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사랑 강진 :
강정님(동화작가)
십년하고도 조금 전의 일이다. 그 해 이른 봄, 나는 느닷없이 강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릇 몇 개와 덥던 이불을 둘둘 말아들고 간 짐을 내려놓은 곳은 강진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언덕길 옆의 조그만 집이었다. 집에는 방이 두 개 있었고 방과 방 사이에 부엌으로 쓸만한 구석진 곳도 있었으며 화장실도 안에 붙어있어 큰 불편이 없는 집이었다.
집에서 버스 터미널까지는 천천히 걸어 오 분 정도, 일용품이나 식료품을 구입하러 중심가로 나가려면 터미널에서 이삼 분 더 가면 되었다. 오전에 집 안 일을 대강 해치우고 오후에는 장보자기를 챙겨들고 시장으로 향하는 게 내 일과였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나는 문득 사방이 보물로 가득 찬 보물 창고로 나도 모르게 들어와 버린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개발 물결에 뒤질세라 옛 것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도시화 규격화를 앞질러 특색이라고는 없이 시멘트 곽들만 줄지어 세워놓은 인근 지방들 틈에서 유독 자존과 품위를 고집하고 있는 이 고장의 배짱이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하는 꼿꼿한 정신 앞에 존중심을 바치며 나는 할 일을 잊은 채 길이 이끄는 데로 보물 탐색의 장도에 들어섰다. 좁으장하고 구불거리는 중심가는 이마를 맞대고 있는 가게의 지붕들을 끌며 이어져 가고, 이 길 위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흡족한 얼굴의 사람들이 부산스럽지 않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읍을 남에서 북으로 관통하고 있는 중앙로 북쪽, 한산한 동네의 마지막 집, 지붕이 유난히 낮은 초가집 유리창에 식당이란 두 글자가 터무니없이 크게 쓰여 있었다.
짧은 골목, 막힌 골목,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나오고 마는 끈처럼 긴 골목, 그 옛날 첫 사람의 첫 발걸음을 상기시키듯 이리 구불텅거리고 저리 구불텅거리는 골목길을 가다보면 또 나타나서 앞을 막곤 했지만 정작 찾으려면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렸다.
군청 앞의 소나무와 느티나무는 하늘에 그려놓은 수묵화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우시장 터 심심한 바람은 기둥만 안고 돌았다.
오일 만에 서는 장날은 읍내가 온통 딴판으로 변했다. 길에는 온갖 임시 가게들이 길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고 약장수와 노래 테입 장수들의 쿵쾅거리는 북소리와 노래 소리가 온 동네를 뒤흔들었다. 읍내 사람이란 사람은 다 길에 나온 듯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길을 메우고 몰려다니는 모습들이 마냥 명절날 같았다.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보면 눈에 익은 사람을 몇 번이고 만나게 되어 나중에는 달려가서 서로 손을 잡는 다정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골목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문들이 활짝 열려있어서 집 안을 기웃거리며 가고 있는데 어느 집이나 마당가에 똑같은 물건이 놓여있어 내 시선을 끌었다. 그것은 드럼통 제품으로 펑퍼짐한 생김새 위에 굴뚝이 솟아 있었고 원뿔형의 덮개가 굴뚝을 덮고 있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한 집을 쑥 들어섰다. 