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젓가락도, 집신도 다 제짝이 있듯 누구에게나 자기마음에 맞는 인연의 짝이 있게 마련이지요. 유유상종(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이듯 언제나 생각나는 해맑은 모습으로 당신이 좋아 늘 그리워지며 향내가 품겨와 생각나서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래서 곁에 없으면 괜히 마음 한 쪽이 허전해지듯 끌려 아픈 질곡(桎梏)의 추억담(a reminiscence)이라도 서슴없이 늘어놔야 마음이 풀릴 것만 같은 심정에 전화라도 한번 해보며 닭발, 닭똥집에 쐬주라도 놓고 한잔씩 나누자고 하면 먼저 달려 나와 반기며 맞아주는 그런 사람이 정말 좋은 사이의 인간애(人間愛)가 아닐까요.
필자가 사는 강진에 그런 사람 둘이 있는데 한 친구는 시인“김 남현” 아우님이고, 또 한 친구는 칠량면에 살 때 동갑네기“최 정식”친구인데 강진에서 옛정을 못 잊어 장날아침때마다 만나는 막걸리 대포 집에 두주일정도 오질 않아 같이 오던 “안 종남”에 전화를 해봤더니 일주일전에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말에 한동안기가 차 어안이 멍멍해졌답니다.
잠시 뒤나 내일이 어찌될지도 모르고 아옹다옹하며 살아가는 그런 오늘의 우리가 어려운 세파의 소용돌이굴레 속에서 저마다 제 갈 길을 꿋꿋이 가면서도, 아무 부담 없이 부르면 열일을 다 저치고 언제든지 달려 나와 따뜻한 자리를 함께하며 녹슬지 않은 신실하고 따뜻한 대화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 하늘 휘영청 맑은 어느 날 사람이 몹시도 그리워질 때나, 홀로 있으며 고독(solitary)함이 느껴질 때, 비록 외국 땅에 멀리 떨어져 산다 해도 전화해서 음성이라도 듣고 확인해봐야 마음이 후련하게 노여 지는 정말 좋은 그런 동반자(同伴者)분들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보지 않았어도 언제나 말없이 사철 푸르른 소나무 잔솔가지처럼 믿음이가 항상 쉬임없이 기다려지는 묵직한 사람. 삶의 길목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나 홀로 몹시 앓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음을 다 알고 때때로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로 내 마음에 차분히 다가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당신의 참신한 정겨움이 곁에 있기에 오늘의 내 삶에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욕심같이 딱 세 사람만 있어준다면 참으로 행복에 겨울 것만 같은데 어려운 세상 속에 살아가며 당신은 그런 알뜰한 이들을 몇이나 두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그런 값진 사람을 자기주위에 몇 사람이라도 심어둔다는 것같이 보람된 행복은 없기에 만일 없으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늦지 않으시니 서슴없이 만들어보십시오. 제일 자신이 외로울 때 고독을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단 그런 좋은 분을 만들려면 서둘지 마시고, 당신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상대에 베푸시고 지는 공부부터 시작해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인연 따라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쉽게 사겨지는 사람은 쉽게 헤어지기 쉬우니 오랫동안 투자라는 자신의 속내 전부를 정직하게 다 내 보여주고 난 다음에 뿌리가 깊이 내려져야 서로의 신뢰(confidence)라는 것이 차츰차츰 싹이 틀 것입니다.
