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총독부박물관 연구직원이 1936년에 발행된 <도자陶磁>라는 잡지에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서 청자파편이 발견되었다는 글이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1913년 강진에 고려청자 가마터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1916년 봄 조선총독부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대구면을 방문했으며 일본인 학자들은 계속 찾아가 파편을 채집했지만 청자기와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도굴꾼들이 계속 몰려와서 가마터를 찾아 수많은 청자를 캐낸 후 가마터를 파괴해 용운리, 계율리, 사당리 일대의 가마터는 쑥대밭이 된 채 흔적이 사라지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1964년 5월 중순, 최순우와 정양모는 서울을 떠나 이틀 만에 대구면 수동리를 찾았다. 총독부박물관에서 도요지 추정지를 표시한 지도를 요모조모 살피며 현장을 다니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순경 두 사람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산에서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순경은 국립박물관에서 내려왔다고 말을 해도 막무가내로 지서로 갈 것을 종용했다. 지서에서 국립박물관 출장증을 확인한 후에 비로소 내보내줬다. 마을사람들은 나침반을 들고 다니며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두 사람이 간첩인 줄 알았다가 파편 주우러 왔다는 사실에 소쿠리에 청자파편을 들고 나타났다.
최순우는 깜짝 놀랐다. 바로 그 파편에 학과 구름과 모란 등 수많은 문양이 있는 것을 보고 심장이 뛰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와서 돈을 많이 주고 파편을 사간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때 김월엽이란 아주머니가 파편을 들고 와서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다. 최순우가 이런 파편은 우리나라 국보요 보물이라고 강조하면서 배가 고파도 팔아서는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최순우는 그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파편을 보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랬다. 그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것은 청자기와파편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찾아 헤맸던 청자기와였던가!
“이건 아들이 모아놓으면서 절대 팔지 말라고 했던 것인디 돈이 급해서······”
그 아들은 나중 청자장이 된 이용희씨였다. 어디서 주었느냐는 말에 집마당에서 주었다는 것이었다.
“마당을 파면 아직도 많이 나옵니다.”
아주머니의 말대로 안마당이고 부엌이고 할 것 없이 청자파편이 박혀있었고, 담장에서는 청자기와의 평와(平瓦) 조각도 눈에 띄었다. 최순우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바로 청자가마터임을 알 수 있었다.
최순우와 정양모는 집 주위를 실측하고 표면도면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 아들 이용희가 집으로 돌아와 놀란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나는 국립박물관 직원입니다. 소쿠리에 담아놓은 청자파편을 박물관으로 가져가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러십시오.”
“청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군요. 이곳은 굉장히 중요한 곳이니 앞으로 정식 발굴할 때까지 집 주변을 잘 보관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최순우는 서울로 올라와 김재원 관장에게 <고려사>의 청자기와 관련 내용과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적이 있다는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했는데, 관장은 발굴조사단을 꾸리라고 지시했다.
그리하여 9월 22일 최순우는 정양모·이준구·김동현 등 학예관과 함께 사당리 117번지에 도착했다. 이튿날부터 마당에 시굴갱(試掘坑)을 조심스럽게 파기 시작했다. 호미로 가만가만 파기 시작했는데 불과 10분 만에 청자 수키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러나 수키와는 시작에 불과했다.
땅을 파들어갈수록 암키와, 암·수 막새기와 등 각종 청자기와가 쏟아졌다. 어떤 것은 원형에 가까운 것도 있었고 서(西) · 누(樓) · 남면(南面) 등 지붕의 위치를 가리키는 글자가 음각된 것도 있었다. 게다가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정해(丁亥) · 임신(壬申) · 기사(己巳) 등 간지(干支)가 새겨진 조각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매병을 비롯한 청자파편도 나왔다.
때마침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최순우는 우비를 쓰고 우체국으로 가 전화로 박물관장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각 언론사에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현 선생님! 이제야 선생님이 주신 숙제를 해냈습니다!”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라던 스승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면서 2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전형필의 천학매병에 있는 69마리 학이 하나 둘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라며 소나무숲 너머로 훨훨 날아올랐다.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빛이 산뜻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하늘색의 미묘한 아름다움은
곧장 청자의 푸른 빛깔에 비유되어
우후청천색(雨後晴天色)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무심코 고려청자의 이 푸른빛을 들여다보노라면
정말 비 갠 후의 먼 하늘처럼 마음이 한결 조용해진다.
마치 고려 사람들의 오랜 시름과 염원
그리고 가냘픈 애환을 한꺼번에 걸러낸 것만 같은 푸른빛.
으스댈 줄도 빈정댈 줄도 모르는
그리고 때로는 미소하고 때로는 속삭이는
또 때로는 깊은 생각에 호젓이 잠겨 있는 이 푸른빛이
자랑스러워 고려 사람들은 비색(翡色)이라고 이름지어 불렀다.
최순우 ‘하늘빛 청자’
10월 5일과 6일, 각 일간지는 청자기와 가마터 발굴작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밝혀진 청자기와의 전설’, ‘청기와 900년만에 베일을 벗어- 밝혀진 도요지’, ‘햇빛 보게 된 불멸의 문화재’, ‘고려청자 전 종목을 발굴’, ‘청자의 갖가지 수수께끼와 속모습의 해결’, ‘고려청자 문화의 요람 강진군 대구면’이라는 제목으로 연일 보도경쟁이 벌어졌다. 이에 온 국민의 관심은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강진고려청자에 집중됐다.
더구나 이번 출토품 중에는 개성에 있는 고려 인종의 장릉에서 출토된 청자와 똑 같았다. 이는 사당리 가마터가 고려왕실에 청자를 만들어 보급하는 왕실 가마터였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이기도 했다. 특히 기와는 의종이 양이정이라는 정자를 만들고 그 지붕에 청자기와를 덮었다는 <고려사> 기록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발굴품이었다.
최순우는 1차 조사 후 연말까지 몇 차례 더 발굴작업을 했다. 그리하여 1964년에만 500청자기와 파편을 발굴했고, 원형에 가까운 것도 10여 점 추가했다.. 이후 국립박물관애서는
이용희 씨 집 170평을 비롯해 대구면 일대 187.500평을 사서 사적 68호로 지정했다. (정리:송하훈 기자)
사진설명: 1964년 대구면 용운ㄹ, 계율리, 사당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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