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송하훈 장편소설 십계6회

그런데 대우 스님은 그것도 부족해 콘크리트 건물의 만불전과 한옥 건물의 관음전까지 지어놓고 만불전은 천정화와 벽화불사를 하고자 했고, 관음전은 단청불사를 하고자 했던 거였다. 만불전은 김교각 지장왕보살이 2층 높이의 크기로 중앙에 모셔져 있고, 3면에 어른 주먹 크기의 황금부처 2만 3천불이 층층으로 모셔진 법당이었다. 그리고 관음전은 용무늬가 새겨진 37톤 돌기둥 15개를 세워 108평 2층 높이로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내부는 중앙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대세지보살의 삼신불(三身佛)을 중심으로 33관세음보살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모두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로 조성된 것들이었다. 얼마나 큰 주목나무였기에 나무 한 토막으로 관세음보살상을 만들고, 거기에 장타원형의 광배(光背)까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육중한 좌대에 비해 종이처럼 얇은 광배는 실금 하나 보이지 않아 완벽하고 화려한 관세음보살상이었다.

나는 다섯 사람의 화공들과 함께 만불전 천정화를 그리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야만 했다. 특히 철골 구조물 임대료가 하루에 수십 만 원씩 했기 때문에 작업을 쉬지 않고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건물은 앞으로 김교각 지장왕보살 2만 3천불의 부처님을 모시게 됩니다. 그가 누굽니까? 신라 왕자로 태어나서 스님이 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명승산천을 두루 다니다가 구화산에 정착하여 불법을 펴신 분이지요. 김교각 지장왕보살로 추앙받아 중국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로 구화산 지장도량이 되었는데, 내가 그 곳 중국풍 그대로 만불전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붕 위에 황금빛 부처님이 앉아 계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대우 스님은 일을 시작하기 전 만불전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니라 다를까 대우 스님의 말대로 지붕 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고 놀랄 일이었지만 대웅전은 한국풍, 만불전은 중국풍, 관음전은 인도풍이어서 특이한 불사 방법을 고집하고 있었다.

만불전 봉안 점안식 및 낙성 대법회 역시 거창했다. 세 분의 초청법사가 손잡이 쇠종을 치면서 염불을 시작했는데, 이윽고 항마진언(降魔眞言)의 염불로 접어들자 중앙에 좌정하고 있던 대우 스님이 팥알을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팥알이 법당 바닥에 흩어지자 법당 가득 모여든 신도들이 그것을 줍기 위해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팥알에 복이 묻어 있다는 사실에 신도들은 복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서였다.

목욕진언(沐浴眞言)으로 넘어가자 대우스님이 2만 3천불을 향해 향로수(香爐水)를 뿌렸고, 시수진언(施水眞言)을 할 때는 시주(施主)들을 향해 향로수를 솔가지에 묻혀

뿌리기 시작했다.

아금경설보엄좌 봉언일체관음전 원멸진로망상심 속원해탈보리좌 옴 가마라 승하 사바하 옴 가마라 승하 사바하 옴 가마라 승하 사바하

드디어 점안의식이 끝나자 증명법사가 벌떡 일어나 신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김교각 지장 왕보살님을 비롯해서 2만 3천불을 모두 눈 뜨게 하였습니다. 아울러 3신(三身) · 사지(四智) · 5안(五眼) · 6통(六通) · 10호(十號)의 법신사리를 다 넣어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2만 3천의 부처님을 새롭게 모셔지게 되었는데, 그 모든 부처님께 혼을 불어넣어 드린 것입니다. 염불을 할 때 들어보셨겠지만 육신의 눈, 하늘의 눈, 지혜의 눈, 진리의 눈, 깨달음의 눈이 열리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의 다섯 가지 눈이 성취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청정하고 원만하기를 발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눈으로 삼라만상을 단번에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중생들의 앞날을 훤히 볼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중생의 마음이 번뇌에 있는지 지혜에 있는지를 볼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 중생들 마음이 얽매임과 풀림 가운데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중생의 지난날을 아는 숙명통(宿命通), 중생들의 번뇌가 아직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는 누진통(漏盡通) 등 육진통(六盡通)을 모든 불상에 스며들게 하였습니다.”

신도들이 모두 엎드려 절을 올리고 또 올리기를 반복했다. 만불전이 좁다보니 마당에서조차 절을 올리는 신도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관음전 낙성 대법회는 한 달 뒤 더욱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그날 산문은 아침 일찍부터 찾아오는 사람들로 몹시 북적거렸다. 관음전 앞마당은 신도회, 거사림회, 사암연합회, 그리고 대한불교 종정협의회 의장과 타 종단 총무원장, 여러 사찰의 주지가 보낸 화환만도 이십여 개 남짓 되었다.

