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고려 궁궐터
개성시 송악산 남쪽 기슭에는 만월대(滿月臺)라는 고려 시대 궁궐터가 있다. 명실공히 고려의 정궁(正宮)인데, 만월대는 조선시대에 빈터만 남아 있는 고려의 궁궐터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인종 1년(1123) 송나라 사신은 고려에 들어와 한 달 동안 머물면서 당시 고려 궁궐의 웅장한 모습을 기록한 「고려도경」을 만들었다. 그는 중국의 궁궐 배치를 따르지 않고 주변 자연 환경을 잘 살려서 웅장하게 지었다고 기록했다.
이렇듯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973년과 1974년 북한 학자들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되었다.
2007년에는 개성 고려 궁궐터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문화재청과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청자와 도기를 비롯하여 명문이 있는 기와가 약 100여 점 수습되었다.
청자 기와의 존재는 1927년 처음 발견되었으며, 1964년과 1965년 국립박물관이 실시한 강지군 대구면 사당리 7호 가마터에 일대의 발굴조사에서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고려사>에 보이는 ‘의종 11년 궁원 양이정을 세우고 그 집을 청자로 이었다’는 청자 기와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가마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 출토된 청자 기와는 암막새, 암키와, 수키와, 특수 기와 등 다양한 종류가 망라되었다. 특히 안쪽 면에 새겨진 명문은 건축물에 청자가 놓일 위치를 나타내며, 이는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 속에 청자 기와가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청자 기와의 문양은 음각, 양각, 압출양각 그리고 무늬 없는 종류가 확인되었으며 상감 기법은 도입되지 않았다.
청자 원숭이 무늬 항아리
<고려사>에는 충렬왕 23년 원나라에 금으로 채색한 옹기를 바쳤다는 기록과 사신 조인규가 위나라 세조에게 화금자기(畵金磁器)를 진상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납작한 항아리는 1933년 개성 고려 궁궐터의 동쪽에 있는 백삼 건조장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상감청자의 표면에 금으로 무늬를 장식한 화금청자로, 앞선 <고려사>의 기록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앞면에는 능화형 창 안에 나무 아래서 복숭아를 받드는 원숭이의 모습을 그렸고, 능화형 창 밖에는 보상화넝쿨 무늬를 상감하였는데, 상감 무늬의 윤곽을 따라서 금으로 그려 넣은 흔적들이 군데군데 조금씩 남아 있다.
그동안 고려청자의 화금 기법은 유약 표면에 조각칼로 흠을 내고 여기에 금 입사를 하거나 접착제와 금가루를 혼합하여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며, 특히 백토 상감된 부분의 기다란 균열은 금 입사를 위한 선상감 흔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의 분석에 의해, 이 화금청자는 상감 무늬의 윤곽선을 따라서 붓을 사용하여 금채로 장식한 뒤, 700-800도의 저온에서 소성하였으며, 금 입사 흔적으로 보이는 자국은 청자 유약과 백토 상감의 열팽창 계수의 차이로 생긴 균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3세기 고려 화금청자와 12세기 북송 정요의 화금자기를 비교해 보면, 유약 표면에 금을 채색한 후, 700-800도에서 저온 소성한 것이 공통점이다. 그런데 세부적인 장식 기법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주목된다. 12세기 정요의 화금자기는 재단된 무늬 본을 유면 위에 부착하고, 금으로 채색한 다음, 무늬 본을 떼어내어 저온 소성하였다. 무늬 본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격화가 가능하며, 금 자체의 화려함이 강조된다. 반면에 고려의 화금청자는 상감 무늬의 보조 장식으로 금을 사용하였으며, 붓으로 그린 부드러운 필선이 특징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 두 기법간에 이러한 시기적 ․ 기법적 차이가 있어서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혜음원 터
혜음원(惠陰院)은 고려시대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수도인 개경과 중요 도시인 남경(지금의 서울) 사이에 위치한 봉성현(현 경기도 파주)에 세운 국립 숙박 기관이다. 이곳은 고려시대 문집인 <동문선>에 실린 <혜음사신창기>를 통해 창건 연대, 배경 및 그 과정과 운영 주체, 왕실과의 관계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손꼽히고 있다.
<혜음사신창기>에 의하면 1119년 8월에 이소천이 예종에 건의하여 1120년 2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1122년 2월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왕이 순행할 때 머무는 행궁과 법당, 숙박시설, 주방, 창고 등이 지어졌으며, 인종이 즉위한 후 ‘혜음사’란 명칭을 하사하였다.
혜음터에서는 자기류를 비롯하여 기와류, 토기류, 금속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도자기는 고려청자, 고려백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중국 도자기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고려시대 조자기이다.
