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한국어의 운율과 감각을 살려 한민족의 情恨과 서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을 손꼽으라면 소월과 영란을 들 수 있다. 오랫동안 우린 민족의 언어에 곰삭은 민요의 운율인 7〮〮〮5조에 정한을 담은 소월, 감각적인 언어와 전라도 특유의 토속적인 방언과 미적인 언어로 정한을 승화한 탐미적 순수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준 영랑의 시는 많은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 엘레지였다.
백석이 평안도의 여러 지방 방언으로 향토적인 정서를 그려냈다면, 영랑은 전라도 강진지방의 방언으로 향토적인 언어미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소월과 백석이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토속적인 정감을 이끌어냈다면, 영랑은 호남지방의 토속적인 정감을 감칠맛 돋우는 탐미적 순수서정의 미학을 창조해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시가 서구적인 현대시로 변모하는 분수령인 1930년에 박용철에 의해 창간된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한 사람으로 한국적인 정서의 전통을 창조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는 “내 마음”을 온전히 가꾸고 지킴으로써 시대의식을 그리움과 기다림, 영원한 생명지향의 세계로 저항하며, 情恨을 탐미적 순수서정으로 승화시켰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시인이다. 시에서 시적 운율미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조어를 창조하는 등 남다르게 아름다운 모국어의 창조, 방언을 사용한 한국적 정감을 표현했는데, 그의 향토적 순수성정의 아름다움으로 직조된 그의 시작품을 통해 김영랑의 시의 특징과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2. 情恨을 昇華한 탐미적 순수서정의 美學
1) 전라도 방언으로 한국적인 情感의 표현
영랑의 시에 전라도 방언을 사용하여 한국적인 정감을 극대화했는데 그의 시작품 86편 가운데 47편의 작품을 섬세한 감각과 재능으로 전라도의 토속적인 방언을 의도적으로 시어로 한국적인 정감을 극대화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전문
전라도 방언인 “오매”는 “뜻밖의 일에 깜짝 놀라거나 진저리가 날 때, 탄식할 때 내는” 감탄사다. 계절이 변화하여 가을이 오는 모습을 보고를 소스라치게 놀라는 누이의 심정을 한 폭의 그림으로 구어의 표현을 활용하여 실감나게 표현해냈다. “장광”은 장독대의 방언이고, “골불은”는 “고루 붉다”나 “골이 붉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강진의 방언이며, “기둘니니”는 원형이 “기둘리다”로 기다린다는 방언이다.
제운밤 촛불이 찌르르 녹아 버린다
못 견디게 무거운 어느 별이 떨어지는가
어둑한 골목골목에 수심은 떴다 갈앉았다
제운 맘 이 한밤이 모질기도 하온가
희부얀 종이 등불 수줍은 걸음걸이
샘물 정히 떠 붓는 안쓰러운 마음결
한 해라 긔리운 정을 뭏고 쌓어 흰 그릇에
그대는 이 밤이라 맑으라 비사이다
-「제야除夜」 전문
섣달 그믐밤의 정경을 그린 시다. “제운”은 원형이 “제우다”로 “겹다”의 방언이다. 주로 전라도나 제주도에 쓰는 방언으로 “정도나 양이 지나쳐 배겨내기 어렵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제운 밤”과 “제운 맘”를 대비시켜 어둠을 통한 화자의 마음상태를 그려내고 있다. “촛불”은 어둠을 쫓아내는 빛으로 소멸의 이미지이다. 자신을 소멸함으로써 순결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한국전통적인 민간신앙으로 맑은 샘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비는 한국적인 여인의 생활모습과 민간풍습을 담았으며, 한해를 되돌아보며 아쉬움에 마음에 무겁다, 안쓰럽기도 한 심정을 담고 있다.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비는 대상은 제3자인 “그대”이다. 그대를 향한 소망을 1연의 묵은해의 소멸, 2연의 상심, 3연의 등불과 샘물로 나타나는 조화로운 전환, 4연의 소망 등 기승전결로 구성된 시이다. 전통적인 한국인의 생활풍습을 담았다. 객지에 떨어져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제야를 보내는 풍습을 담은 시로 아름다운 한국적인 정감을 물씬 풍기는 시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날 그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은 꽃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쳐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모란이 피기까지는」 는 영랑의 시를 대표하는 절창의 서정시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소멸하는 슬픔을 극대화한 