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선장은 황파(荒波) 속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다.” “뛰어난 선장은 바다의 파도와 기상이 악화된다고 항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재철의 역발상은 고난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제시한다. 고난과 역경에 대한 김재철의 독특한 관점, 즉 ‘고난관(苦難觀)’과 ‘역경관(逆境觀)’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이는 50여 년의 사업 인생 중 어려움 속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룩한 개인적인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더 나아가 개인적 체험을 넘어서 더 깊은 철학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는 어려움 가운데서 버릴 만한 것이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의 선산 경험에 의하면 좋은 배나 새 배만 지휘한 선장은 배를 움직일 때 편안하기는 하지만 어선의 성능이나 특성을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 낡은 배나 성능이 떨어진 배를 몰아본 선장은 어선의 갖가지 기능에 해박해질 뿐만 아니라 어떤 배라도 잘 몰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편안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김재철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좋은 배나 새 배보다는 오래된 배를 타면, 전반적인 수리나 감가상각 처리 등 많은 것을 단시일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는 결국 인생과 사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편안하게 느슨하게 사는 방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고생을 하더라도 밀도 있는 경험에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이왕 우리가 무언가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진하게 경험해야만 한다. 이런 면에서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경험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고난이나 역경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만 있다면 크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낡은 배에서도 얼마든지 유익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역경에 대한 김재철의 독특한 생각은 사람은 어깨의 짐이 무거울수록 성장하는 법이라는 그의 인생관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는 사람은 기계와 달라 기계는 쓸수록 닳지만 사람은 업그레이드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람의 두뇌와 손발은 사용할수록 지력이 강화되고 숙련도가 높아진다. 사람들이 피해야 한다고 하는 고난의 시간들도 얼마든지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결국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고난 뒤에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반드시 큰 어장이 형성된다.”
김재철은 바다 경험을 통해서 폭풍우 이후를 늘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한다. 또한 사업 성장의 원동력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철처히 준비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공모선 동산호 건조나 참치 선망선 사업 진출 등은 업계가 불황에 빠져 모두 수성하는 데 골몰할 때 이루어진 공격 경영의 대표 사례들이다. 그는 자주 “동원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할 때마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끝에 성장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태풍이 온다고 만사가 안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유익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기도 한다. “폭풍은 뿌리를 깊게 하고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속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 속설은 경험으로 증명되곤 한다. 고기가 한참 잡히지 않더라도 큰 폭풍우가 지나가면 바다가 한번 뒤집어져서 어황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폭풍우는 당할 때는 힘들지만 좋은 결과를 남기기도 한다. 훗날 그가 기업을 경영하면서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면 구성원들에게 두 가지를 늘 당부했다. 하나는 항상 매사를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볼 것, 다른 하나는 어려움 이후에 오는 큰 기회를 잡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햐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경영의 본질 중 하나는 위기에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어려울 때일수록 더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것이 기업경영이다”라고 말한다.
현장에 모든 답이 있다
“낚시 끝을 주시해야 한다. 항상 예민하게 봐야 한다. 현물을 보고 현상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 작은 문제든 큰 문제든 해답은 반드시 현장에 있다.”
사라지는 많은 원양업체 사이에서 김재철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 정통하고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현장중심주의는 단순한 구호나 주장 혹은 이론이 아니다.
그는 현장의 바닥까지 속속들이 알고 진두지휘한다. 임직원들에게 “문제와 해결책은 현장에 다 있다. 신발이 닳도록 현장과 공장을 더 많이 찾아야 하고 봐야 하고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에 가면 해답을 볼 수 있다는 김재철의 주장은 사내에서 일명 ‘치마이론’으로 부르기도 한다. 치마 위에서는 속을 볼 수 없지만 치마 밑에서는 속을 훤하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직책이 높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장의 개선과 혁신을 현장 직원들이 더 환희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의지가 강한 리더라면 현장을 자주 찾아가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밑(현장)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치마이론’의 핵심이다.
그는 ‘치마이론’을 자연계의 법칙과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김재철은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곳, 즉 최고봉이 추운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임직원들에게 묻곤 한다. 그리고 “지표면의 복사열과 멀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모든 사회현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의견과 움직임은 가장 아래에서 활발히 움직인다. 밑으로 갈수록 개체수도 많아지고 움직임이 더욱 활기차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면 정확한 문제 인식과 진단, 처방을 내리는데 실패한다.
‘치마이론’이 리더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장 사람들은 문제를 꿰뚫고 있는데 상사가 모르면 부하들에게 휘둘리게 마련이다. 따라서 리더는 실력이 있어야 하고 이를 갖추기 위해 현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부하의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고 있지 못하면 끌려다니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리더라 해도 기대하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
2009년 1월, 창원공장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런 어록을 남겼다.
“식품회사는 화장실과 쓰레기장의 위생이 중요하다. 공장의 끝을 보면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되고 안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필 수 있다.”
그는 공장의 끝을 어떻게 확인할까? 한번은 그가 사전 통보 없이 물류센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다음에 마지막으로 반품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김이 제법 있었는데 이 가운데 한 박스를 차에 싣고 올라갔다. 담당자에게는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회장이 현장을 순시하는 동안 자리를 비웠던 책임자는 반품장에 직접 들렀다는 이야기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관계자는 며칠 후에 “김이 맛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물류센터의 끝단에 있는 반품장은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관계자는 적지않게 놀랐다고 한다. 그는 바로 정용세(전 동원팜스 사장)인데 이후에 그의 행동은 크게 변화된다.
“그때부터 영업본부장이 되어서 어느 사업장을 방문하든지 저 또한 반품장이나 제품 창고를 먼저 가서 상품의 관리 상태를 점검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래 직원들이 더 많이 긴장하게 되고 반품율이 현저하게 개건되는 실적을 낳에 되었습니다. 본부장 재임기간 6년간 매출은 41퍼센트로 늘었는데 반품율은 0.8퍼센트에서 0.4퍼센트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김재철은 큰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담장 직원들을 나무라지도 않았다. 현장을 바라보는 습관을 어떻게 들이는지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교육을 시킨 것이다. 책임자 한 사람이 실천에 옮기면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변화되겠는가! 이는 김재철이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교육을 시킴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현장제일주의를 신조로 여기는 사람이다. 필자는 인터뷰 중에도 그가 이따금 급하게 확인할 일이 있어서 임직원들에게 전화하는 것을 볼 때가 있었다. 담당자가 현장 일을 하는 중이면 “일 다 마무리한 다음에 연락을 주면 된다”하고 전화를 끊는다. 내 일을 앞세우기보다는 현장 업무를 보는 사람의 동선을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기계는 밑창을 보고 사무실은 화장실을 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상을 파악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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