그런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두 개의 돌계단과 양쪽 벽은 온갖 형형색색의 꽃으로 치장되었는데, 그 계단 중앙에는 천만송이 장미꽃이 빼곡히 들어차 화려함을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또 관음전과 그 주변은 물론 도량 여기저기에 수 백 개의 노란 국화꽃 화분이 놓여져 있었다.

“나무아미타아불!”

나무아미타불의 명호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종정협의회 의장을 선두로 열 두 분의 종정 스님들 황금 빛 가사를 입고 줄을 지어 나타났고, 신도들이 그 뒤를 따랐다.

관음전 계단 앞에는 오색 테이프가 걸쳐 있었다. 열 두 분의 종정들과 국회의원과 군수, 군의회의장이 제각기 황금빛 가위를 들고 테이프 커팅을 마치고나서 관음전 안으로 들어가 좌정했다.

삼신불과 33관세음보살 앞 제단에는 떡과 과일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고, 향불은 끊임없이 타올랐다.

타 종단 종정 스님들과 주요 인사들이 삼신불 앞에 좌정하자 신도들이 일제히 삼신불을 향해 합장을 하며 앉았다. 신도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낙성 대법회의 시작을 알리자 불교 TV에서 나온 긴 카메라가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장면을 담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삼신불과 33관세음보살의 모습까지 한 분 한 분 담고 있었다. 삼귀의가 끝나고 육법공양을 알리자 어린 꼬마 두 사람이 연꽃을 받쳐 들고 나타났고, 그 뒤를 이어 공양주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삼신불 앞으로 다가갔다. 양쪽으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보살들이 서 있다가 공양을 올린 후 제각기 법당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종정협의회장의 법문이 끝난 뒤로 타 종단 종정 스님의 축사는 1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종파의 종정스님들이 대거 참석했기 때문인데, 세수 아흔 일곱의 노구를 이끌고 온 종정스님이 있는가 하면 강원도 먼 곳에서 온 종정스님이 있었기 때문에 한 마디씩 축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삼신불과 33관세음보살이 모셔진 마지막 끝자리에는 주장자를 손에 쥔 대우 스님의 좌상도 함께 모셔져 있었다. 퇴적암으로 만든 그 좌상은 나무를 깎아 만든 것처럼 보였다.

“여그 모셔진 대사(大師)는 누구시까잉. 참말로 생불(生佛)이구마.”

전라도가 고향이라는 김 보살이 관음전 낙성 법회가 끝나자 밖으로 나가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대우 스님이야 생불이지 않구······.”

함께 온 윤 보살이 대꾸를 했다. 아닌게 아니라 호랑이등에 앉아 있는 대우 스님의 좌상은 원효(元曉)나 사명대사(四溟大師)가 환생한 모습 같았다. 참으로 살아생전 이 보다 더 귀하고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었다. 환갑의 나이도 되기 전, 궁궐처럼 웅장한 관음전 한 귀퉁이에 생불의 모습으로 턱 버티고 앉아 있는데 이 세상 어느 누가 부러울 것인가.

게다가 10여 년 전, 세계미륵대종 총본산 재단법인 남미륵사의 주지이면서 종파의 가장 큰 어른인 종정으로 추대되어 취임식까지 화려하게 치루지 않았던가. 불교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대종사로서의 대관식과 종정 추대패는 물론 성불증서까지 받아든 후, 비로소 주장자를 치켜들었으니 대대손손 가문의 영광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드디어 법상(法床)에 앉아 수 백여 명도 넘는 신도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법문을 시작했으니 스님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앉은 것이었다.

“하긴 그 조계종 총무원장의 말이 맞긴 맞아. 천문학적인 돈을 썼으니까 대작불사를 할 수 있었겠지.”

“천문학적인 돈이라뇨?”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36m 높이의 아미타 황동좌불을 모신 대우 스님이 아닌가. 게다가 2만 3천불을 모신 만불전과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크다는 관음전을 지었으니 당연히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 않았겠느냐구.”

그녀는 남미륵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88미터 42수 청동아미타대불(靑銅阿彌陀大佛)을 세우겠다고 그러던 걸요. 무게만도 700톤이 나간다나요. 중국 강소성 무석시의 향부사에 모셔진 청동석가모니불상과 똑같은 높이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놀라울 일이군. 더구나 한 개인이 그 큰 불사를 해내고 있으니······. 국내 최고의 석불인 논산의 관촉사 은진미륵(恩津彌勒)도 높이가 18.12 미터밖에 되지 않는데 88미터라니. 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겠군.”

그녀는 거듭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는 말을 강조했다.

“천문학적인 돈, 돈 하니까 묻는 말인데 대체 그 많은 돈은 어디서 생겼기에 어마어마한 불사를 해왔답니까?”