혜음원 터에서 출토된 고려청자는 기형이 단정하고 유약과 태토가 정선되었고, 고급 받침대인 규석의 사용 예가 많으며 갑번이나 단독으로 구운 청자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청자들은 고급 도자기를 주로 생산했던 강진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에서 제작된 것들로, 왕실의 후원에 의해 혜음원에 공급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비해 고려백자는 수량이나 질적인 면에서 청자에 훨씬 못 미친다. 당시 사당리나 유천리에서도 고려백자가 제작되었는데, 혜음원에서는 고급 도자 생산지 제품이 아닌 질 낮은 백자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혜음원에서 고려청자와 고려백자의 시용 계층이 달랐음을 알려주고 있다. 대신 중국 도자기 중 백자의 수량이 청자에 비해 월등이 많아 질 좋은 고려청자를 향유했던 계층이 중국백자를 선호했던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고급 청자와 수입산 도자기가 많이 사용했던 것은 혜음원에 왕을 위한 행궁이 있었고, 실제로 왕이 남경으로 순행할 때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혼란의 시기를 겪고 난 후, 안정된 시기를 이룬 인종과 왕비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혜음원이 국립 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실 도자기의 대표 가마터 강진
고려시대 청자를 구웠던 대표적인 가마터는 강진과 전북 부안 두 곳이다. 특히 강진은 산과 계곡에 가마가 밀집해 있고, 우리나라에서 청자 가마터로는 규모가 가장 크다.
강진 가마터와 관련된 기록으로 <신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시대에 자기를 굽던 자기소(磁器所)로 대구소와 칠량소 두 곳을 소개하고 있다. ‘자기소’는 국가에서 행정적으로 관리하던 자기를 제작하는 곳이다. 어떤 문헌 기록을 근거로 하면, 강진의 대구소와 칠량소는 국가에서 관리하여 왕실과 관청 소용의 청자를 구웠던 관요였음이 분명하다.
강진 가마터의 조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8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최초로 실시하였다. 이후 1959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오랜 기간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사한 강진 가마터는 대구면 사당리 당전 마을과 용운리였으며, 발굴 규모도 다른 발굴에 비해 가장 컸다.
강진 용운리 일대의 가마터는 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가마터의 수는 대구면 용운리 75개소, 사당리 43개소, 기타 지역을 합쳐 총 188개소에 달한다. 이 가운데 용운리 39개소, 사당리 30개소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강진 가마는 경사진 면에 진흙으로 축조되었다. 경기도 일대에서 확인되는 벽돌로 축조된 가마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강진 가마는 경기도 가마보다 약간 늦은 시기, 즉 통일신라 최말기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초기의 강진청자에는 중국 절강성 월요(越窯) 영향을 받아 월요 청자인 해무리굽과는 굽의 높이와 넓이에 다소 차이가 있어 한국식으로 약간 변형되었다.
강진 가마에서는 점차 세련된 청자를 제작하면서 11세기부터 고려청자 고유의 양식이 뚜렷해졌다. 유색이 아름답고 태토의 입자가 가늘고 조밀하여 단단한 자기로 품질이 향상되었다.
강진 사당리 가마터에서는 용이 생동감 넘친 모습으로 음 ․ 양각된 청자 매병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그 밖에도 구름, 용 무늬 청자 베개, 수양버들 무늬 향로, 그리고 목 긴 병, 대접, 접시, 받침대, 잔 뚜껑, 매병 뚜껑, 잔과 받침 등과 각종 요도구들이 대량 출토되었다.
강진 사당리 가마터는 왕실 가마터답게 청자 모란넝쿨 용 무늬 매병, 청자 용 머리 장식 붓꽂이,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 청자 어룡 모양 주자, 청자 용 장식 향로, 청자 사자 장식 향로청자 연꽃 모양 향로청자 도철 무늬 향로, 청자 연꽃 무늬 매병 청자 대나무 ․ 학 무늬 매병 등 신비롭고 아름다운 청자가 출토되었다.
왕실 도자의 또 다른 가마터, 부안
전라북도 부안은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인 청자와 백자를 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부안 일대의 가마터는 일제강점기에 대량 도굴, 반출되었다. 부안 청자 가마터는 최초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조사됐다. 이후 이들 가마터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유천리 청자 가마터는 사적 69호, 진서리 청자 가마터는 사적 70호로 각각 지정되었다.
유천리 청자 중에는 왕실 청자와 같은 양식이 발견되었다. 명종 지릉, 희종 석릉, 파주 혜음원 유적 출토 청자들이다. 이런 청자들은 유천리 가마터와 고려 왕실 자기의 관련성을 말해 주는 중요한 예들이다. 그러므로 부안 유천리에서 제작된 청자는 왕실에 공급되었고 왕실 청자로서 애용되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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