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44회)
작천면 토마리 이마마을
정복림(83) 할머니
이마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정복림할머니는 한동댁으로 불린다. 이마마을에서 태어나 시집갔다 다시 친정동네로 와 살고 있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다. 한동네로 다시 왔다는 뜻에서 한동댁인것이다.
정할머니는 18살에 병영 25살 총각한테 시집갔다.
“그 시대에는 일본시대라 가시나들 놔두면 일본놈들이 잡아 가분다고 해서 보내 버렸다요.”
4남 2녀 장남에게 시집갔을 때 시댁 살림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병중으로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조차 병중에 있었다.
“병풍 뒤에 시어머니가 아파 누워있더만, 시집가던 날 가마가 동네 앞에서 가다가 멈추었는데·······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갑자기 난리가 났는가 가마가 가다 막혀부렀어요.”
정할머니는 병풍 뒤에 누워 있던 시어머니를 시집간 날부터 수발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시어머니는 몇 달을 더 살다가 정할머니가 죽을 떠먹이던 중 무릎에서 돌아가셨다.
“뭣도 모른 마음이라 안무서웠재, 지금 생각하면 무섭겄다는 생각이 든당게.”
“2살 된 막내 동생이 있더만, 그 동생을 나랑 동갑인 저그 누나가 순전히 젖을 맡겨놓고 살았더라고.”
시집도 안간 누나의 젖을 빨고 살던 2살 된 시동생은 누나가 시집가자 정할머니한테 달라 들며 젖을 달라고 보챘다.
“나한테만 자꾸 달라든디, 19살 밖에 안됐는디 달아뵈게 줄것이요? 떼어놓으면 저녁 내내울고, 요쪽에 오줌싸놓고 저쪽에 오줌싸놓고, 다른 일은 해도 젖은 못 맡기겄더라고.”
어린 시동생이 ‘성수, 성수’하며 따라다니면서 젖을 달라고 보채지만 19살 큰 애기가 젖을 물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쪽으로 달음질치면 성수, 하고 따라오고, 저쪽으로 달음질치면 성수 하고 또 따라오고, 어린 것이 울며불며 따라온디 괴로워 혼났제, 어린맘에 요일이 무신일이다냐 싶고말여.“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은 징용을 피해 한참을 피해 다녔다. 남편이 보이지 않자 어느 날 병영 주재소에서 순사가 나와서 무조건 따라오라고 했다.
“아직에 밥 묵고 있응께 장화신은 사람들이 오더만······· 어디다 놔뒀냐고 대잡대, 근디 뭘 알아야 말을 허든지 말든지 허지, 어디로 내빼불고 없는디말여, 끈으로 묶어서 나를 잡아가 버리대, 어린 것이 통이 컸는가 따라갔지, 그냥 하루내 놔두더니 해가 저문께 가라고 하더라고.”
희로애락을 초월한 듯한 정할머니의 표정. 이처럼 자신의 일을 너무도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여유는 어디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삶조차 관조할 수 있는 마음이 평온한 표정에 그대로 묻어나 있다. 징용을 피해 어디론가 내뺐다는 남편이 가끔 밤에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정할머니는 대뜸 소리 내어 웃는다.
“아, 그건 사실이죠. 허허.”
남편은 근처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어쩌다 한번씩 밤에만 들렸다 가곤 하는 생활을 몇 개월간 하다가 해방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정할머니는 시집에서 1년도 안 살고 시댁식구들을 데리고 친정동네로 이사 왔다. 물론 친정에서 오라한일도 없고 반기지도 않았지만 시댁에서보다는 낳은 생활을 할 수 있을듯 싶었기 때문이다.
“아고, 친정이이라면 서럭서럭해, 친정으로 온께 친정 오만가지 일은 다 하고 살았재,”
친정어머니는 건너 동네까지 호랭이 할머니라고 소문날 정도로 사나웠기에 어머니여도 속에 있는 말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고 하는 정할머니는 친정동네로 와서는 친정부모님이 누워 돌아가실 때가지 뒷바라지를 했다. 원래 약체질인 남편도 15년간을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다 결국 식도암으로 59세에 돌아가셨다. 친정부모님이 모두 90이 넘게 사신 장수집안이어서 그런지 정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깨끗한 피부와 아직도 또렷한 총기가 넘쳐흐른다. 4남3녀를 두었으며 장남 임근철(49)씨는 병영에서 관광버스를 운행한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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