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와 강진청자
강진의 문화유적 해설을 시작한지도 어언 10여 년을 넘기고 있는데, 2016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11월 28일 장보고 유적과 청자의 고향 월요를 답사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중국 해외연수가 중국으로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강진의 문화유적을 해설하고 향토사를 공부하다 보면 항상 궁금하고 의문이 남게 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장보고와 청자였다. 그래서 항상 나는 장보고를 알게 된다면 강진의 불교와 차(茶), 그리고 청자문화의 시작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강진 문화유적 해설가팀은 11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5박 6일 동안 산동성과 절강성을 넘나드는 빠듯한 일정으로 짜여졌는데, 결코 짧은 기간의 답사는 아니었지만 현장과 박물관이 많다보니 그 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먼저 장보고 유적지인 산동성 적산 법화원, 신라방, 적산포였고, 절강성 서호에 있는 절강성 박물관, 남송관요, 자계시박물관, 월요지와 상림호, 보타산의 불교 유적지, 신라와 고랴 무역항인 영파, 그리고 소흥의 노신고거, 왕희지 란정의 유상곡수 등을 체험하고 상해를 거쳐 귀국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새벽에 강진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인천공항을 향했다. 중국답사의 기대 속에 달뜬 기분이었는데, 다시 한 번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를 떠올렸다. 중국의 모든 일정이 장보고와 연계되었기 때문이었다.
장보고(張保皐 ?~846) 그는 누구인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그의 번천문집 권6 「장보고 ․ 정년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신라 사람 장보고와 정년은 신라로부터 당의 서주(徐州)에 와서 군중소장이 되었다. 장보고는 30세이며 정년은 그보다 10세 연하였다. 두 사람은 싸움을 잘 하여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를 때 그들의 본국에서는 물론 서주에서도 당할 사람이 없었다. 또 정년은 잠수를 잘하여 50리를 가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용맹과 건장함을 견주었으나 장보고는 다소 정년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장보고는 나이가 위라는 이유로 또 정년은 무예가 능하다는 까닭으로 서로 상대의 아래 있기를 꺼려했다. 뒤에 장보고는 신라로 돌아가서 흥덕왕을 배알하고 ‘중국 도처에 신라인들이 잡혀와서 노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청해에 진을 설치한다면 해적들이 사람들을 잡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아뢰자 흥덕왕은 장보고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바다를 지키게 하였다.
이후 태화(太和 827-835)부터는 신라인을 잡아가는 해적들이 없어졌다. 그런데 장보고가 청해진 대사가 되었을 때 정년은 실직하여 당나라 서주의 연수현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이고 있었다. 어느 날 정년은 연수의 무장인 마원규를 찾아가 의논하기를 ‘신라로 돌아가 장보고 아래에 몸을 맡기겠다’고 하자, 원규는 ‘자내와 보고는 서로 원한을 품고 있는 사이인데 어찌 그에게 몸을 맡기려 하는가’하고 말했다. 그러자 정년은 ‘기한으로 죽는 것보다 싸워 죽는 편이 낫고 하물며 그것도 고향에서 죽으니 바랄 것이 없다’라고 했다.
정년이 신라로 돌아와서 청해진에 있는 장보고를 만나자 장보고는 그를 극진히 대접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가 끝나기 전 국사가 찾아와서 왕위찬탈의 소식을 전하자 장보고는 정년에게 5천의 군사를 맡기면서 눈물로 말했다.
“그대가 아니면 어찌 이 환난을 평정할 수 있겠는가?”
정년은 신라로 진격하여 반란자를 진압하고 국왕을 옹립했다. 국왕은 장보고를 재상으로 삼고 장년으로 하여금 청해진대사를 대신케 했다.
