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이 되니 필자의 집 텃밭 담장에 심어둔 장미꽃다발이 불그스레 화사하고, 화분에 군자란과 제라늄, 채송화, 수국 꽃들이 색색으로 피어나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까워 부엌에서 일하던 집사람을 오라 해 함께 꽃을 감상하니, 아내 말이 저 꽃들의 화사함같이 우리 인간도 죽는 순간까지 본 모습 그대로를 지니고 살다가 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많이 드니 너무 늙어져가는 우리들 모습이 싫어진다는 아내의 한숨 섞인 시름에 속으로 답하기를, 정말 그래요. 이 세상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피면 지고, 지면 다시 생겨나도록 창조해놓았듯 영원한 건 하나도 없나 보네요. 우리들 인간의 죽음 또한 삶의 연장선으로 하나님께서 우주의 깊은 진리를 깨우치도록 그 속에 담아두고 있는 거겠지요. 인생살이 한 평생토록 곱고, 기품 있게(dignified) 늙기란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오랜만에 집사람이 저녁 밥상에 좋아하는 갈치조림을 내와 맛있게 먹은 것이 탈이 난 것인지 밤에 갑자기 배탈이나 그 밤을 넘길 수 없는 상황이라 급히 택시를 불러 강진 의료원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선생 말씀이 장염에 위경련까지 심하니 며칠 꾹 눌러 병실에 입원해 종합검사를 받아 보셔야 한다며 6층 6인실 방을 정해줬습니다.
곁의 환자 한 분이 신음하는 내더러 위로하듯 “선상님! 어디가 많이 아프시당가요?” “배탈이 심해서 그러네요.” “원 산다는 게 다 무엇이고, 죽는다는 게 다 뭐신지? 살다 아프지 말고 그냥 죽어버리면 그만 일걸 죽지도 않고 오살나게 아프기만 허니 살맛이 나질 않네요. 사는 게 내만 그런지? 내 몸도 종합병원이니 도통 모르겠당게요? 나도 게장 맛있게 먹다 배탈이나 왔당게요.” 이 말에 그 곁의 한 분이 “보이소 보이소 뭐 라꼬 예? 세상사는 게 다 속아 산따꼬 하지 않던기요. 골치 쌔겨 샀지 말고 아파도 꾹 참고 그냥 둥글둥글 살다 가입시데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그 곁의 또 한 분이 “왜 사느냐고요?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요? 그걸 한사코 따져 묻지 마세요. 이 세상에 왔으니 사는 날 까지 그냥 요렇게 살다가는 게지. 사는 게 꼭 무슨 공식(公式)이 있거나 법칙(法則)이 따로 있답디까? 요즘 100세 시대 노래가사에도 한 백년 살다 오라며 아주 재미있게 부르고 있잖아요? 하지만, 아무 탈 없이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이 그 몇이나 된답디까? 거의가 나이 들면 앓다가 가는 것이고 사람이 꼭 이렇게 죽는데 라고 잘라 단정하기는 어렵지요. 병의 종류도 수천 수 만 가지일 테니까요.”
6인 병실에 얄궂은 인연들로 만나 오가는 말들로 나눈 인생사 이야기들을 듣다 말고 필자도 몸이 좀 우선해지자 질세라 한마디 거들었지요.
“이 세상에 나와 꼭 한 가지 분명한 건 여러분들이나 내나 그저 왔으니 가는 것도 단 한 곳 황천(the way to Hades)가는 길만은 맡아 논 당상이랍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황천길 멀다더니 눈감으니 저승이라’ 허지 않던 가요. 언젠가는 누구나 반드시 간다는 사실인데 이 세상에 살다가 좀 빨리 가고 뒤에 처져가는 것밖에 없지요. 그건 이 세상에 나를 보내주신 절대자분이 칼자루를 쥔 특권의 사항이지요.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갑시다.”
우리가 비록 나이 들어가고 있다 해도 나무에서 감이 익으면 떨어지는 이치이듯 우리도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게 인생이지요. 허니 지금 살기가 지겹고, 아프고, 고달프고, 싫어도 몸이 성해 쐬주 한잔이나 담배라도 한대 꼬 실수 있다면 그게 외려 사는 맛이고 재미가 아니겠어요? 헌데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 날마다 비실비실 비 맞은 장 닭 신세 되어 염라대왕이 당신 곁에 다가와 잡아 갈라고 지켜 서 계시면 그도 못할 짓이 지요. 돈 좀 벌었다고 껍쩍 거리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젠 별 볼일 없이 뛰어봤자 벼룩이 신세 인생이 따로 없잖아요?