시로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는 태어남이 있으면 언젠가 소멸하고 다시 대를 이어 태어난다는 자연의 원리를 탐미주의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화자는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나는 소생의 봄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융합하여 기쁨의 순간을 절절한 슬픔으로 맞이하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역설과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라고 과장된 표현으로 슬픔을 극대화하여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모란 피기까지는” 기다리는 화자는 한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모란처럼 한순간을 위해 우리의 삶은 모진 고통을 참고 인내해야하는 인생살이의 모습을 시적 대상인 모란에 감정이입하여 주관적인 정서의 형태로 한국적인 여성의 심리와 정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처럼 영랑은 한국적인 정감을 그가 태어난 전라도 강진지방의 방언과 우리말의 조탁하여 정서를 표현했는데, 새로운 조어를 시어로 활용하는 방식은 첫째, 언덕”을 받침 ‘ㄴ'이 탈락된 “어덕”으로 음을 삭제하거나 「제야」에서 ‘가라앉다’를 각각 “가란젓다”, “갈안즌”으로 축약하여 우울한 심리의 가라앉는 심리 표현, 「四行小曲」에서처럼 ‘외로운’을 “외론”으로 축약, 밤”, “할미꽃”의 고립상황을 전경화, 또는 명사형 종결어 “뉘침”에서 보이는 ‘ㅜ’ 의도적 탈락하여 화자의 정화 의지 표현, 「오매, 단풍 들것네」에서 “치어다보며”로 음을 의도적으로 늘이거나 음소를 첨가하는 등 음의 첨삭을 통해 심리적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거나 심리적 추락을 동반한 하강적 이미지를 이끌어 내어 감정의 응축과 절제 첨삭이나 모음교체로 조어를 구사했다. 둘째, 양성 모음과 유성 자음 ‘ㄴ, ㄹ, ㅁ, ㅇ’ 등의 호음조를 구사한 유성음, 모음의 음성화를 활용했다. 셋째, 「淸明」에서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杜鵑」에서 “포실거리며 흣흣” 등 개성적인 의성어와 의태어를 구사했다. 넷째, 전통적인 정감과 서정적인 정서를 자아내고, 고풍스럽고 유장한 소리효과를 살리기 위해 「하날갓 다은데」나 “하날”이라는 하늘의 의고체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정조를 자아내는 의고체를 활용했다. 다섯째, 복합어와 파생어의 응용, 어두 자음 경음화, 음성모음을 양성모음으로 교체 및음의 유음화, 향토어와 고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여 언어의 운율을 극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를 살려 독창적으로 향토적 서정의 미학을 창조해냈다.
2) 대타자를 통한 상실감과 저항의지 형상화
고소설의 주인공인 「춘향」이라는 대타자를 통해 상실감과 저항의지의 서사적 성격을 보인 작품이다. 서사적 성격을 보인 작품은 「두견」, 「불지암서정」 등이 있으나 「춘향」은 변학도의 폭력과 맞서 싸우다가 끝내 옥사한다는 결말로 고소설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고소설과 정반대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인다. 일제강점기의 부정적인 현실인식으로 변학도를 동물 이미지로 비유하고 사육신의 “박팽년”과 남강에 외장과 함께 투신한 “논개”와 같이 지조와 절개가 굳은 우국지사형의 인물로 변형하는 역사속의 인물을 대타자로 등장시켜 상실감과 강한 저항의지를 보인다.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춘향」 전문
「춘향」은 역사적인 상상력으로 대타자의 상실감과 저항의식을 노래한 시다. 변학도라는 권력형 인물의 가혹한 고문으로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사랑하는 이도령에 대한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을 두견의 울음과 견주어 상실감과 저항의지를 “일편단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견새의 이미지는 일제강점기 상황이라는 절망적인 역사 앞에서 강인한 의지로 견디어 온 우리 민족의 심정을 나약한 지식인인 화자가 대타자로 「춘향」을 등장시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김영랑의 시세계를 1930년 3월부터 1935년 11월 『영랑시집』발간까지의 시기를 제1기(초기), 『영랑시집』을 발간한 이후 1938년 8월까지의 제1차 절필기를 거쳐 「거문고」와 「가야금」으로 다시 시작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1938년 9월부터 1940년 9월까지를 제2기(중기), 신사참배 및 창씨개명의 강요에 의한 저항으로 1940년 9월부터 1946년 11월까지의 제2차 절필기를 거쳐 《동아일보》에 「북」을 발표한 1946년 12월부터 1950년 9월까지 사망하기까지를 제3기(후기)로 나눈다면, 제1기 총 54편, 제2기 15편, 제3기 86편을 발표했다.