두목은 이들의 전기를 이렇게 끝맺고 당나라 때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755-764) 때 토벌의 공이 컸던 곽자의(697-781)와 그와 앙숙지간이었던 이광필(705-764)과의 고사를 기술하고 나서, 신라로 돌아온 정년을 환대한 장보고를 곽자의에 필적할만한 현인이라고 격찬했다. 장보고가 가진 인간적인 의협심과 용맹성, 그리고 한없이 넓은 도량은 같은 시대의 저명한 시인 두목이 전기를 쓰게 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 일본 천태종의 시조가 된 엔닌(圓仁 794-864)은 헤이안 시대의 승려로 장보고에게 보낸 서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생년 이후 아직 삼가 만나 뵈옵지는 못했습니다만 오래 전부터 고명을 듣고 있사옵니다. 엎드려 경모의 정을 더할 뿐이옵니다. 지금은 중춘으로 벌써 따뜻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대사께서는 존체만강하리라 믿습니다. 지금 저는 멀리서 은덕을 입사옵고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저 엔닌은 예부터 품은 마음은 도저히 필설로 다할 수 없사옵니다. 하옵고 제 고향을 떠나올 때 범전의 태수로부터 서장을 기탁 받아 대사께 헌상코저 했습니다. 하온데 홀연히 배가 잔해에 침몰하자 화물은 표실되고 서찰도 파도에 따라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질책하심이 없기를 비옵니다. 언제 뵈옵게 될지 모르기에 다만 경모한 마음 더할 뿐입니다. 예가 아니옵니다만 삼가 서면으로 문안드리옵니다.”
엔닌은 일본 조공사의 일원으로 입당하여 당나라 내륙을 구법순례한 스님이었다. 그러한 신분의 그가 장보고에게 전교된 태수의 서찰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그 당시 그가 장보고의 총체적 위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중국과 일본 정부와 신뢰를 쌓으면서 산동성 석도진에 적산법화원, 일본에 적산선원, 완도 상황산에 법화원, 제주도에 법화사를 세우면서 천태종 사찰을 중흥시켜 나갔던 장보고였다. 그리고 절강성 천태산에 주청사를 본찰로 두고 천해진 주변인 강진의 백련사, 무위사, 장흥의 보림사 등에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였던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삼국유사>에는 장보고의 딸 납비문제와 장보고 피살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데, 장보고의 딸 납비 문제와 피살경위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비하여 더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즉, 신라 신문왕이 왕이 되기 위해 장보고의 도움을 청하였고 그 댓가로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염장(閻長)이 장보고를 살해하고 그 상으로 아간(阿干)의 벼슬을 받았다는 것은 이 사료에만 나타나는 중요한 기록이다.
이 외에도 일본 사료인 엔닌 스님의 <입당구법순례행기> <속일본후기> 두 사료에는 공통적으로 장보고의 무역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장보고가 활동했던 주무대인 청해진은 지금은 완도에 속하지만 그때 장보고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강진의 옛지명인 탐진현의 하나의 섬이었다. 청해진은 당나라(618-907)와 관련있는 유적으로 오월(908-978)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도자기 산업이 전래되어 남송대(1127-1279)에 절정을 이룬 고려청자가 있었다. 거기에는 장보고의 역할이 어떤 형태로든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절강성 일대와 영파, 양주, 소흥, 자계는 월요청자의 고향이기도 했는데, 828년 청해진은 강진 땅 탐진현으로 그해 12월 김대렴 대사가 당나라 대사로 갔다가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 그 때 청해진 대사 장보고 선단의 신세를 입었다는 내용도 있다.
9세기경 신라승들이 절강성, 강소성, 산동성을 오가며 장보고 대사의 선단을 이용하였고, 실천교리로써 법화경에 크게 의존하며 안전한 항해와 재(財)와 부(貨)를 빌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 우리 강진과 인근지역에 차와 불교, 청자를 가져다 준 장보고의 구체적인 활동(무역)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중국 사료와 일본 문헌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반역의 무리로 몰리는 바람에 거의 없어지고 지워진 역사가 되었다. 우리 지역이 낳은 역사적인 걸출한 인물 장보고 청해진 대사의 활동무대였던 적산법화원을 곧 보게 된다는 생각에 기대와 흥분이 꺼질 줄을 몰랐다.
인천공항 버스에서니 위해시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도 싶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1시간 내의 짧은 비행으로 위해시에 도착하면서 너무나 가까운 중국과 한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현지가이드와 우리 고장 출신 박감사가 나와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버스로 위해시로 들어가기 전에 중간지점에 잇는 성호전자 공장을 잠깐 들렸다. 중국 땅에 와서 기업을 하면서 1만 5천평의 공장부지와 1천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성호전자는 2020년에 매출 5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전자부품과 필름 등 첨단 전자산업체로 삼성과 LG에 납품하고 있다는 회사 소개와 현장 견학을 공장장이 직접 안내했다.
