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심리학 - 뼈와 근육(17)
적선은 교육적인 뜻과 소박한 민간신앙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선조 대왕의 어린 시절 어필. ‘적선’ 의미
남을 위한 희생정신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살아가는 자신의 생존과 직접 연결되는 직장도 3D(어렵고 Diffcuit, 더럽고 Dirty, 위험하고Dangerous)를 기피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어렵고 지저분한 일에 봉사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러나 즐겁게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고, 더럽고 등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찾아 하는 것을 보면, 타고난 천성이 아니고서야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요즘 어린 학생들이 행사장에서 자원 봉사하는 조끼를 입고 열심히 버려진 휴지 등을 줍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도 저들이 있어 이 나라의 희망이 보인다.’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살면서 좋은 일 한 번 못해 보고 죽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천사같은 행동을 보면서 조금은 달라져야 할 사람들, 그들의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을 배려하고 돕는 일들은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자신의 곱고 선한 마음속에서 스스로 일어난 충만 된 생각과 스스럼없는 행동의 실천이 있어야 이루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친근한 이 문자를 인상 깊게 만난 적이 있다.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는 선조 대왕의 대형 목판 1장에 앞뒤로 새겨진 글자가 이 적선(積善)이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의 영의정이었던 동고 이준경에게 선조가 즉위 당초인 15, 6세 무렵에 써서 내려준 글씨라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도산서원에 목판으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제자를 양성했던 곳을 그들이 서원으로 건립해 오늘에 이른 조선 최고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그곳에 이 적선이라는 선조어필 목판이 소장된 것 역시 우연하지 않다. 사회 교화적 관점에서 누군가의 배려로 제작된 것임에 분명하다. 현재도 이 목판으로 찍었을 적선이라는 대형 글씨가 더러 보인다.
2006년 10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필석각’을 최초로 공개하였다. 조선왕조 임금님들 글씨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관심을 갖고 본적이 있다.
그 때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은 19일부터 12월 17일까지 미술관 서예실에서 테마전시 ‘글씨로 보는 조선 왕실의 취향’을 통해 문종, 세조, 성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등 역대 임금을 비롯한 왕실 인물들의 글씨인 박물관 소장 ‘어필석각’ 20점을 최초로 공개했다. 어필석각이란 역대 임금들의 필적을 항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대리석에 새긴 것으로 필명이 높았던 임금들의 글씨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어필석각과 함께 이 전시 테마전에서는 선조 임금이 쓴 ‘적선(積善)’, 정조 임금이 쓴 ‘제 문상정사(題汶上精舍)’, 낭선군이 옮겨 쓴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 등을 비롯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왕실 인물들의 중요 탑본 및 필적 20여 점을 함께 선보였다. 어필석각 등 왕실 유물은 문화재청 산하 고궁박물관에도 일부 소장하고 있고, 공개되는 20여 점은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59점 중 상태가 좋고 보존처리를 마친 것들이었다. 그 때 당시 2007년에 조사와 보존처리를 모두 마치면 좀 더 많은 어필석각과 왕실의 글씨를 만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유교 국가 조선에서는 선대왕의 위업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한다는 자세로 역대 임금들의 글씨를 보존하였다. 임금의 필적 보존은 곧 유교의 조상 존숭 자세와 연결되었으며, 이는 곧 후손들이 선대왕에 대해서 사후에 갖는 효도와도 같은 것이었다.
왕실 인물들의 서예 흔적 속에 선대왕의 글씨 풍을 자신의 글씨에 반영하는 존숭 자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왕실의 글씨의 독특한 경향은 선대왕의 존숭이 어필의 존숭 및 계승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보이는 것이며, 동시에 조선 서예의 변화 속에서 보이는 왕실 서예만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서예를 사랑했던 조선의 임금들의 글씨들은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과 군왕의 면모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의 미술관 테마전 ‘글씨로 보는 조선 왕실의 취향’를 통해 글씨를 매개로 옛 임금과 마음을 교감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어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이 각석들 중에는 역대 임금의 필적을 모아놓은 '열성어필(列聖御筆)'과 내용·필체가 일치하는 것들이 있어 향후 조선 왕실 및 조선시대 서예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지적 소유와 자기 삶의 수양을 위한 노력으로 서예를 배우고 익혀 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치를 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나 군주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같은 생각 일 것이다. 문화를 누리기 위한 삶의 한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고 실천해서 참된 가치를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조(왼쪽)와 순조 임금의 어린 시절 어필. '적선'과 '구오복팔천세'라 써있다.
이 글씨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쌓는다는 의미와 착함, 좋은 일이라는 의미가 떠오르게 된
다. 적선을 보면서 책을 쌓는다는 의미로 적서(積書)를 떠올리기도 했다.