중국인은 처음 사귀기가 여간 어려우나 한번 믿으면 속내를 다줍니다. 대신 오랜 세월이 걸리지요. 중국인들 집은 겉에서 들어가는 대문은 작아도 들어가 보면 갈수록 집안이 화려하고, 넓은 곡간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하답니다. 대신 한국인들은 겉만 요란하게 꾸며놔도 안은 실속 없는 속빈 강정이지요. 진정 우리나라 여인들이야말로 허영심(vanity)과 사치(luxury)가 가히 세계 제1이며, 좀 산다고 껍적거리면서 우쭐해져 상대를 깔보듯<감히 너 따위가>라는 말을 쉽게 쓰지요. 그같이 경솔하고 가벼운 인간들이 많아 사람사귀기가 참으로 어려운 세상입니다. 가령, 별로 자주만나 본적이나 찻잔을 많이 나눠 본적도 별로 없지만, 만남부터 차분하고 조용하며 듬직함을 줘 많이 뵌 사람 그 이상으로 시작부터가 믿음이 가듯 통하는 그런 사람이 있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과 같이 있기만 해도 마음부터가 편해지는 정다움으로 가슴을 설레게 토닥여주는 삶의 향내가 품겨납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기쁨의 여운을 띄운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지요. 필자와 같은 나이에도 바람결에 스쳐간 그런 몇 사람들의 추억들도 많답니다. 어쩌다 그분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옹달샘에서 솟아나는 샘물처럼, 추운상수리나무 가지 끝에 아스라이 달랑 매달린 가녀린 잎 새 하나 햇살에 떠오른 진한 당신의 환영(a vision)을 멀리서나마 그려보며 그분들의 행복을 함께 담아둔 내 마음속을 열면 일곱 빛깔 무지개로 사랑의 한 때가 떠올라 여린 보라색 가슴에 단비가 촉촉이 내려질 때 먼 지구 저편에까지 파장으로 이어져 하늘아래 그리움이 띄워지기를 기원해보며 지금은 뭘 할까? 아직껏 살아있을까? 스크린처럼 스쳐간 이들이 늘 보고픈 안개 속 그리움의 여정the weary heart of a traveler)으로 남아있답니다.
이국땅 피지 나후토카 옆집에 살던 피지안 스잔나 여인과 딸 이년아, 일본 후꾸지마 지진의 해일이 있은 후 야예꼬 여대생과 나가이(永而), 하나모도(花本) 히라야마(平山)분들, 그리고, 중국 흑룡강성 치치알시에 영하40도가 오르내리던 곳에서 내더러 추위에 고생한다며, 먹을 것을 한사코 챙겨와 정겹게 나눠주던 조선족 여인, 폐암 말기판정을 받고 사경을 헤맬 때 형님과 손을 잡고 석별의 눈물을 나눠야했던 날 병실 창틀에 흘러내리던 빗줄기가 내 가슴을 애이고, 과거 통금이 있던 한 시절 경부선 야간열차 길 옆자리 한 젊은 여인이 차창에기대어 슬피 울던 까닭을 듣고 다독여 달래주었던 그런 기억들을 도저히 잊혀 질 수가 없네요.
무지개 일곱 빛깔은 비온 뒤 날이 활짝 게여야 뜹니다. 필자가 이민 가 살던 곳 남태평양 적도구역에는 여름뿐인 피지(Fiji)에 비가 자주 내려 먼 산 끝자락에서 끝으로 둥근 일곱 빛깔 (보라, 남색, 파랑, 초록, 노랑, 주황, 빨간색)이 띠를 두르면 참으로 장관이지요.
그같이 당신의 삶에도 왜 무지개가 때때로 뜨지 않는지를 홀로불평하지 마세요. 나의 무지개를 얻기 위해선 우선 내 마음에 비를 흡족히 맞으며 사색(speculation)으로 혹독한 시련을 견뎌낸 다음에 아름답고 찬란한 일곱 빛깔 무지개가 생겨날 것입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필자가 병신년 설날 아침을 맞으며 세월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아봅니다. 그리고 지난날 못다 해준 기억의 여운들을 떠올리며 조목조목 되뇌어 아내에게 말하니 깜짝 놀라면서 하는 밀이 “아니 당신 같지 않게 정초부터 왜 이러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내가 저승 갈 날이 가까워지니 조바심이 생겨 그런가보다고 말하며, 이제 우리도 죽기 전에 약속이나 해둘 일이 꼭하나있는데 손가락 걸자고 하니 눈이 휘 둥글 해 집니다.
안개 속 인생길, 당신과 언젠가는 찾아 올 영욕(榮辱)의 갈림길에서 우리 둘이 살다가 둘 중에서 한날한시 떠날 수 없으니 누가 먼저가든 뒤에 가던 관계없이 죽은 뒤라도 우리 강진 땅 한곳에 합장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해봤더니 아내도 두말없이 꼭 그러자고 대답하네요. 그래서 손가락 걸고, 악수하고 손바닥 비벼 확인까지 해뒀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운 모습으로 남는 믿음이란 참으로 값진 삶의 형태이고 일상의 행복이 이렇게도 정겨운 거로구나 라고생각 해봅니다. 오늘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당신도 마음으로 띄운 사랑을 영원토록 기억되게 하는 인연의 날이 되는 사랑의향기의 여운을 띄워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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