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하와 새벽녘 아스라히 펼쳐진 소나무 숲 풍경. 30년 넘게 그림을 그려온 구상미술계의 대표적 중진작가인 이제훈 작가의 전시가 광주에서 열린다. 오는 18일까지 은암미술관에서 ‘무위, 새벽을 깨우다’를 주제로 개인전을 갖는다. 작가가 32년만에 고향 남도에서 선보이는 뜻깊은 전시다.
강진 출신인 이 작가는 지난 1983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재학시절 남도예술회관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시골에서 멍석과 삼베를 가져와 태우고 쪼개고 엮은 오브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첫 개인전 이후 서울로 상경한 그는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혹독한 서울생활을 치러낸다. 현재는 그림 뿐만 아니라 기획자, 문화운동가, 문필가로도 명성을 쌓아가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운동이나 전태일재단 기금 마련 전시 등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운동들을 앞장서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림 하는 사람이 주변의 아파하는 소리들을 모른척 할 수 없더라”고 작가는 말한다. “가운데 우뚝 서진 못해도 듣는 귀, 박수 보내는 마음의 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작가적 양심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30여년만에 광주 전시를 갖는 작가의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광주는 거대한 역사의 호흡이다. 광주에 온 것만으로 목이 메인다. 그림은 작가의 작은 옹알이일 뿐이다”며 말을 아낀 작가는 “오랫만에 선보이는 자리이니 만큼 작품 평가를 어떻게 받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전시주제인 새벽을 잘 느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선후배들과 그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근작 3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2011년 머물렀던 양산 통도사의 소나무 숲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부산 나무갤러리에서 통도사 소나무숲길 전시를 제안해 스케치 하러 갔다가 아예 1년간 눌러앉게 된 그곳이다.
“통도사에서의 시간은 자기수양의 시간이었다. 작업보다도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아온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나의 바닥에 쌓인 먼지와 웅크린 내 자신을 보게 됐다. 1년 동안의 새벽 산책과 마음 수양은 엄청난 기운과 자산이 됐다.” 작가는 지금도 작업을 하다 답답할 때면 통도사로 가 하루이틀 기운을 받고 돌아온다고 했다. 전시 제목인 ‘무위-새벽을 깨우다’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새벽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르지만 새벽에 받는 기운은 비슷할 것”이라며 “사회적으로도 새벽이 필요한 것 같다. 세상이 욕망으로부터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고 말했다. 작가는 당분간 ‘새벽’ 버전으로 작품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내년 봄에는 부산 나무갤러리 전시와 경기도 시흥시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작가는 현재 (사)한국미술협회 대외협력단장, (사)서울미술협회 부이사장, 범미술인 행동 300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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