부했다.

“부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빠른 시일내로 돌아와 노모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라”

소유가 모친께 하직하고 삼척동자와 한 필의 작은 나귀로 길을 떠나 여러 날 가다가 화주 화음현에 이르니 장안이 멀지 않았다. 과거 볼 날은 멀고 산천은 아름다우니 매일 수십 리씩 가며 때로는 명산을 구경하고 때로는 옛 사적을 찾아보니 여행 중의 감회가 적적하지는 않았다.

우연히 한 곳을 보니 고운 수풀이 무성하고 버들은 그림처럼 우아하게 드리워져 있었으며 조그마한 이층집 한 채가 단청이 찬란하고 그윽하여 그 경치가 능히 만민들로부터 사랑받을 만했다. 이에 심취한 소유는 양류사(楊柳詞:버드나무를 보고 지은 글)를 지어 소리높여 읊조렸다. 이때 이층 누각에서 낮잠을 자던 아름다운 여인이 깜짝놀라 깨어 소리 난 곳을 찾다가 양소유와 눈이 마주쳤다. 옥비녀가 비뚜로 걸려 있고,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있음에도 그 미모가 감춰지지 않았다.

양 소유는 동자를 먼저 객잔에 보내 저녁을 준비케 하고 여인에게 말을 걸어 보려하니 어느새 문이 닫히고 향내가 진동할 뿐이었다.

원래 그 여자의 성은 진(秦)이요, 이름은 채봉(彩鳳)이며, 진어사의 딸이었다. 모친을 일찍 여의고 형제가 없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몸이었다. 이때 어사는 장안에 올라가고 소저 홀로 집에 있었다가 용모가 비범한 남자가 읊조리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동했던 것이다. 당시 여성들과 달리 적극적인 여성이었던 채봉은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것은 종신대사(終身大事)요, 일생 영욕과 백년 고락이 장부에 달려있다. 신하도 임금을 가린다는 옛말이 있으니 저 남자의 성명과 거주를 묻지 않았다가는 어찌 후일에 부친께 고하여 중매를 보낼 수 있겠는가.”하고는 편지를 써서 유모에게 주며 이르기를

“유모, 이 글을 가지고 저 객잔에 가서 아까 작은 나귀를 타고 우리 누대 아래에 와서 ‘양류사’를 읊던 상공을 찾아 전하여 내가 꽃다운 인연을 맺어 일신을 의탁하려 하는 뜻을 알게하오. 그 상공은 용모가 옥 같고 눈썹이 그림 같으니 바로 보아도 닭 무리 속에 봉과 같이 눈에 띌 거요.”

유모가 객잔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진채봉의 설명과 같은지라 양소유에게 진채봉의 사연을 전했다.

양소유는 진채봉의 제의에 흔쾌히 대답하기를

“소생은 양소유요. 집은 초땅에 있고, 나이는 어려서 아직 성취를 하지 못했고 오직 노모가 계실 뿐인데, 결혼은 두 집 부모님께 고하고 할 것이니 꽃다운 언약은 이제 한 말로 정하는 바이오.”

두 사람간의 약속이 정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난리가 나서 천병만마(千兵萬馬:많은 수의 병사와 말)가 고을에 들이닥치자 양소유는 급하게 산으로 피신을 했다. 피신 중에 한 도사의 집에 들러 거문고와 퉁소 연주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두 악기의 달인이 된 양소유는 도사에게 백배사례를 하고 동구 밖에 나서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깊어 도사에게 다시 인사하려 고개를 돌리니 오색구름만 영롱할 뿐 집은 간곳이 없어졌다. 기이한 인연이었다고 속으로 되뇌이며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도읍으로 내려와 방을 보니 과거가 내년 봄으로 미뤄졌다고 했다. 다시 시간이 생긴 양소유는 진 어사 집을 찾아가니 뜰 앞의 버들은 풍상을 겪어 옛날의 빛이 없고, 채색한 누각은 불에 타고 그을린 주추와 깨진 기와만 그 터가 누각이었음을 보여줬다.

속이 착잡해진 양소유는 객잔으로 돌아와 주인에게 물으니

“난리통에 진어사는 역적의 벼슬을 했다고 하여 난리가 평정된 후 어사는 극형에 처해지고 소저는 서울로 잡혀갔는데, 그 후에 들으니 소저 역시 참화를 면치 못했다는 말도 있고, 관비(官婢)가 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에 양소유는 눈물을 흘리며 행장을 수습하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주 계속

 

                             사진설명: 양소유, 진채봉을 만나다. (구운몽도 병풍 中)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기자이름없음 
만평섹션 목록으로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
농가소득 안정을 위한 강진...
정치인 출판기념회 일절 금...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
‘이기는 정당’ 되기 위해...
다음기사 : 기고- 최재용(강진군청 친환경농업과 친환경농업팀장) (2015-09-02)
이전기사 : 시조시인 윤광제의 구운몽도 이야기 1 (2015-08-26)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기고> 4만5천...
인터넷 중독은 마...
자동차 100만대, ...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게시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