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42회)
성전면 월남리 김애레(80)할머니
“아버님 딸 위해서 죽은 뒤로 혼인신고 해줬소?”
“애기 하나가 밴지 선지도 모르고 생겼어.”
김애례할머니는 도암 항촌마을에서 성전면 수양리 신기마을로 스무 살에 시집왔다. 시집은 홀어머니에 4남1녀, 남편은 24살 장남이었다. 원래 없는 살림은 아니었다고 들리나 김할머니가 시집왔을 때 시댁살림은 기울고 있었다.
“그 좁은 방에서 나를 시어머니가 데고 자고 생질허고 아들허고 자게하더만.”
비좁은 방에서 식구가 함께 지내니 남편과 둘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첫날밤 이후 남편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의집살이를 떠났다.
“막둥이 시아제가 7살 먹었더만, 저는 사랑스러워서 내 에서 누웠는디····· 나도 어린마음이고 암것도 모른 나이란말여, 친정생각에 눈물만 난 세월이여.”
남편이 남의집살이에서 돌아온 날 김할머니는 만삭이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남편은 10달 만에 집에 돌아왔다.
“9월24일에 남편이 왔는디 집안사람들이 얼매나 고상하고 왔냐고 모여 들더만.”
배가 불러와도 아이가 생긴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김할머니는 남편이 돌아온 날 밤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날도 어매하고 잠을 잔디 새벽에 남편이 내 방에로 와서 나한테로 오더만, 근디 그때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만 네 구석지를 기어다녔어, 남편은 왜 그라냐고 묻기만 허더만·······그래서 배 아파서 그란다고했더니·······엄마보고 묻더만, 어째서 배가 아프다고 그라냐고······.”
결혼은 했지만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남편은 아들을 보려고 그랬는지 낳기 전날 집에 돌아온 것이다.
“아들 났다 한 게 가만히 지그엄마 몰래 와서 아들인가 딸인가 보더만, 그러다가 엄매가 와 어서 나가라 한 게 그냥 나가서 또 남의집살이 가부렀제.”
이후 6,25전쟁이 났고 남의집살이에서 돌아온 남편은 동네 젊은이들과 함께 줄줄이 묶여서 끌려가 죽고 말았다.
“저그서 인민군이 몰아온단다 그란게 불태재로 젊은 사람들을 다 묶어 굴다리 그 건너 언덕지에서 다 죽여부렀어. 그때 말도 못허게 죽여났어”
죄가 있건 없건 젊은 남자들은 모조리 잡아다가 불태재에서 총살시켰다. 남편의 시체를 찾기 위해 어린 두 시동생을 데리고 불태재로 갔다. 겹겹이 쌓인 시체들 틈으로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시체들을 뒤적거렸다. 시동생들은 무서워서 옆으로 오지도 못했다. 남편의 시체는 시체들 저 아래에서 앉은 자세로 고개를 떨군 체 죽어있었다.
“다들 송장들을 찾아간디, 나는 찾아놓고도 어린 시동생을 데리고와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가 늦게늦게 부탁혀서 빼내어 풀때까지 꺾어서 덮어놓고 돌아온디·······손을 씻을라고 방죽우로 가본께로 피가 아조 말도 못허게 쿨쿨쿨쿨 내려가고 있어.”
김할머니는 돌도 안 넘긴 아이를 데리고 도암 친정으로가서 농사를 거들었다. 아들이 세살이 되자 친정아버지는 아이를 호적에 올리기 위해 혼인신고를 했다.
“아버님, 딸 위해서 죽은 뒤로 혼인신고 해줬소?”
그날 아버지가 왜 그리도 원망스럽던지 방에 들어간 아버지를 향해 울부짖었다. 아버지도 마음이 아팠는지 방에 들어가 나오지를 못했다.
“아들 하나 키웠지만 없는 살림이라 잘 갈치지 못했소. 아들이 결혼도 했으나 며느리가 병으로 일찍 죽고 또 손자 하나 키웠어요. 죽고 싶어도 새끼 하나 있어 못 죽겄습디다.”
평생을 눈물로 살았다는 김애례할머니가 말씀 중에도 눈물을 흘리신다.
“돈이 생기먼 밭을사서 조상들 묏을 만들었는디, 그 묏을 파라한께 내 기가막히요. 산단인가가 들어선다고 옮기라헌디, 내 몸 하나도 귀찾어 죽게 생겼는디 내가 묏을 어디로 옮긴단 말이요. 그저께도 쪽지가 오고 어저께도 쪽지가 오고, 나 기가막혀 못살겄소, 그냥 팍 죽어불고만 싶으요.”
김할머니는 요즘 죽고만 싶다며 눈물을 흘린다. 삭신이 쑤시고 아리는 것은 참고 살면 되지만 조상묘를 옮기라고 날아오는 쪽지에 죽고만 싶다고 한다.
“내가 며칠 전에는 나죽겄네, 나죽겄네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죽어부렀는 갑디다. 근디 꿈엔가 저승엔가 어떤 남자가 나타나더니 피를 막 맥입디다. 턱에 받침대를 혔는디 삘건히 젖게 피를 막 맥이대요. 그래서 어매어매 하다가 깨어났는디, 그 남자가 아닌가 싶으요. 깜박 죽어버렸는가빈디 내가 그 피를 보고 깨어나서 생각허니 같이 살었던 그 사람인 허요.”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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