그러니 얼기설기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이니 사이좋게 한(恨) 풀며 살아갑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삶과 죽음에 얽힌 문제의 절대적인 해답은 없답니다. 우리 인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서로간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최선의 길을 찾는 것만이 전부겠지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세계적인 석학 <웨인 다이어> 박사의 저서 ‘세상에 마음 주지마라’라는 책 35쪽 신성은 어떤 모습일까? 라는 내용 가운데 지극히 중요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신은 내 안에서 자신의 시종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라고 써 인간의 영(靈)을 두고 ’지금 나는 신과 같은가?‘ 라는 물음을 남겼습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정해봅시다. 마지막까지 혼수상태로 이어지는 그 시간....... 곁에서 지켜보는 살붙이들의 그 애통(哀痛)한 심정은 천륜(Natural Law)의 연을 끊는 순간이기 때문에 침묵만이 있을 뿐이랍니다.
필자도 그런 애통함을 많이 겪은 중에 나의 선친(先親)의 예를 들어보면 오랫동안 류마치스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다 마지막 사흘 전에 임종을 지켜보던 저희에게 안락사(euthanasia)를 시켜 달라고 힘없이 하시던 그 한마디 말씀을 허락 해 드리지 못하고 결국 돌아가시게 했던 후 몸을 씻어드릴 때 팔에 뼈가 녹아 가루가 돼 있었음을 보며 얼마나 견딜 수 없어 안락사를 바랐을까? 탄식하며 통곡했던 기억을 지금까지도 지울 수 없지만 마지막 임종에 임박해서는 고통스러워했던 그 모습은 전혀 없고, 편히 잠자는 자태로 심장박동의 심전도가 길게 멈춘 다음 그대로 밝은 상태의 얼굴로 영원한 영면(eternal sleep)의 단계였습니다.
또 내 셋째 매제는 젊을 적에 만나면 평소 필자와 소주(30도)를 앉은 자리에서 대여섯 병 대작을 해야 헤어질 정도의 막역한 사이였는데 결국 당뇨합병증으로 오랫동안 고생이 심하다 두 다리를 세 번이나 자르고 마지막 가기 하루 전날 나와 독대한 지리에서 “술친구형님 나 먼저 갑니다.”며 함께 흘렸던 그 아픔의 눈물은 정(情) 이전에 끈끈이 맺어진 이승에서의 헤어지기 싫은 한(恨)임을 아쉬워했답니다.
그리고 피지에 이민 가 살던 때 ‘나후토카’라는 곳에서 개를 너무 좋아하던 아들이 영국 순종 개 셰퍼드 어린 놈 한 마리를 데려왔는데 ‘이리스’라고 이름 지어준, 그 많은 신발들 중 꼭 아들 녀석 신발 한 짝을 옆에 두고 자던 그놈이 한 달반 여를 잘 크다가 갑자기 개 홍역 ‘디스템퍼’에 걸려 결국 죽게 되었을 때 죽기 직전 그 개의 마지막 글썽이던 눈빛이 잊혀 지질 않고, 아들과 둘이서 한밤중에 가까운 공동묘지에 가 묻어주고 온 일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승에 사는 동안 누구나가 그런 슬픔의 이별을 지니고 살아가기 마련이라 죽고 사는 그 순간의 소중한 시간만은 도저히 잊혀 질 수 없는 이승의 인연 탓이겠지요.
대부분 임종이 가까이 오면 호흡하는 모습이 달라지더군요. 아래턱을 내밀거나 큰 하악(下顎)호흡으로 몇 여분을 견디지 못하고 멈추는 것을 봤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 얼굴의 모습이 대체로 무척 평화로워 보였지요. 다 놓고 편히 간다는 뜻이기도 하듯 입혀드리는 삼베수의에는 노자 돈 넣을 주머니 한 곳도 없더군요. 임종을 지켜본 가족들이 그때야 이승과 저승사이를 갈라놓은 순간이기에 울음바다가 되지만, 죽은 혼령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대화를 다 듣고 알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 실증으로 입증되고 있지요.
<임사체험의 교훈은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거죠. 임사체험이 이를 인식하도록 해 주는 것 같습니다.>“마이클 세이봄 빛과 죽음”속에<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구약성서 `욥기`
필자도 80평생을 살아오며 가만히 눈을 감아 환영해보면 가까웠던 그 수많은 분들의 임종의 현장을 유다르게 많이 다녀 잊혀 질 수 없는 기억으로 선하게 떠오르는 것은 인지상전(human nature)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말로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은 왜 죽을까? 또 사람은 죽은 다음 어떻게 될까? 라는 세 가지 큰 의문점을 가지게 되지요. 그리고 인간이기에 조금만 아파도 내가 혹시 죽지나 않을까? 라고 마음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이승에 나와 살면서 세상에 대한 쌓인 미련이나 각가지 인연 따위가 끝이 없어 세상에서 떠밀려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운명적 존재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렇듯 언제까지나 이승을 떠나기 싫어하는 유행어로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났다”는 표현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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