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유배문학과 강진
다산과 도스토옙스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부설 강진다산실학연구원 17회 학술대회
6월 10일 강진다산실학연구원에서는 다산기념관 다목적홀에서 <세계의 유배문학과 강진>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가졌다. 도현철 원장은 “당사자에게 유배는 ‘苦行’ 그 자체였지만 때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학술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정약용과 정약전 등이 혹독한 유배생활을 거쳐 새로운 정신세계를 개척해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라고 개회사에서 밝혔다.
이에 본지에서는 조주관(연세대) 교수가 발표한 <도스토옙스키와 시베리아 : 「죽음의 집의 기록」을 중심으로>를 참고하여 도스토옙스키란 대문호의 고난을 집중 조명해본다. 이 글을 통해 다산의 유배생활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페트라셰프스키 사건
다산에게 천주학 사건이 있었다면 도스토옙스키에게는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이 있었다. 1849년 3월,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그해 12월 22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집행 직전 4년 동안 징역과 종신 병역으로 감행된 도스토옙스키는 그해 12월 25일 시베리아를 향해 떠난다.
시베리아로 떠나기 전 1847년 12월 22일 오전 8시에 도스토옙스키는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 눈이 내린 연병장에는 사형대가 있었고, 도스토옙스키는 사형대에 묶였다. 장교가 “받들어 총!” 하자 요란스러운 북이 울리면서 법무관이 판결문을 낭독했다.
“법무 장교단은 군사 재판 위원회의 심리에 좇아 국가 질서의 전복을 기도한 전원의 유죄를 인정하고 총살형에 처할 것을 결정했다.”
3소대의 병사가 기중 전방 10미터 지점으로 다가왔다. 지휘관이 외쳤다.
“탄환 장전!”
그리고 모자를 눈 위에까지 내리도록 명령했다.
“조준!”
소대의 총신이 수형자를 향해 겨눠졌다. 이때였다. 광장을 향해 달려오는 말 한 필이 있었다. 한 통의 봉서가 지휘관에게 전해졌다.
법무관이 다시 단 위로 올라가더니 새로운 판결문을 낭독했다. 사형을 무기, 또는 유기의 징역과 유형(流刑)으로 바꾼다는 내용이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4년간 요새 도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그 후에는 병졸로서 병역을 치르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요새감옥으로 간 도스토옙스키는 형에게 편지를 보낸다.
형님!
나는 낙담하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생활은 생활입니다. 생활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불행 속에 있어도 의기 소침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이며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이 생각이 나의 혈육이 되었습니다.
여하간 내겐 사랑할 수도 고민할 수도 기억할 수도 있는 피와 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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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졸이켜 보건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과오와 태타(怠惰)와 무능한 생활을 했는지 참으로 후회막급입니다. 얼마나 시간을 소홀히 했는가,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해왔는가를 생각하면 창자가 잘리는 느낌입니다.
생활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생활자체가 행복이어야 하는 겁니다. 일순간 일순간을 영원의 행복으로 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형님!
맹세합니다. 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 정신과 육체를 청정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사형직전의 경험을 한 도스토옙스키. 그 기막힌 경험을 한 후 도형(徒刑)의 길을 떠나는 그의 용감함, 강렬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면회 때에도 그는 우는 형을 위로하면서 냉정을 잃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형님! 울지 마세요. 나는 관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죽을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도형지(徒刑地)라곤 하지만 맹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도형을 끝내면 쓰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일을 이미 체험했고 또 그곳에 가면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겠지요. 얼마라도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날 밤 새벽, 도스토옙스키는 무거운 쇠고랑을 찬 채 썰매에 실려 시베리아를 향했다.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에서 간질과 치질에 걸린 그가 5키로그램이 넘는 쇠고랑을 차고 시베리아를 향했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는 4년간 감옥살이를 했고 또 4년간 사병으로 근무를 했다. 그렇다면 외 그는 사형선고와 유배지를 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27살 때 패트라셉스키가 이끄는 비밀 모임에 참가했다는 것이 죄명이었다.
1857년 2월 15일, 도스토옙스키는 이사에봐와 결혼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간질의 발작이 일어난다. 아내는 놀라워했고 당사자는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결혼하지 전 이사에봐는 교양이 있고 총명했으며 우아했고 젊었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마자 아내는 천사의 탈을 벗고 마녀로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862년 가을 도스토옙스키에게 하나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의 나이는 42세였는데, 여성의 나이는 21세로 이름이 스스로봐였다.
소설을 쓰랴, 채권자들로부터 빚독촉 받으랴, 생활에 재미가 없던 도스토옙스키는 뜻하지 않는 행복에 빠져들었다. 당신의 사랑은 하늘이 내려준 은혜이고, 그것은 생활에 지쳐 절망에 빠져 있는 자신에게 뜻밖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도스토옙스키는 젊은 아내로 인해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남편이 무슨 영웅처럼 느껴졌으나 나중에는 잡스러운 인물로 비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도스토옙스키는 안나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당시 도스토옙스키는 산더미 같은 부채를 지고 있는데다 부양가족은 많았다. 흡사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안나의 눈에는 이런 상태로 조금만 더 가면
도스토옙스키가 파멸해 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전 재산을 다 던져서라도 그를 구해주어야 한다는 각오로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녀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867년 2월 13일, 바로 결혼식을 가진 그날 밤 남편이 간질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로연 도중에 발작을 한 것이었다.
안나는 남편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줘야한다는 생각으로 외국여행을 떠났다. 가구, 피아노 등 모든 것을 저당잡히고였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안나는 그리 편하지 못했다. 남편이 저지른 도박빚을 도맡아 처리해야 했고 스스로봐와의 사이에 재연된 일로 질투의 고통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안나의 희생과 사랑 덕택으로 도스토옙스키는 거장으로서의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 불우한 천재에게 유일한 은총이 있었다면 바로 안나라는 부인이었다.
조주관 교수는 발표문에서 이렇게 마지막을 정리했다.
“유배는 도스토옙스키에 있어서 위대한 글쓰기의 게기가 되었다. 유배 이후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한 예술 작품은 거대한 폭풍처럼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고 기존의 신년체계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우리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시베리아 유형이 없었다면 그는 인간 영혼의 세계를 천착할 수 있는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유배지에서 그는 인간존재의 참 모습을 관찰하고 알게 되었다. 유배지는 그에게 훌륭한 참고경험의 산실이었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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