개운하게 정돈되어 있는 집 안, 비 자국이 선명하게 쓸려있는 마당, 그러나 그 물건에 대해 물어볼만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크게 실례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마당가에 놓여있는 그 물건 앞으로 갔다. 물건 아래쪽에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네모난 작은 문이 달려있었고 안에 놓인 겅거리 밑으로 공기구멍이 통해져 있었으며 겅거리 위에는 타고 남은 재가 조금 남아있었다. 아, 이것은 가정용 쓰레기 소각기인 것이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곳 분들의 실용성과 창의성 미래 지향적인 삶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 어느 날, 며칠 전 산에서 곧장 동네 안으로 내려왔던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찾느라 골목을 헤매던 중길에서 놀고 있는 유치원생 또래 아이들을 만나 이 길로 올라가면 산으로 가게 되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당장 놓기를 멈추고 “산으로 올라가려면 이 쪽으로 오세요 아주머니.” 하여 앞장서서 뛰어갔다. 그들은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길을 조금 내려가다가 어느 집 마당을 지나 멈춰서더니 손을 들어 집 뒤의 좁은 숲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나는 별안간 생기를 넣은 주사라도 맞은 듯 눈앞이 환히 밝아지고 몸에서 젊음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의 또릿 거리는 빛나는 눈을 내려다보았다. 그 무렵 나는 자식들을 입장시키기 전이라 삐악거리는 손주 하나 두지 못한 처지에 중학생은 고사하고 고등학생 또래들에게까지 책임못질 할머니소리의 남발을 견뎌내고 있는 입장에 있었다. 이 무슨 생사람을 늙은 호박마냥 익혀버리려는 건방지고 괘씸한 세태의 무례한 행태란 말인가, 그러나 이렇게 천진하고 지혜로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한 세상은 결코 잘못되어가지 않을 터이다. 자녀들을 이토록 바르게 잘 기르고 있는 어머니들이 누구신지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이처럼 친절한 아이들을 만난 곳이 한 곳 발이었으면 나는 이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이 고장 도처에서 나는 이같이 똑똑하고 바람직한 아이들을 샐 수 없이 만났던 것이다.
밤 열 시가 되자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밖으로 나와 보니 고등학교 이학년들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시간이었다. 열한시가 되자 길은 한 층 더 시끄러워지고 삼학년들이 수업을 끝내고 나오고 있었다. 길에는 자가용 택시 트럭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이름을 부르며 찾는 소리로 주위가 시끌벅적 했다. 집이 먼 학생들의 부모나 형 삼촌들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오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학생들이 대절해 놓은 택시를 타기 위해 서로 부르며 찾는 소리인 것이다. 미처 시간을 맞추지 못한 차가 와서 늦게 까지 남아 서성거리고 있던 몇몇 학생들까지 데려가 버리고 나면 사방이 조용해진다. 이때쯤 들 건 너 읍내의 불빛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한다. 얼마가지 않아 불빛도 거의 꺼지고 읍내는 어둠에 잠긴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의 별들이 금강석으로 영글어가고 서로 소곤거리며 눈짓을 교환한다. 이윽고 아득히 먼 곳에서 방울 소리가 딸랑딸랑 들려온다. 어린아이 장난감 모양의 방울 별들이 또렷해지며 신비의 방울을 울리는 것이다. 