초기에는 주로 자연 친화의 시세계로 계절을 노래하고 있으며, 시의 이미지도 대부분 하늘, 달, 별, 바다, 물, 이슬, 구름, 산, 꽃, 밤 등이 많다. 이는 바슐라르의 4원소론에서 말한바와 같이 바다와 강이 있는 강진의 자연환경이 무의식을 지배해서 나온 결과다. 바다, 물, 이슬 등의 물의 이미지는 화자의 순결한 정신세계를 형상화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을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동경하나 동경할 대상이 부재한 상황은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중기에는 단형의 시에서 장형의 비장미를 담은 시들로 방향이 바뀐다. 초기의 하늘, 바람, 밤의 이미지는 반복되나 생기가 넘치는 새, 곤충, 등의 동물 이미지와 들판과 대지에 대한 부정적인 저항의식을 표출한다. 이는 악랄해져가는 일제의 탄압에 대한 울분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 무렵 「거문고」에 등장하는 동물이미지로 “잣나비떼”와 “이리떼”, 「독을 차고」의 “이리”, “승냥이”, “짐승” 등은 교활한 친일파들의 상징물로, 그리고 「거문고」의 “기린”과 「가야금」의 “기러기”, 「춘향」의 “두견”은 화자의 대타자로써 망국한을 민족 전통의 소재를 통해 자연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노래하고 있다.
내 가슴에 毒을 찬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운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독 안차고 살어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億萬千萬世代가 그 뒤로 잠잣고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자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 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면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 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네 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품고 선선히 가리라 마금날 내 깨끗한 마음 건지기 위하여
-「毒을 차고」 전문
「毒을 차고」 살아가야만 하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상상력은 “이리 승냥이”에 이해 “내 마음”이 “내 산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라는 시 구절에서 시적 대상의 실체는 일제의 탄압 세력이며, 그들에 의해 “찢기우고 할퀴우”는 사람들은 나라를 잃은 한민족이다.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老人)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밖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거문고」 전문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상상력으로 민족 현실을 고발하고 있고, 동물 이미지로 “기린”은 신성스런 동물로 왕의 상징, “이리떼” 와 “잔나비떼”는 일제의 탄압 세력의 상징물로 “기린”과 대립된 원형 상징 동물을 등장시켜 「거문고」라는 우리 민족의 전통악기를 통해 민족의 애환을 표출해내고 있다.
중기 무렵에 김영랑은 저항의식이 강해져 초기의 자연 이미지를 통한 정서가 다소 리얼리즘적인 삭막한 정서로 변환되고 있는 것이 중기시의 특징이다.
후기에는 여전히 하늘, 밤 이미지와 계절적인 이미지, 봄과 가을, 겨울의 이미지, 산과 새, 등 땅과 물의 이미지로 광복의 기쁨과 새 나라라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였는데, 푸른 산 같은 민족정기, 「오월 아침」, 「오월 한」에서 상반된 상징의 새인 “꾀꼬리”와 “두견”을 등장시켜 어둠과 밝음의 대비, 긍정과 부정 등 민족분단의 역사적 상상력을 보인다.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 오월」
「 오월」에서는 자연을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대상으로 삼아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고 물활론적인 사유와 역동적인 상상력으로 소생하는 봄의 생동하는 이미지를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형상화해냈다. 여전히 초기부터 일관되게 탐미주의적인 시적인 경향은 1931년의 朴龍喆, 『詩文學』 3호에 ““우리의 감각에 녀릿녀릿한 깃븜을 이르키게 하는 자극을 전하는 美, 우리의 心懷에 빈틈업시 폭 드러안기는 感傷”의 시가 바로 김영랑의 시의 특징인 것이다.
후기에 와서 해방이후의 작품들에는 비애와 좌절에서 벗어나 삶의 의욕과 환희를 드러낸 현실참여 경향이 짙어진다.
바다로 가자 큰 바다로 가자
우리 인젠 큰 하늘과 바다를 마음대로 가졌노라
하늘이 바다요 바다가 하늘이라
바다 하늘 모두 다 가졌노라
옳다 그리하여 가슴이 뻑은치야
우리 모두 다 가잣구나 큰 바다로 가잣구나.
우리는 바다 없이 살았지야 숨막히고 살았지야
그리하여 쪼여들고 울고불고 하였지야
바다 없는 항구 속에 사로잡힌 몸은
살이 터져나고 뼈 튀겨나고 넋이 흩어지고
하마터면 아주 꺼꾸러져 버릴 것을
오! 바다가 터지도다 큰 바다가 터지도다
-「바다로 가자」 일부
해방의 감격과 기쁨을 토로한 「바다로 가자」는 흥분된 정서를 급박하고 영탄적인 호흡으로 역동적이고 희망적인 “바다”와 “하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영탄과 청유의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영랑은 초기시에서 4행 단시로 대표되는 순수 서정시를 쓰다가 점차 비교적 긴 시행의 장시나 연시를 창작하였으며, 고려속요와 시조 3장의 전통적인 율조를 살린 4행시 등 전통적인 리듬을 중시하면서 감각적이고 세련된 감각어로 빚은 순수서정시를 창작한 시인이었다.
