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이현숙기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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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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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기자의 시선
저녁이 있는 삶

최근에 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모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사실 안부를 묻는 사람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라는 질문은 인사말로 건네는 말이고, 뭐라고 대답하는지도 큰 의미는 없다. 한마디로 나의 요즘을 짧은 말로 표현한다는 게 쑥스러운 답이기 때문이고, 딱히 뭘 말해야 하는가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 대답이 쉽게 나온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내게 저녁이 있는 날은 지난 1024일 이후부터다. 저녁이 되면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진 것이다. 평소 텔레비전을 즐겨 보지 않았던 나는 그즈음에 오래전 막을 내린 태양의 후예를 밤낮으로 이틀간에 걸쳐 보고나서 송중기의 애틋한 눈빛연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렇게 잡은 텔레비전 리모컨을 계속 놓지 않게 만든 것은 그 픽션보다도 더 리얼리티한 재미를 주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져서 빠져들고 감동 또는 분노를 경험하고 오랫동안 간직한다. 내가 태양의 후예 1편을 본 후 16편까지 내리 보게 된 것은 허구가 아닌 실제처럼 다가온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삶이 부럽기도 했지만, 감동과 인간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픽션을 통해 감동하고 여운을 갖는 것은 인물들과 인간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인가 아닌가.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런 말들은 그동안 텔레비전 막장드라마를 통해서도 많이들 표현해왔다. 그러한 막장드라마처럼 개개인의 삶에 숨겨진 희로애락이 개연성이 있기에 인기를 얻고 시청률을 높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막장드라마 같은 사건들이 실제 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니 얼마나 재밌지 않겠는가. 특히, 더 재밌는 모습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을 두둔해온 텔레비전 보도 프로그램 패널들의 목소리가 하루하루 달라지더니 완전 딴판이 된 인물로 나온다는 점이다. 요즘 내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누워서 뒹굴며 텔레비전 리모컨을 이리저기 돌려보는 재미다. 자고나면 쏟아져 나오는 최순실씨와 그 주변 인물들이 뻗친 기막힌 행태들은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어서 매일매일 사실인가 아닌가에 놀라고 화도난다. 그뿐아니라, 가족모두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한마디씩 내놓게 되니, 폭넓은 대화거리가 생겨나고 있다. 아직 고등학생인 막내조차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학교생활에서 받은 각종 특혜에 대해 허탈한 목소리를 내고, 공무원인 둘째는 직장에서도 공무원 못해먹겠다고 한다면서 누구는 하루아침에 청와대에 들어가 3급이 되는 현실과 한 개인의 수족이 된 추잡한 고위직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창피하고, 마침 휴가 나온 큰아들은 군인이니까 참고 있다며, 모두들 이러려고 공부하나, 이러려고 공무원 됐나, 이러려고 군대 갔나, 자기 나름대로 나라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걱정을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지난 10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갑자기 개헌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대통령의 개헌카드는 한마디로 한발 한발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보이지 않는 발걸음에 대한 두려움이며, 밝혀질 사건에 대한 복선이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 개헌이라는 단어에 편이 갈라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JTBC 뉴스는 최순실이 사무실에 두고 간 테블릿PC를 분석해본 결과 44개에 달하는 박 대통령 연설문을 최씨가 미리 받아 본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인 25일 긴급 대국민사과를 했다. ‘순수한 마음에서 연설문 및 홍보물에 대해서만 의견을 물었다며 연설문을 최씨가 수정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어진 114일 박대통령은 두 번째 대국민담화 발표에서도 진정성을 담지 못해 다시 국민들의 공감대를 사지 못하고 말았다. 왜 대통령은 국민들과 공감대를 좁히지 못하는지 아쉬움이 남지만, 막장드라마의 다음편이 매우 궁금할 뿐이다. 최순실이라는 60대 여자에 고영태라는 스무살 연하 전 펜싱국가대표 및 호스트바출신 남자, 문화계 황태자라 불리는 40대 후반 차은택이라는 남자 이렇게 셋이 얽힌 삼각관계 속에서 사이비에 놀아난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이 어떻게 좌우지 되었는지 앞으로 더 궁금해진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남는 특별한 한마디처럼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식의 푸념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대중 속에 회자되게 됐다. 그만큼 박대통령은 국민들의 정서와 먼 거리에서 있었다는 것을 또 한번 증명한 셈인데, 나는 박 대통령이 국민 정서와 반대되는 정치 스타일에 일찌감치 아쉬움이 있었다. 한 가지는 세월호 사건을 단순히 사고 수순으로 해결하려고 한 부분이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타임을 놓치고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수장시킨 사건이다. 그렇기에 그 가족뿐 아니라 전 국민들을 슬픔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또 한 가지는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다. 농민 한 사람이 시위도중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죽었는데, 그 죽음을 개죽음처럼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가슴깊이 슬퍼하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국민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함께 슬퍼하고 애도하고 위로하는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해결해야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해결이 안 되고 시끄럽기만 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에 나올 때도 나오지 않아야 할 사람이 나와서 중간에 큰 일이 날 것만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딱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잘 한부분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억울한 피를 흘리게 했었다. 그럼 부모의 죄 값을 누가 치러야 하는가. 내 사견이지만, 특별히 죄 값을 치르지 않더라도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억울한 죽음 뒤에는 한 맺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식은 한없이 높은 곳으로 또 오르려고 할 때, 과연 선은 어느 쪽으로 향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의 성서에서는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상속이 된 점을 말하고 있고, 그래서 그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업, 카르마를 통해 성찰의 삶을 제시해 주고 있듯,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은 분명한 삶의 이치 아닐까 싶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벌어진 지금의 불행한 현실은 어쩌면 거스릴 수 없는 삶의 이치일런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던져놓은 개헌이라는 복선은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켤 것이다.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들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이미 대통령은 헌법을 어긴 것이므로 개헌카드는 당연히 다음으로 이어지는 수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순실 게이트에 개헌이라는 복선은 정치인들의 의견이 달라 분쟁이 밖으로 돌출되어 이어질 것이고, 최순실 게이트가 점점 박근혜 게이트로 향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문제가 어떻게든 결정될 것이다.

과연,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 주인공은 누구일까. 오늘도 저녁 내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박근혜 대통령 주변으로 펼쳐진 정치인들, 청와대의 인물들, 우병우 민정수석 등 문고리3인방, 최순실의 남자들과 최씨 가족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즐기고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 좀 더 성숙하게 변화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태양의 후예에서 보았던 송중기처럼 그윽한 눈빛을 표현하는 정치인이 텔레비전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너무 감성적일까. 12일 저녁에는 서울 광화문에 집결한 100만 인파가 들고 있는 오싹한 피켓 문구들에서 빠른 겨울 한파를 느끼면서도, 어둠을 밝히고자 치켜든 촛불들의 뜨거운 열정속으로 저절로 휘감겨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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