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전(堂前) 명편을 찾아서
우리 일행은 두 번째 목적지인 항주 공항에 도착하였다.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저녁식사를 뒤로 하고 송성가무쑈를 관람하기 위해 공항에서 공연장으로 바로 이동했다.
중국에는 유명 관광지마다 대형쑈를 곳곳에서 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북경에는 금면왕조, 리장에는 여강인상쑈 등이 그것이다. 볼거리와 중국 역사를 알리기 위한 쑈로서 송성가무쑈 역시 남송시대 항주가 수도였다는 것이 배경이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중국 3대 인상쑈인데 무대에서 말이 달리고 성벽을 오르는 전쟁, 성벽에서 물이 쏟아지는 놀라운 광경이 전개될 뿐 아니라 화려한 의상과 소품들이 돋보였다. 사랑이야기와 송나라 때의 나비춤, 차 따는 항주아가씨 등 300여 명이 나오는 송성집단의 인상서호쑈였다.
극장은 만석일 경우 3000여 석으로 많게는 하루에 12번을 공연한다 하니 그저 놀랄 수밖에.
이번 답사의 핵심은 장보고와 청자를 답사하는 일이었다. 이튿날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서호에 있는 절강성 박물관견학에 나섰다. 항주시내를 빠져나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호에 들어섰을 때 관광버스의 진입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도보로 움직여야 했다. 서호 주변에는 늘어진 수양버들로 정취를 풍미하고 있었는데, 축 늘어진 버드나무와 호수가 한데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서호는 항주에서 첫 번째 가는 관광지이다. 뿐만 아니라 서동파가 이곳으로 좌천되어 항주시 백성들과 함께한 삶 자체로 서호를 사랑했던 서동파였다. 우리는 그가 만들었다는 동파육을 보았는데, 그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서호 안에는 고산이 있고 고산에는 임포의 신선의 삶은 은자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강진지역 백운동 별서정원의 이담노의 삶도 매처학자의 삶과 왕희지, 난정의 유상곡수의 전원의 생활을 본받고자 했음을 알 수 있듯이 난정서와 당태종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호수를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절강성 박물관이 보였다. 아직 박물관의 문이 열리지 않는 시각이어서 배가 떠 있는 서호를 바라보며 잠시 서호의 정취에 흠뻑 빠져보았다. 서호의 아름다움은 비오는 날이 가장 좋다고 한다. 중국 돈 2위안에도 서호가 도안될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단체기념사진을 찍으며 얼마 정도 기다렸을 때 박물관의 문이 열렸다. 절강성에서 발굴된 토기, 철기, 자기, 청자 등이 전시된 공간으로 서로와 잘 어울린 아름다운 박물관이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다음 일정인 남송관요로 향했다. 서호 주변이 숲과 전원주택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었는데 자연과 잘 어우러진 무위자적의 삶이 부러웠다. 1시간 남 짓 달려 남송관요에 도착했다. 박물관 정문 앞에는 박물관의 상징물인 황금색 불꽃모양의 탑과 태양을 상징한 청자가 조형되어 있었다. 규모는 아담한 전원 속의 숲과 어울리는 고즈넉한 남송관요 박물관은 항주가 남송의 수도였을 때 관요로써 역할을 했던 곳이다. 우리 고장 강진 청자와 비슷한 시대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7년 전 나는 항주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청자편들이 이곳 항주에 공납을 했던 상감청자와 용무늬편들은 아주 귀하게 취급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었다.
이곳에서는 우리 강진청자를 고려병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3층으로 된 전시품들을 둘러보다가 청자매병에 뚜껑이 있는 것을 보고 특이하게 느껴졌다. 전시품 거의가 청자였고 우리 강진청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남송관요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3층의 전시관을 모두 둘러본 후 내려와 뒷길을 따라 100여 미터 갔을 때 송나라 때 자기를 만들었던 공방과 작업장이 나왔다. 실내에 있었기 때문에 상시 관람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곳을 한바튀 돌고나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가니 40여 미터가 넘는 대형가마가 지붕을 덮고 경사지를 따라 펼쳐졌다.
어마어마한 대형가마의 규모!
강진청자 가마는 길어야 10여 미터 내외인데 반해 그 대형가마의 규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저토록 큰 가마에서 얼마나 많은 자기가 구워졌을까. 다시 한 번 대국의 위용을 느끼게 했다.