나는 안달이 난 사람처럼 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농촌 시골의 늙은 할머니 보살들의 호주머니로는 어림도 없는 불사였기 때문에 누구나 궁금하게 여기는 일이었다. 관광객들이 매일 대형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보시함에 넣는 푼돈으로는 절 운영비나 가까스로 채울 것이었다.

“아니, 남미륵사 만불전 천정화를 그리기 위해 달포 동안 일을 했다면서 그것도 모르다니······. 내가 말을 해줘야겠군. 그러니까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재일교포 철강회사 회장이 그 많은 돈을 건네주는 걸로 알고 있어. 그리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도쿄를 비롯해서 일본에 1천 명이나 되는 후원회까지 만들어졌다고 그러더군.”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게 아닙니까? 아무리 돈 많은 재벌이라고 해도 무작정 불사하겠다고 물 쓰듯 돈을 쓰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딨겠어요?”

나는 그녀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 역시 몹시 궁금한 일이었다. 제주도에서부터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찰의 불사에 동참해 보았지만 남미륵사처럼 개인의 힘으로 어마어마한 불사를 이룬 절은 여태껏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터였다.

“······그러니까 20여 전 일인데, 일본 재일교포 철강회사 회장 부인과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이 갑자기 쓰러지더니 일어날 줄을 몰랐다더군.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을 찾아다니며 정밀검진을 해봐도 병명조차 나타나지 않았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겠지. 온갖 장기를 이식까지 해대는 현대의학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부인과 아들이 한 달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권유로 회장이란 분이 직접 대우 스님을 찾아가게 되었다더군. 그리하여 대우 스님과 철강회사 회장은 마주앉게 되었는데, 대우 스님이 그 이유를 밝혀내고야 말았다더군. 그러니까 한 달 전에 철강회사 회장 부친이 돌아가셨다나 봐. 그래서 풍수에 밝은 지관을 모셔다가 고향인 제주도 선산에 모셨는데, 그 시신이 없어졌다고 대우 스님은 진단을 한 게지. 철강회사 회장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우 스님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더군. 더구나 유리관을 특별 제작해서 입관 한 다음 하관을 하였는데, 한 달 만에 시신이 없어졌다? 법능 화사는 그 말을 믿겠어? 다음 날, 당장 회장 부친의 봉분을 일꾼들이 파헤치기 시작했다더군. 한 달 전에 하관했던 유리관이 나타나자 마른 수건으로 흙을 벗겨내고 잠시 그 안을 들여다보았지 않았겠어?”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잠시 말을 멈췄다.

“유리관이었다면 시신이 있는지 없어졌는지 금방 알 수 있었겠네요?”

내가 물었다.

“그런데 시신은 있었다더군. 더구나 시신은 꿈지럭꿈지럭 팔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더군. 얼마나 놀랐겠어? 철강회사 회장은 ‘오매, 우리 아버님이 살아계셨네!’ 하고 비명을 질렀고, 일꾼들이 당장 유리관을 벗겨내려고 애를 썼지만 특별히 제작한 유리관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더군.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 일본에서 그 유리관을 제작했던 기술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어. 그런데······.”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두 눈썹이 잠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막상 유리관을 벗겨내자 팔뚝만큼 큰 구렁이 세 마리가 시신을 먹어치우고 있었는데,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만을 남겨놓고 있었다더군. 그 구렁이의 꿈틀거림으로 인해 마치 시신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게지. 철강회사 회장이 어찌나 놀랐는지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대우 스님은 당장 이장(移葬)을 해야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며 그날로 남은 시신의 잔해를 다른 곳에 모셨다더군. 그날 밤, 회장의 꿈에 눈처럼 흰 머리카락을 어깻죽지까지 늘어뜨린 백발도사가 나타나더니 ‘내일 진시(辰時)에는 네 부인이 일어날 것이고, 모레 미시(未時)에는 네 자식이 일어날 것이니라’ 하는 것이었어. 당장 종합병원으로 달려가서 지켜보았더니 그 시각이 되자마자 부인과 자식이 차례로 일어났다더군. 한 달 이상 병상에서 누워만 지냈던 터라 힘이 빠져 움직이기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것 외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멀쩡하게 말이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군요.”

나는 그녀의 말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뒤로 회장은 천문학적인 돈을 대우 스님에게 건네주었고, 그 돈으로 불사를 시작한 것이 오늘 날에 이르렀다는 것이지. 대형버스 고급 캠핑카도 그 철강회사 회장이 선물로 주었다지 아마? 운전사까지 딸려서 말이지.”

“남미륵사에 그 대형버스는 보이지 않던데요?”

“대우 스님은 부산 앞 바다에서 바로 팔아버렸다더군. 불사가 더 급하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구렁이가 유리관 속으로 들어 왔을까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일이라서······.”

가장 궁금하게 생각되는 그 점을 묻자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대우 스님도 그게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그러더군. 그리고 유리관을 열었을 때에도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고 하더라구.”