밤을 새우며 별들과 밀어를 나누고 싶지만 내일을 위해 아쉬움을 남긴 채 방으로 들어온다. 집 앞 오르막길에 포플라 나무 세 그루가 있었는데 두 그루는 길 건너 편 덤불 속에, 한 그루는 이 쪽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여름 한 낮을 나는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과 놀던 바람이내 마음의 아픔을 쓰다듬고 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집 마당 가운데 이름 모를 풀하나가 자라고 있었다. 좁은 마당 한 가운데를 점거하고 있는 풀을 뽑아 버리려고 힘을 끙끙 써 보았지만 풀은 보기보다 강하고 뿌리가 깊었다. 풀을 뽑으려면 굳은 땅을 파헤칠 장비와 함께 힘 꾼을 불러와야 할 것 같았다. 조그만 풀 하나를 가지고 법석을 떨 필요가 있으랴 싶어 그냥 내버려두고 보았다. 풀은 가뭄에도, 큰 비가 와서 마당을 휩쓸어가는 물줄기에도 끄떡없이 쑥쑥 자랐다. 어찌나 잘 자라는지 눈만 떼면 그 사이에 성큼 자라는 것 같았다. 그 풀은 처음 보는 풀이었다. 농가에서 태어나 농촌 산야를 야생마처럼 누비고 자란 내 기억 속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생각나지 않는 풀이었다. 철사 줄 같이 꼿꼿이 선 줄기, 손바닥 같이 넓적하고 갈래가 지 두꺼운 이파리, 초록 빛 이라기에는 암울한 빛깔, 온 몸을 둘러싸고 있는 가시 같은 침들, 불법 침입자의 뻔뻔함과 전투 의지까지 느껴지게 하는 이 풀은 아무래도 토종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굳어지게 했다. 늦 여름이 되어 어른의 어깨 높이만큼 자란 풀은 이제 자랄 만큼 자랐다는 듯이 꽃을 피워냈다. 해바라기를 닮은 노오란 꽃이었는데 자기를 길러준 태양을 향해 도전이라도 하듯 강열하게 맞서는 꽃이었다. 향기도 없고 끈적거리기까지 해서 벌은커녕 날파리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외로운 꽃이었다. 꽃이 시들고 민들레마냥 솜털이 올라오더니 늦가을의 소슬한 황혼 무렵 바람에 실려 어딘가로 떠나가 버렸다. 멀리 갔을까? 가까운 이웃 어느 골짜기에 그 질긴 생명을 내려놓았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그 우악스럽고 끈질긴 종자가 지금 우리 산천 어느 곳에서 연약한 토종을 위협하고 잊지나 않는지, 그대로 두고 보았던 일이 잘못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혼란스러운 생각이 든다. 마당 한 쪽을 극적 거려 거름을 넣고 고추 묘와 가지 묘 몇 그루를 심었다. 고추나무는 거름기가 있을 동안은 제법 잘 자라고 고추도 보란 듯이 조롱조롱 매 달았다. 그러다 거름기가 떨어지자 잎과 줄기 끝까지 고추가 피지도 못할 좁쌀 같은 수많은 알갱이들을 졸망졸망 달아냈다. 이 무슨 짓일까? 촛불이 꺼지기 전 마지막 불꽃과도 같이 죽어가는 생명체가 토해내는 처절한 최후의 몸부림이란 말인가.
고추나무의 하는 짓거리를 지켜보고 있을 수 없어 뙤약볕 아래 고추 대를 뽑기 시작했다. 골목을 지나시던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걸었다.
“벌써 꼬치 대를 뽑아뿌요?”
“날 따술 찌개 얼른 치워 뿌러야제라우”
할머니는 웃으며 지나가셨다.
가을배추 몇 폭을 심어볼까 하고 울타리 옆 풀밭을 파고 있었다. 산 밑의 척박한 돌땅이라 자갈돌이 끝도 없이 나왔다. 돌보다 더 힘든 것은 쐐기풀이었다. 목장갑에 가죽 장갑, 고무장갑까지 끼어도 가시가 살 속을 파고들었다. 방도가 없었다. 가시에 찔리면 벌에 쏘인 것처럼 아리고 따끔거리고 퍼렇게 부풀어 올라 몇 시간 동안 손을 마비시켰다. 괭이로 찍고 발로 문질러 간신히 퇴치해 놓아도 이삼 일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서 삐쭈름히 고개를 내밀고 곧 한 뼘 크기만큼 자랐는데 아주 작은 놈이라도 몰상히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솜씨 좋은 농사꾼이라도 일이 년에 밭을 일궈 내기는 어려우리라 여겨지는 땅이었다.