점심을 마치고 자계시 박물관과 초기청자산지였던 월요지가 있는 상림호를 보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설레었다. 상림호 주변에는 400여 곳의 요가 분포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수원지로서의 기능을 위해 댐을 막아서 상림호 주변에만 소수의 요가 남아 있고 지금도 발굴을 계속 하고 있다 한다.
월요지와 상림호! 나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를 그동안 얼마나 수없이 되뇌였던가. 이번 절강성 답사의 목적도 실은 여기에 있었다. 2008년 12월 강진청자박물관에서 청자학술 발표를 하였는데 당시 전주박물관장이었던 김영원관장은 「강진청자의 역사적 배경과 발달」이란 논문에서 「강진청자와 중국월요청자」란 소제목을 제시하며 강진청자와 중국월요와의 관련성을 시사해주는 한명문 자료가 있어서 발표한 내용이었다.
중국 절강성 사룡구 월요지에서 출토된 ‘당전(堂前)’ 명저부편이 그것인데 ‘당전’이란 글자가 굽바닥에 음각되었다. 이명문편과 동반출토품에서는 ‘太平成寅명(太平興國 3년, 978)’이 발견된다. 이 ‘당전명저부편’에서 ‘당전’은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 청자가마터가 밀집된 가장 큰 마을인 ‘당전(堂前)’ 마을과 같은 글자이다.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다만 상식적으로 두 가지를 추정해볼 수가 있다. 하나는 고려시대 강진 사당리의 당전마을에 살던 사람(요운영자 또는 사기장인)이 중국으로 건너가 절강성 월요에서 요업에 종사한 경우. 반대로 중국월요 일대에 ‘당전’과 관련된 곳에 살던 사람이 한반도에 건너와 요업에 종사하면서 ‘당전’이란 마을 이름을 붙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당전’명 청자편을 매개로 강진요업에 대해 중국월요와 인적 물적 교류 및 문화적 영향을 추축해볼 수 있다라는 논문내용을 읽어보고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에 ‘당전’명이 실린 중국도록을 구하고자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2002년 출판된 도록이어서 자계시 박물관에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궁리 끝에 아들 친구가 중국 북경에 직장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중국 인터넷에 광고를 내 수소문한 끝에 한 곳에서 소지하고 있다는 연락이 와서 고가를 주고 북경을 통해 보름만에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 책의 131페이지에 수록된 ‘당전’명편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왜 그림으로 도록에 실었을까 의구심이 생겼다. 사진으로 실었으면 확신이 더욱 생겼을텐데 ‘당전’편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던 김영원 교수는 수소문해보니 대전연구소장을 끝으로 퇴직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강진에서 청자장으로 청자박물관 실무책임자로 일하시다 퇴직하신 이용희 선생께 전화를 해서 ‘당전’의 내력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당집이 있는 앞동네라고 해서 당전이라고 어른들한테 들었다’고 답해 주셨다. 강진군 마을사 대구편을 찾아보아도 똑같은 내용이었고, 청강 선생이 지은 「탐진현 고려자기」라는 책에도 ‘당전’이란 내용을 ‘화구’ ‘땅뜸’ ‘장전’ ‘당전’ 등으로 바꾸어온 듯 하다고 정리해 놓고 계셨다. 결국 1천년 전의 지명인데 쉽게 내역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왠지 ‘당전’이란 지명은 우리나라 마을 이름치고는 흔한 이름이 아닌 뜻이 있는 보기 드문 이름 같다는 생각이 계속 내 뇌리를 파고들었다. ‘당전’의 명칭과 중국에서 발견된 저부편의 현장인 자계시박물관을 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2016년 해설사 해외연수를 정보고와 청자의 고향 월요지를 찾아가보자고 의견을 내 가게 되었던 것이다. 자계시박물관에 이메일과 팩스를 통해 공문을 군청 문화관광과 윤진희 차장이 여러 차례 보냈으나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아들과 친구를 통해 소재파악을 해보니 ‘당전’명편은 고고학연구소로 보내졌다는 답변 뿐 자세한 내용을 답사가 시작되는 날까지도 들을 수가 없었다.