“정말 땅 속의 일은 알 수가 없군요.”

나는 그제야 비로소 대우 스님이 대작불사를 왜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럼, 환희란 화사도 잘 알겠네? 그녀가 관음전 단청을 했다고 들었거든. 만불전 천정화를 그렸다면 모를 리가 없겠지.”

“아니, 어떻게 환희란 사람을 아세요?”

“그녀는 비구니 출신이 아닌가?”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불화를 그리니까 가까운 사이였겠군.”

“아니오. 남미륵사에서 어쩌다 만나게 되었지요.”

“비구니로 있을 때에도 만나본 적이 있었지만 변해도 많이 변했더군. 사실 환희 화사는 서울의 여자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이지. 그런데 입산해서 부처님 제자로 잘 다듬어지는가 했더니 하산을 하였고, 하산을 하였으나 그래도 장삼이사처럼 살지 않고 부처님 그늘에서 오롯이 살고 있질 않는가.”

“한 번 부처님을 알아버린 사람은 부처님 곁을 떠나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럴까? 결국 환희 화사나 법능 화사나 나나 세 사람 모두 부처님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군.”

“여러 절을 다니다 보면 절의 분위기를 잊지 못해 몇 달씩 살다가 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속세에 살면서도 새벽이면 온 산에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 목탁소리를 못 잊어 그렇겠지요.”

“그러겠지.”

나는 문득 환희 스님을 떠올렸다.

환희 화사는 한때 동학사(東鶴寺) 강원(講院)에서 공부를 했던 학인(學人)이었고, 그 후로 대흥사 말사인 옥련사(玉蓮寺)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수도하는 청정한 비구니였다.

그녀는 학인의 신분이면서도 언젠가 내게 자못 심각한 어조로,

“갈수록 출가자가 줄어진다는 것은 우리 불교계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절마다 중들로 넘쳐나야만 하는데 이제는 노장 스님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보니 어떻게 불교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중이 없는 절은 절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생각해보는 말씀인데요, 출가자의 나이를 제한시킬 것이 아니라 대폭 늘려야만 해요. 젊어서 출가하는 것도 좋지만 산전수전 겪은 나이 든 분들이 더 불심이 좋을 수도 있다구요.”

하고 말하는 것이어서 뭔가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여겼는데 남미륵사에서 뜻밖에도 다시 환희 스님을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만불전 천정화를 그리기 시작한 며칠 후 열 명쯤 되는 화공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관음전 단청불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관음전의 벽화는 건물을 지을 때부터 아예 안팎을 돌벽화로 했기 때문에 단청불사에만 매달리고 있었는데, 한꺼번에 열 명의 화공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붓질을 쉬지 않고 해대고 있었다. 대우 스님은 단청불사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그 많은 화공들을 불러 모은 것이라고 자랑삼아 얘기를 했지만, 문제는 누가 그렇게 동원능력이 있었을까 싶어 알아보았더니 뜻밖에도 여자였고, 뜻밖에도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화공들은 팀장 격인 그녀의 지시에 따라 옹이나 송진 구멍을 인두로 지져서 거친 부분을 제거하는 바탕손질을 하는 사람, 바탕면에 딱 맞는 초안도를 작성하는 사람, 출초된 문양의 윤곽선을 따라 대바늘로 구멍을 뚫는 사람, 바탕에 초안도를 정확히 맞추고 백분이 담겨져 있는 뭉치로 타분 하는 사람, 타분한 문양에 의해 본격적으로 채색하는 사람 등으로 나뉘어져 일사불란하게 단청 실연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직접 채색을 하며 그 화공들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라도 많으면 모르겠거니와 여자로써 그 많은 인원을 이끈다는 것은 수화사(首畵師)로서 대단한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아니, 환희 스님이 아닌가요?”

이틀째 되던 날, 점심 공양을 하기 위해 요사채로 가던 중 그녀와 딱 마주쳤는데, 그러나 이미 그녀는 스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긴 머리를 돌돌 감아 묶은 모습이었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스님이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어머나? 법능 선생님!”

그녀 역시 나를 보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왜 스님의 모습이 아니군요.”

“환속했어요.”

“언제 말입니까?”

“3년 전에.”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곳이 절이 아니던가. 그러나 환희 스님이 설마 하산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였다. 강원에 있을 때에도 그랬고, 이윽고 그 곳을 졸업한 후 조용한 암자에서 수도를 닦을 때에도 얼마나 기품 있고 당당한 모습이었던가. 어쩌다 뭔가 눈망울 속에 한 점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은 쓸쓸한 눈빛 말고는 나무랄 데 없는 스님이었다. 그런데 승복을 벗은 몸이었고, 승복은 벗었으나 불화를 그리는 화사의 몸이었으니 놀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