3. 에필로그
김영랑에 대한 연구는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만큼 1930년대 김영랑이 한국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박철석은 유미탐구의 시학, 기다림의 의지, 고통의 신비화, 해방의 굴절로 조명하고, “한국적 정서와 리듬, 그리고 현란한 언어미의 창조는 한국 근대시사의 봉우리”로 평가했으며, 이숭원은 「순결성의 미학」과 「김영랑 시의 계보학」에서 “후원자 박용철”, “시집 판본의 계보와 정본”, “매개자 서정주”, “후계자 박목월”에 대해 연구했다. 김학동은 「情感的 究竟과 자아의 확충」으로 영랑의 초기시는 “내 마음”에서 발상하고 있음과 “슬픔”과 “눈물”로 면면한 정한의 율조 극복하는 등 悲哀의 律調와 獨氣, 모란과 ‘봄’의 상실감, 詩語와 素材의 향토성, 「淸明」 등과 자연 예찬, 그리고 “삶의 懷疑와 自我의 확충”으로 ‘五月’과 꾀꼬리의 諧調, 민족 관념과 ‘죽음’의 意味, 해방과 공간 의식의 확대, 전통의 異質과 變奏로 폭넓은 시각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하였고, 김종길은 “암흑의 시대에 있어서의 시인의 길”에서 “비단길 같은 마음씨의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강인하고 담대한 정신을 가진 지사요 투사”라고 평가했으며, 오세영은 「저항정신으로 본 김영랑의 시」에서 “저항시인으로서의 문학사적 위치도 확고하게 정립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현자는 「영랑 시와 민족 언어」에서 모국어와 혼, “청명한 소리와 대화의 세계”, “민족의식과 역사적 자아”로 세밀하게 조명하고 “김영랑의 시세계는 서정시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소월이나 지용과는 또 다른 지점을 획득했다고” 평가했다. 조창완은 「김영랑 시의 운율적 위상」을 『영랑시집』을 중심으로 “4행시형의 추구”, “사행시형의 연원과 심리적 기저”로 영랑시의 형태적 특성을 언급하고, 영랑시의 율격성 특성으로 “세마디율의 계승과 변용, 네마디율의 현대적 재현, 율격적 변용과 운율적 미감의 실현방식”을 들었으며, 운의 음성적 질감 조성 등으로 운율적 위상을 조명했다.
이상의 연구들에서 영랑시의 특성과 시세계가 드러났으나 필자는 그의 시세계를 “情恨을 昇華한 탐미적 순수서정의 美學”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김영랑의 시의 특성을 설명했다.
첫째, 전라도 방언으로 한국적인 情感의 표현하여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다.
둘째, 역사적인 인물을 대타자로 등장시켜 상실감과 저항의지 형상화했다.
김영랑 시인은 순수서정시로 토속적인 언어의 활용, 새로운 조어 활용, 음의 첨삭이나 모음교체로 조어를 구사, 개성적인 의성어와 의태어 활용, 복합어와 파생어의 응용, 어두 자음 경음화, 음성모음을 양성모음으로 교체 및음의 유음화, 향토어와 고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여 언어의 운율을 극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를 살려 독창적으로 향토적 서정의 미학을 창조한 순수서정 시인과 저항시인으로 1930년대 한국시의 위상을 정립했으며, 가장 아름다운 순수서정시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향토의 절절한 정서를 가장 언어로 시를 빚어냈을 때 가장 감동적인 좋은 시가 된다는 것을 후학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날 세계화시대 각국의 언어와 문화가 혼재되어 혼재된 문화의 언어로 아무리 좋은 시를 창조해도 공감이 가지 않는다. 물질문명의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물질적이고 조작된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임을 암시하는 한국시의 창작방법을 영랑의 시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랑의 시는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1.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미래사, 2002.
2. 김영랑, 『김영랑시집』, 청목서적, 1988.
3. 고기운,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산하, 2010.
4. 박철석, 『한국현대시인론』, 민지사, 1998.
5. 김학동, 『김영랑』, 문학세계사, 2000.
6. 한국시인협회, 한국시학회 편, 『남도의 황홀한 달빛』, 우리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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