답사가 시작되고 여행사대표와 현지가이드를 통해 끈질기게 접촉한 결과 공무원신분이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 일행중에 정연희 선생의 노력으로 겨우 발굴 현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했다. 그래서 3시간 동안 지루하게 고속도로를 달려 자계시로 들어서는 이정표를 보며 비로소 자계시박물관에 가까이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박물관 직원이 나와 있었다. 그동안 박물관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은 박물관이 이사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층 전시장을 둘러보았을 때 거의 전시품은 이사를 한 상태였고 소수 전시품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전시관을 둘러본 후 직원을 따라 상림호에 있는 월요지발굴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을 안내해 주겠다는 말에 직원의 승용차를 앞세우고 시내를 벗어나 30여 분을 달리니 상림호가 나타났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 후 상림호를 건너가려고 했을 때 안내를 해준 직원에게 강진청자 한 점을 선물했다. 그리고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철선에 올라탔다. 처녀가 선장인 그 철선은 능숙한 솜씨로 건너편 월요지 발굴 현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발굴 현장은 호수 바로 옆에 있었는데 감시원과 초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계시 박물관 직원은 우리들을 친절히 안내하면서 발굴 현장을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나는 발굴현장 이곳저곳을 관찰하다가 해무리굽 청자를 발견하고 직접 만져보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강진고려청자 탄생의 비밀을 쥐고 있는 해무리굽청자. 나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박물관 직원과 강진청자와의 관계를 가이드를 통해 이견을 교환했다.
‘당전’저부편은 이곳 사룡구지에서 수습되었으며 이 근처의 지명 중 ‘당전’이란 명칭은 아직 없었다. 이 주변이 사룡구 월요지라고 하는데 우리 고장에도 ‘당전’이란 마을이 있다는 말을 했더니 금시초문이라고 대답했다.
어쨌든, ‘당전’명저부편은 고고학연구소에서 ‘당전’명에 대해 연구결과가 나와 봐야만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이쯤에서 설명을 자세히 들은 우리는 상림호에서 헤어져 다음 목적지 보타산으로 향했다. 우리 일정은 5박 6일이었는데 4일째 되던 날 영파와 항주 중간 지점에 있는 소흥이라는 곳이다. 소흥은 옛날 월나라 수도였던 곳으로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로 유명했다. 왕희지의 난정서를 썼던 난정과 유상곡수의 현장이기도 하고 노신(1881-1936)의 고향이기도 한다.
노신이 소년일 때 생활했고 공부했던 노신고리를 방문했다. 뼈대 있는 가문에 태어나 부유한 생활 속에서 일본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서 석 박사과정을 마친다. 그후 일본의 침략으로 조국에 처한 입장을 고민하다가 소설가로 전환하여 저명한 작가가 되기도 했지만 많은 소설을 썼다. 그의 대표작에 ‘아큐정전’이 있다. 그는 중국문화혁명 주장이자 위대한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였다. 그는 1936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의 부유한 집을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심산형이 나를 급히 불렀다. ‘당전’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노래처럼 외우고 있었던 그 ‘당전’이라고는 생각치 못했고 오던 길을 되짚어서 노신의 접견실로 소개된 곳을 가리키며 안내표지판을 가리켰다.
아, 그런데 그 표지판에 ‘當前’이라고 분명히 써져 있었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로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소당전(小當前) 객당은 소흥에서 당전이라고 하는데 이는 노신 가족이 식사하고 손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신해 혁명기간에 노신은 주로 여기에서 방문온 친구와 혁명을 접대하였다”
당전이란 말은 분명 반가운 말이었지만 지금까지 당전이란 말이 중국의 어느 한 지역의 지명일거라고 생각하였는데 손님을 맞이하는 방을 가리켜 ‘당전’이란 말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남은 일정 내내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왕희지의 난정과 아과아지, 유상곡수의 전경을 보고 상해를 거쳐서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도 ‘당전’에 대한 생각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당전’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 중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까닭일까. 집에 도착한 나는 우리를 안내했던 자계시 박물관 직원인 황선생에게 안부 이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준비가 부족했으며 다시 한 번 방문하여 주시라는 내용이었다. 내년에 ‘당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방문을 해볼까 한다. 중국 소흥의 ‘당전’은 객당(사랑방)이고, 강진의 ‘당전’은 청자를 만들었던 마을이 아닌가.
‘당전’의 추적은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그것이 강진고려청자의 비밀을 캘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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