적서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하다.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다. 그렇지만 우리 고전에는 이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 노론사대신(사충, 四忠, 사흉, 四凶. 老論四大臣)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우당 조태채(1660-1722)는 ‘안유적서능어수(案有積書能禦睡)’라고 했다. 책상머리에 책을 쌓아두면 졸음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을 노론에서는 ‘사충(四忠)’으로, 소론에서는 ‘사흉(四凶)’으로 불렀다.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화를 당한 노론 측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의 총칭으로, 영조 연간에 정치적 처분을
통해 신원되었고, 사충서원(四忠書院)에 제향 되었다.(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이고 형조판서 계원(啓遠)의 손자로, 괴산군수 희석(禧錫)의 아들이다. 태구(泰耉)의 종제이며, 태억(泰億)의 종형이다.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종형인 태구와 함께 병과로 급제한 후 승문원의 정자·저작·박사와 성균관의 전적·직강, 사헌부의 감찰·지평, 대사헌, 사간원의 정언(正言)·헌납, 대사간, 홍문관의 수찬·교리, 승정원동부승지, 장예원판결사, 한성부판윤, 그리고 육조의 판서와 좌참찬 겸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고 1717년 좌의정에 이르고 판중추부사에 전직하였다. 외직으로는 옥구현감·공주목사·평안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713년 동지사로,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사은사로 두 차례 청에 다녀왔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떠한가? 젊어서는 책을 펴면 졸음이 와서, 그리고 나이 들어서는 바빠서, 늙어서는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 이래저래 책과 멀어진 사연이 나와 남 할 것 없이 많다는 것이다.
공(功)은 공로(功勞)와 공력(功力)의 준말이다. 공로는 어떤 일에 이바지한 공적과 노력(努力)을 뜻하는 것이고 공력은 애써 들인 힘을 뜻하는 것이다. 공(功)은 정성(精誠)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고 성심(誠心)을 다해 힘을 쏟는 것이다. 그래서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고사(古事)가 생겨난 것이다.
적(積)은 쌓아 올리는 것이다. 무엇을 쌓아 올리는가? 선(善)을 쌓아 올리는 것이고, 선업(善業)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적선(積善)하는 것이다. 덕(德)은 베푸는 것이다. 덕(德)은 베푸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덕은 베풀고 배려(配慮)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덕은 베풀 때 빛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적(積)은 없는 것을 쌓는 것이고 덕(德)은 있는 것을 베푸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나라와 사회를 위해 헌신(獻身)한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의 공을 기리는 것이 바로 공적비이다. 그리고 선정(善政)으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거나 중생제도(重生濟度)에 몸 바친 이들의 덕을 기리는 것이 공덕비이다. 일반적으로 공적(功績)을 이루면 상을 받는다. 공을 쌓으면 상을 받는다. 공덕(功德)은 아니다. 공덕은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칭송(稱頌)을 듣는다. 공덕을 칭송하는 것이다. 공덕을 칭찬하여 기리는 것이다. 그것이 공덕비다. 물론 공직(公職)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공적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정사(政事)를 잘 다스려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은혜를 받았을 때에 그것을 잊지 않고 다시 은혜로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은 하루아침과 하루저녁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유래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
상원(上元)에 액때움으로 제웅을 만들어 제웅 속에 돈을 넣어 길가나 개울에 버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이 변하여 남을 위하여 착한 일을 함으로써 당년에 있을 액을 때우고 적선을 하여 상쇄하려는 풍속을 민속적으로 흔히 적선한다고 한다.
주머니에 돈을 넣어 길에 놓거나 서낭당에 걸어두면 길을 오가는 사람이 주워 노자에 보태어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적선이다. 다리가 없어 사람의 내왕이 불편한 곳에 다리를 놓아주거나 섬이나 오쟁이에 돌을 담아 유둣 돌을 만들어 사람이 물을 건너기 편하게 만들어 적선을 하는 일도 있다.
이러한 경우 이것을 월강공덕(越江功德)이라고 하는데, 전라남도에서는 ‘노드놓기’라고도 한다. 노드는 바윗돌이 겉에 드러난 노두(露頭)나 노두(路頭)라는 한자어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착한 일이며, 착한 일을 하므로 신의 보살핌에 의하여 액을 미연에 막고 더 나아가서는 신의 은혜를 입어 행운을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적선은 교육적인 뜻과 소박한 민간신앙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불교적인 적선의 신앙의식이 다분히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길 잘하지만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은 인간의 최대도리 이다. 하찮은 이해에 얽혀서 신의를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한다. 온 세상의 것을 알면서도 나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악하게 백년을 사는 것보다 바르게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삶이 아닌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은 몸에 욕된 일이 없고 탐욕을 버리며 마음이 항시 즐겁다. 아무리 말을 꾸며 남을 해치려 해도 죄 없는 사람은 더럽히지 못 하는 법이다.
바람을 거슬려 뒤 글을 날리면 그것이 내게 돌아오는 것같이 재앙은 도리어 자신을 더럽힌다. 일시의 분을 참으면 백일에 근심을 면하는 것이다. 참아야 할 일에 참지 못하면 작은 일이 크게 번져 수습하기 어려워진다. 소망을 이루는 순간보다 더 기쁠 때는 없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뿐이며 또 하나의 소망 때문에 근심하게 된다. 타인 시비와 장단점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행동부터 생각하며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자신 있게 남을 흉볼 수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살아있어 제 허물은 전혀 잊고 남의 흉을 본다는 격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최후에 승리는 참 는 자 에게 돌아온다. 매사에 참 는 자는 복이 오지만 참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화만이 닥쳐 올 따름이다, 화를 면하고 복을 맞이하자!
심은 대로 거둔다. 동서고금 만고의 진리이다. 오늘 내가 거둔 것은 과거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일 뿐이다. 꺼림칙한 씨앗이 꺼림칙한 열매, 꺼림칙한 운명을 안겨준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운명까지 탁하고 꺼림칙하게 만든다. 내 영혼이 따뜻한 날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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