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잡초를 태우면서 경작을 준비하고 출항을 앞두고 녹을 벗기며 준비하듯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준비하는 개선의 노력과 주, 월, 분기별로 사항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재철은 젊은 날 2~3일을 꼬박 배를 몰아야 육지에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조업을 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할 수 없는 곳에서 작업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글로 배운 것이 아니다. 선상생활은 그에게 철두철미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었다. 오랫동안 김재철과 일해온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김재철식 경영을 ‘경영학의 교과서’라고 부른다. 이처럼 그는 정통 방식의 경영을 해왔는데 꼼꼼히 챙기는 면에서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의 경영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 그는 “믿고 놓아두는 것은 방치이며 자만이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영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내버려두면 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태해지기 쉽다. 아이를 키울 때도, 부하를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챙긴다는 것은 확인하는 기능도 있지만 긴장감을 불어넣는 기능도 있다. 그는 세상살이가 수월하지 않음을 알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준비, 준비 또 준비’를 강조한다. “기업경영은 위기에 대처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바닥에서 하나하나 쌓듯이 인생을 만들어오며 크고 작은 위기들을 수없이 만났고, 업계 사람들이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것을 숱하게 보았다.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 위에 경영이 이루어져ㅑ 한다고 생각한다. 고객을 이해나는 일에서부터 직원들을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젊은 날 배를 타고 적도를 통과할 때면 적도제를 지내곤 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처럼 취중에 본심이 나온다. 우는 사람도 있고 싸우는 사람도 있고 잠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선원들을 잘 이끌기 위해서 모든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곤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심중을 읽는 일은 리더에게 중요하다.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듯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김재철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에 대해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바다에서 어렵게 생활했기 때문에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었어요. 대학 나와서 맨바닥에서부터 뱃일을 시작한 터라 늘 내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과 같아서 되겠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어요. 무엇인가 확실히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움직이게 한 추진력이 되었지요.”
김재철은 보상과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한다. 그 자신도 돈에만 초점을 맞추고 뛰어왔다면 오래전에 지치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자신이 귀하다고 여기는 가치에 의미를 두고 추구하는 존재이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는 인생관, 세계관, 역사관, 가치관, 직무관, 직업관, 행복관 등이 모두 한 몫을 담당한다. 그래서 사내에서 책읽기를 권장하고, 강좌를 통해서 건강한 관점을 임직원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질책은 좋은 약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칭찬과 격려는 리더십의 필수 요소다. 이런 면에서 김재철의 리더십은 세상의 방식과는 좀 차이가 난다. 그는 대단히 ‘절제된 칭찬과 격려’를 보낸다. 자식이든 부하든 그로부터 “수고했다”는 말을 한 번 듣는 것을 대단한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작은 실수나 실책에 대해서 질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재철과 일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야단맞거나 질책 받은 일화를 들려주곤 한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지만 당시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야단을 치지 않으려 하는데 잘 안 될 때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저에게 욱하는 성미가 있나봅니다. 언성을 높이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이따금씩 그렇게 하게 되네요.”
이것은 그가 매사에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2006년도 해태유업(현재 동원F＆B의 유가공사업부)을 인수하고 난 이듬해 김재철이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회장의 방문 소식에 동원 출신의 직원들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그냥 잠시 들러서 격려하는 자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꼼꼼히 챙기고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해태유업 출신의 직원들은 단순한 격려 차원의 방문으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약간 들뜬 분위기가 있었다. 공장을 순찰하기 전에 김재철이 사무실에서 사업 현황을 보고 받는데 예상대로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대로 담을 하지 못한 직원들이 심한 질책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해태 출신의 직원들은 악수와 격려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회장의 호통이 회의실 바깥까지 들려오자 도열해 있던 직원들은 긴장 속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당시 보고 현장에 참석했던 김대신(전 해태유업 경영지원실장)은 “자신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분들이 많았다”라고 말한다.
김재철이 작은 일이라도 지적하고 꾸짖는 일은 젊은 날의 선상 경험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의 삶에는 늘 ‘정확’이란 단어가 있다. 정확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여긴다. 그래서 정확하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직원을 가르쳐서 정확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질책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칭찬과 질책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질책에 무게중심이 더 실릴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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