다음 날, 숙소에서 조식을 마치고 서둘러 적산법화원이 있는 석도로 출발했다. 남쪽으로 1시간 30여분 정도 내려가면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영웅이며 삼국의 해상권을 장악했던 해상왕 장보고의 근거지였던 적산법화원이 눈 앞에 그려진다. 절강성 일대를 55년간 통치하였던 고구려 유미 이정기(이정기:732~781) 일가를 토벌하기 위해 당나라 정부가 무령군을 조직하였을 때 장보고는 고향 후배 정년과 같이 중국 절강성 서주를 건너가 토벌군의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공을 세워서 무령군 중소장이 되었다.
그 후 신라에 귀국하여 828년 청해진에 군사기지를 설치하였고, 한중일의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삼각무역을 통한 부를 축적하였다. 자국민인 신라인들을 보호하고 중국, 일본 정부와 신뢰를 쌓으면서 산동성 석도에 적산법화원, 일본에 적산선원, 완도 상황산에 법화원, 제주도에 법화사를 세우면서 천태종 사찰을 중훙시켜 나갔다.
산동성 영성시 석도 적산법화원을 도착했다는 가이드 안내에 따라 버스를 내려서 전동차로 갈아타고 적산 대명신이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동으로 만든 좌상을 보았다. 적산의 신으로 추앙을 받고있는 적산대명신의 모습이었다. 중국 지방정부에서 최근에 만든 동 좌상인데 이곳 역시도 중국화된 왜곡된 역사를 새로 쓴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는 힘있는 자의 편에 쓰여진다는 논리는 여기서도 확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아무튼 나라는 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법화원에 늘어섰다. 장보고 시대의 법화원과는 장소가 동일하지는 않고 최근에 만들어진 장보고 적산법화원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주불이 석가이고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이 있는 삼세불로 대웅보전에 자리하고 있다. 강진 백년사의 대웅보전과 같은 삼존불이다. 그 외에도 뒤편으로는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스쳐 지나면서 재촉을 다시 한다. 11시에 관음보살 분수쇼가 예정되어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법화원을 나와서 숲길을 따라 관음보살 분수쇼를 한다는 곳으로 바삐 발길을 재촉하였다. 낮은 재를 넘어서니 분수쇼가 막 시작을 알리는 장중한 음악이 나오면서 분수의 물줄기가 뿜어 나온다. 뒤편으로 통해서 앞 광장으로 나오니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 들었다. 웅장한 청동관음상은 3층으로 된 좌상으로 동자불과 협시보살들이 각 층을 이루고 있으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매우 천천히 돌며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음악에 따라 높게, 혹은 낮게, 때로는 곡선으로 춤을 추듯이 물을 뿜어댔는데, 이따금 안개와 불을 뿜어대기도 해서 아주 볼만한 쇼였다.
우리 강진 남미륵사에서도 이와 같은 분수쇼를 도입한다면 전국적인 볼거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남미륵사 법흥 주지스님도 이와 같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 했으나 부지가 없어 불사를 못하고 있다는 말에 안타까움은 더해졌다. 신앙을 달리하고 있는 나에게도 충분한 감동을 주는 관음보살 분수쇼였다. 광장 앞에서 기념촬영과 동영상들을 찍어서 기념한 후 장보고 장군 동상이 있는 기념관으로 향하였다.
기념관은 아담한 3층 건물로 되어 있었으며 장보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림과 유물로 전시하여 방문자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그림은 장보고와 정년이 고향을 떠나 중국땅으로 가는 장면과 신라의 자객 염장이 장보고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마지막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었다.
3층의 기념관을 나와서 마당에 장엄하게 서있는 장보고 장군의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는 장보고 장군 동상은 건물과 마당에 비해 엄청 커 보였다. 장보고 장군을 크게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려오는 길에 뒤쪽 산마루 능선을 가리키며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된다. 산의 형세가 장보고 장군이 누워있는 듯한 모습이란다. 참으로 신기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 산세를 보니 적산대명신은 장보고 장군이 분명하다. 장보고 장군은 그때나 지금이나 적산포와 적사법화원을 누워서 내려다보며 여지껏 지키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장보고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우리 일행들은 다음 목적지인 항주를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