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편의 불교소설을 쓰기 위해 참으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만큼 불교를 소재로 다룬다는 것이 솔직히 어려웠습니다. 직접적 경험이 없이, 상상력 정도로 쓸 수 있는 영역이 더욱 아니었습니다.
십계란 말은 불교에서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10가지 경지를 말합니다. 미계(迷界)의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아수라계, 인간계, 천상계가 있고, 오계(悟界)의 세계인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법능이란 젊은 남자와 여강이란 젊은 여자를 두 축으로, 한 사람은 전통 불교미술을 고집하는 것에 반해 한 사람은 특이하고 돌발적인 불교미술을 고집하면서 갈등을 겪게 됩니다.
법능은 그림만 그릴 수 있는 화실이 없다 보니 여강의 오라버니이자 흑염소 농장을 경영하는 박격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여강과 함께 멧돼지 사냥에 동참하면서 뜻밖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인간과 짐승간의 관계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박격포의 처인 회진댁이 흑염소농장을 자주 방문하던 외지인과 불륜을 갖게 되고, 그것을 의심한 박격포는 사냥총을 쏘며 자백을 강요합니다. 회진댁은 남편의 충격적인 행동에 친정집으로 도망치고 장인은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때 오라버니 박격포를 구속시켜 감방살이를 하게 하느니 차라리 정신병원에 있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회진댁측에서 오게 됩니다. 여강은 오라버니의 앞날을 위해 흔쾌히 공모하고 모친과 회진댁이 도장을 찍게 하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킵니다.
박격포는 타잔이란 별명처럼 평소 흑염소를 키우며 멧돼지 사냥을 즐기는 자유 분망한 사람이어서 답답한 정신병원 생활을 못견뎌냅니다. 타잔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그 충격에 여강은 흑염소 농장을 떠납니다.
한편, 법능은 주문받은 넉 점의 탱화를 주문자에게 전달 한 후 반년 동안 사찰순례를 다니다가 문득 한 여자가 천연동굴 용혈암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싶어 찾아갔더니 뜻밖에도 그녀는 여강이었습니다. 그녀는 용혈암의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닥나무 재료를 석회와 섞어 일일이 다닥다닥 붙이고 있었습니다. 닥나무는 한지의 재료여서 그것이 벽면에 붙어지면 그림을 그리기가 쉽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그녀가 개발한 기막힌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나 그 작업은 만만치 않아서 넉 달 동안 진행하고 있었고, 몹시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법능은 먹을 것을 챙겨주며 도와주었습니다. 한동안 함께 머무르며 도와준 후 떠났는데 3개월 후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겠다는 말에 깜짝 놀란 법능은 그녀가 머무르던 산 속 외딴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고 그 곁에는 한 통의 편지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내가 부처가 되었다 해도 지옥의 마음을 움직이면 지옥이 되고, 지옥에 있다 해도 부처의 마음을 움직이면 부처가 되는 것이어서 십계를 그려본 것입니다.
그녀는 이런 내용과 함께 반드시 자신을 짐승의 밥이 되도록 산 속에 버려달라고 부탁도 덧붙여 있었습니다. 사냥을 즐겨하던 오라버니의 자살에 충격을 받고 짐승의 밥이 되도록 유언을 남긴 것이었습니다.
법능은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업고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널찍한 바위 위에 눕혀놓습니다. 짐승들이 와서 먹을 수 있도록 해놓고 용혈암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십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지옥계는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알몸인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그 숫자만큼 많은 뱀들이 사람의 몸뚱이를 휘감고 있었고, 마지막 단계인 불계는 연꽃 위에 부처가 앉아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실감 있게 그려져 있는 십계의 훌륭한 벽화를 보고 법능은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십계를 완성한 후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법능은 십계를 보고 나서 참다운 화사가 되는 길이야말로 머리를 깎고 다시 입산하는 길만이 최선임을 알고 산 속의 절을 향해 떠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젊은 남녀 두 주인공은 필가와 함께 젊은 날을 방황했던 진짜 모델입니다. 필자는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예술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이의 고뇌와 번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기에는 어려운 어휘가 많아 독자 여러분께서 불편하실 것을 생각하니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연재가 끝나면 즉시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며 연재가 되는 동안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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