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창사 이후 10년 동안 배당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그가 개인수입으로 학생들을 돕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체계적으로 장학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재를 내놓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렇게 해서 개인 주식을 재단에 기부해 동원육영재단을 만들게 된다.
무엇을 하든지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하는 법이 없었다. 동원육영재단의 활동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자신다운 방법과 소신에 따라 돈을 사용하기 원했다. 그는 최초로 첨단산업 분야를 연구하는 국내 우수 학생들을 지원하기 시작하는데, 1980년대 초반에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1982년부터 전자공학, 유전공학을 비롯한 첨단산업 분야 전공 대학생을 특수 장학생으로 선발해 지원한다. 장학재단도 통념에 따라 관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시대의 필요에 발맞춰 나온 창의적인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1982년의 ‘특수 장학생 모집’ 공고는 어떻게든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키워내야겠다는 그의 깊은 뜻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동원산업이 조극 발전의 원동력이 될 참된 인재의 육성을 위해 설립한 동원육영재단에서는 아래와 같은 첨단산업 분야를 전공하여 장차 산업 한국을 이끌어갈 특수 장학생을 모집합니다. 전자공학(전자, 전기, 기계, 금속, 수학), 생명공학(생물학, 화학, 의학, 농화학), 기타 첨단산업 부문(재료공학, 기타). 대학에서 첨단산업 전공 중인 학생으로서 성적이 특히 우수하나 학비 부담이 어려운 학생.”
장학사업도 남들처럼 운영하지 않았다. 그는 학기말마다 장학생들의 학점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꼭 논문을 쓰게 했고, 이를 직접 읽기까지 했다.
몇 해 전에는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중년의 어느 학자가 불쑥 회장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2006년 제16회 호암상 의학상 수상을 위해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펜실베니나 대학 의과대 석좌교수인 최용원이었다. “제가 동원육영재단 장학생입니다. 늦게라도 인사를 꼭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방문했습니다.” 최 교수에게 방문 계기를 물었던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김재철 회장의 장학사업에 뒤늦게나마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장학생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제 평생 지속된 자존감의 원천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고국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KBS 뉴스에서 김 회장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현듯 이분이 내놓은 장학금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그분에게 ‘보고(refort)’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돈이 사용된 지 20년이 지나서야 보고를 드리게 된 셈입니다. ‘존경받을 만한 분(A very honorable man)’입니다.”
이따금 비행기 안에서도 김재철은 누군가 와서 “회장님, 제가 동원육영재단 장학생 ｏｏｏ입니다”라고 인사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고 한다. 김영섭(부경대 총장), 방하남(전 노동부 장관), 이준보(전 대구고검장), 이지환(카이스트 교수), 정연훈(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장) 등이 초기에 장학금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그는 이런 소감을 밝힌다.
“광야에 씨앗을 뿌리는 마음이었는데, 인사를 받을 때면 여기저기서 꽃이 만개하는 것 같아 참으로 보람을 느낍니다.”
읽기와 쓰기가 생각하는 인재를 만든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지혜가 있다.” 김재철은 젊은 날 선상생활을 할 때부터 시간을 내서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그는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이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가 평생 독서를 중요한 습관 가운데 하나로 삼은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사모아에서 외국인들을 만나서 대화할 때면 30분 이상을 지속하기가 힘들었어요. 마땅한 화제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부터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는데, 시모노세키에서 5달러 용돈을 받았을 때 헌책방으로 달려가 책을 샀습니다. 금서도 그때 많이 읽었습니다. 『마오쩌둥 전집』『레닌 전기』등을 읽었습니다. 몇 백 권을 읽었어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멜빌의 『백경』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더 생생하게 바다 상황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사업하면서 시야와 안목이 조금은 넓고 깊어졌다면, 그것은 다양한 독서에서 나왔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의 책 읽기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각성과 그것을 극복해야겠다는 소박한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이처럼 그의 삶은 부족함을 채워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들로 가득 차 있다. 향상심이야마로 그가 삶과 사업에서 치열하게 추구해왔던 핵심 가치이자 지향점이었다. “난 사업가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더 나아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늘 그로 하여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전진하게 했다. 이를 실현하는 중요한 방법이자 도구가 틈만 나면 글을 읽는 것이었다.
비서였던 송재권(동원그룹 HR담당 상무이사)은 해외 출장을 다닐 때 그가 목격한 경험담을 털어놓는데 이것은 김재철에게 독서란 생활 그 자체였음을 말해준다.
“해외 출장은 격무의 연속입니다. 빡빡한 방문 일정, 미팅, 회의, 공식 만찬 등으로 밤늦게 숙소에 돌아오면 모두 파김치가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회장님 숙소를 정리하고 나면 ‘이제 그만 가서 쉬라’는 말씀이 계시고 그걸로 하루 일과가 끝나지요. 저는 습관적으로 회장님 방 탁자에 항상 펴져 있는 책이 어디까지 넘어가 책 귀퉁이가 접혀 있는지를 확인하곤 했어요. 놀라운 일은 아침 일찍 회장님 방에 들어가보면 항상 전날 밤보다 수십 페이지 이상이 더 넘어가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 반성도 되고, 나같이 젊은 사람도 피곤해서 잠자기 바쁜데 어떻게 저렇게 하실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가 독서를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독서를 하면서 샘물이 솟아나듯이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읽기 자체가 선물하는 담백하고 순수한 즐거움도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바다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쓰다
그는 읽기가 생각하는 힘을 키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읽기 때문에 생각하게 된다는 말인데, 문학비평가인 리처드는 “책은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기계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책 읽기는 마음을 확장시키는 주요한 기술이다. 책을 통해서 우리는 시야와 안목을 확장하게 되는데 김재철은 이렇게 말한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들추어보다가 내가 언제 이런 책들을 읽었을까 싶을 정도로 루소, 레닌, 헤밍웨이 등의 책들을 젊은 시절 밑줄을 그으며 읽었더군요. 이런 책 읽기가 사업을 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거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얻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독서에 대한 확신도 인상적이지만 쓰기에 대한 신념도 확고하다. “김찬삼 씨가 쓴 세계 여행기를 읽다 보면 나도 잘 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로마나 파리, 아프리카 주요 항구들을 돌아다니면서 참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장 시절부터 《부산일보》《국제신보》외에 당시에 유일한 월간지였던 『사상계』에 바다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나라를 일으켜 세울 희망이 바다에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다만 바다에 나가보니 정말 바다는 신이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 할 정도로 좋았고, 우리처럼 국토가 비좁은 나라의 장래가 바다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서 바다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기고하게 되었어요.”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