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대구면 백사마을 김납덕(95)할머니
그 옛날에는 빨래하기가 어느 집이고 쉽지 않았다. 땅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을 이용하는 마을이 많았는데 백사마을은 바다가 인접해 있어 우물물도 짠물이 스며들었다. 따라서 식수로 사용하기 힘들뿐 아니라 빨래조차도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녀자들은 멀리 개울까지 가서 식수를 길러오고 빨래를 해야 했기에 겨울이면 몹시도 손이 시렸다.
“빨래를 하고나면 땡땡 얼어가고 와, 콩나물을 씻어도 땡땡 얼고 그라재, 자식들이 많은께 금방 돌아서면 먹여야하고 입혀야하고 오만일이 다 힘들었재.”
김할머니는 장흥 대덕에서 18살에 백사마을로 동갑인 남편에게 시집왔다. 강진만의 청잣빛 바다를 낀 해안도로주변의 너른 갯벌은 백사마을 아낙네들의 삶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바닷가 아낙네로서 갯일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점에 김할머니는 좀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지 않았나 싶다.
“시어머니는 갯것을 따로 다녔지만 내게는 갯일을 시키지 않았어, 너는 집안일이나 해라 해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요.”
누구나 가난했던 그 시절에도 시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남편의 자상함이 어떤 고생도 다 덮어버릴 만치 크다는 것을 김할머니의 편안한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지만 크게 느껴지는 것은 항상 물 걱정이었는지 김할머니는 물을 길어 날랐던 일을 먼저 떠올린다. 빨래를 하고나면 손마디마디가 이내 마른 떡덩이처럼 굳어질 정도로 차가웠던 물이다.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물을 길렀던 만큼 매서운 겨울 칼바람이 지금도 생각하면 오싹해진다며 몸을 웅크리신다. 그러나 그 시절 누구나 할 것 없이 물을 길어다먹고 개울물에서 빨래를 해야 했기 때문에 김할머니는 다른 아낙네들에 비해 좀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왜냐면 백사마을 아낙네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갯것을 채취하는 것이 주된 일과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때가 언제였는지 인자 다 지나 부러서 모르겄어요. 살았을 때 서로 생각허고 살었어, 아무라도 누구하나 앞에 가게 되는 것을 그런갑다 하재, 살었을 때 징허게 생각해주었어.”
징하게 생각해주었다는 남편은 65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8남매를 키우면서 갖은 고생 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집터에서 8남매 모두를 혼인시켰음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는 김할머니다. 그러나 자식 둘을 먼저 보내야 했던 아픈 마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슬픔으로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했다. 95세 연세에도 귀도 밝고 피부도 고운 김할머니는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어나 미꾸라지 붕어 등 민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육고기를 좋아하는 음식습관을 갖고 계셨다. 장남인 서길문(74)씨는 대구농협 조합장을 지냈다. 서길문씨는 평소 서예를 좋아해서 대구면사무소 서예실에서 서예를 지도하기도 하며 지난해 말 한국서가협회 전남지회 강진지부장에 취임했다. (이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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