잡초를 뽑다가 풀 속에서 어쩌다 그곳에 떨어졌는지 모를 가지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이 가지나무는 밭에서 자란 가지나무가 아니었다. 일생을 버텨온 투사 나무였다. 나무를 뽑아들자 놀랍게도 사십 센티가 넘는 가지 하나가 달려 나왔다. 마치 흙 속에 누워있던 거인이 몸을 불끈 일으키듯 딸려 나온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자루 모양 불룩한 가지를 본 순간 나는 어찌나 무섬증이 들던지 가지나무를 팽개치고 마당을 가로질러 문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그 것은 오랜 세월 지하 감옥에 감금당한 채 방치되어 온 죄수의 험상한 몰골이었다. 청동 빛 저주의 얼굴이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는 생명체가 세상을 향해 겨누고 있는 복수의 칼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는 그 생생한 현장을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읍내에 친구들 몇 명이 생겼다. 화장도 짙게 하지 않고 집에서 입는 데로의 편한 차림에 신발을 글며 나오는 수수한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모임을 만들고 날을 잡아 음식점으로 점심을 먹으러갔다. 그런데 그들은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모두 나서서 일손에 쫓기는 주인을 도와 채소를 다듬고 씻고 상에 수저를 놓고 그릇들을 부지런히 날랐다. 주인과 친척이 되는 것도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사람 안 듣는 데서 험담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적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면전에서 터놓고 애기하고 듣는 쪽에서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으며 받아들였다. 열린 문들 속에서 나의 문도 저절로 열려갔다. 겹겹으로 닫혀있던 문이었다. 얼마나 오래 닫혀 있었던지 녹이 슬어 삐걱거리며 잘 열리지 않았다. 나는 삐뚜름히 열린 문틈을 겨우 비집고나와 기지개를 켜고 코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겨드랑이 아래서 자유의 날개가 돋는 걸 느꼈다. 내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세상의 문들이 다 열리고 있었다.
고추대를 뽑을 때 골목을 지나시던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골목 끝 집에 살고 계셨다. 문으로 들어서다가 나는 깜짝 놀라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문간에 붙어있는 돼지우리에서 까만 흑 돼지 한 마리가 구정물을 튀기며 꿀하고 덤벼드는 것 같았던 것이다. 돼지 우리가 그만큼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멀리 시집 간 동생이 처음으로 언니 집을 찾아온 듯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할머니 방으로 안내를 받은 나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방안에 놓인 물건들, 오래된 농과 낡은 고리 너무도 눈에 익은 장판지 벽지 천정 무늬와 문틀, 가슴 속으로 왈칵 스며드는 그립고 그리운 옛 냄새.
내 어릴 적 동네 어느 집이나 내집 처럼 마음대로 드나들던 시절, 따뜻한 아랫목에 앉혀주시고 화로에 밤도 구워주시던 이웃집 할머니네 집. 한없이 소박하고 한없이 훈훈하고 따뜻했던 곳. 나는 어느 새 시간을 넘어 빈틈없이 행복했던 유년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이듬 해 봄, 나는 강진으로 떠날 때처럼 갑작스럽게 강진을 떠나오게 되었다 이제 시작인데, 친구들과의 우정도 할머니와의 교제도, 보물 탐색도 모든 것이 이제 겨우 시작인데 다 놔두고 떠나야 하다니, 나는 막 손에 들어온 보물을 다시 빼앗겨버린 아이처럼 사람이란 어떻게든 희망 쪽을 붙잡는 법인가보다, 몸은 떠나도 마음이 안 떠나면 되지, 자주 찾아와서 교분을 더욱 두텁게 이어나가면 되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일 뿐인데, 나는 밝은 마음으로 강진을 떠나왔다.
그 뒤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하며 세차레나 나를 찾아와 주었음에도 나는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는 지금 나의 반지 낀 손을 들여다보고 있다. 강진에서의 일년은 내가 살아온 동안 반지에 박힌 보석처럼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빛나는 시간이었다. 강진에서 머문 세월이 없었다면 내 삶은 보석이 빠져버린 반지처럼 밋밋하고 볼품없었을 것이다. 나는 강진을 사랑한다. 사람들, 길과 집들, 산과 나무와 숲과 대쪽같은 꼿꼿한 정신을, 친구들이 찾아오며 머리에 무겁게 이고 왔던 호박과 고구마 자루처럼 따뜻하고 소박한 마음을, 내 사랑 강진이여 영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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