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재(경영)론은 그의 인재(육성) 철학이다.” 그가 이런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은 인간에 대힌 풍부한 체험과 성찰에 바탕을 둔다. 그가 신입사원에게 들려준 다음 이야기에서 그의 믿음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몇 십 년을 두고 경험한 바로는 예술적 재능은 타고나야 하지만 그 외에는 사람의 능력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직 누가 더 노력하느냐에 따라 능력의 우열이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누가 더 인내하고 노력하느냐, 누가 더 창조적인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이지 출신 성분이나 학력은 크게 영향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직장에서의 승부란 결코 시험성적이나 번뜩이는 순발력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행동하고 꾸즌히 노력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철학과 가치의 중요성
어떤 방법으로 사내의 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까?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연수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특징은 구체적인 방법론을 뒷받침하는 ‘철학’을 무척 중시한다는 점이다. 어떤 조직이 지원을 아끼지 않더라도 스스로 인재가 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그 노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그는 내부 구성원들의 직무관과 직업관 그리고 인생관을 반듯하게 세우기 위해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제가 경영학 분야에서 앞선 사람은 아닐지라도 철학에서만큼은 확고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인재 만들기 방법으로는 듣기, 읽기, 쓰기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는데, 그의 독특한 인재 육성법의 비밀이 이 세 가지에 포함되어 있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두 인물 간의 대화를 보면 철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덴마크 왕의 외아들로 태어난 햄릿은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상황에 휘둘리는 인물이다. 반면 그와 함께 비텐베르크에서 공부했던 호레이쇼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견지하는 인물이다. 그런 호레이쇼를 부러워한 나머지 햄릿은 친구에에 이렇게 고백한다.
“호레이쇼, 내 말을 듣고 있나? 내 스스로 판단하여 물건을 선택한다든가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된 뒤로, 자네를 진정한 벗으로 정했다네, 실상 허다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네는 조금도 마음의 동요가 없어. 운명의 고난과 영광을 똑같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왜, 햄릿은 호레이쇼를 선택하는가? 자신은 운명의 변덕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못난 사람이지만 친구는 흐트러짐이 없이 자기 자신을 오롯이 지킬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햄릿에게 친구 호레이쇼는 이상적인 사람 혹은 이상이었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이런 말을 더한다.
“감정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운명의 손끝이 희롱거리는 대로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는 피리, 그런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야. 격정의 노예가 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필요하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하리. 자네는 꼭 그런 친구야.”
모든 사람은 이상 혹은 이상적인 상태를 마음속에 갖고 있는데. 이는 그 사람의 철학적 관점을 말한다. 이상은 어떤 사람의 일반적 세계관과 인생관에서 나온 한 가지 파생체이다. 어떤 사람의 선택이 즉흥적인 반응이 아니라 숙고 끝에 내린 것이라면 이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직업관의 총합인 철학을 반영한다. 크고 작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과 운명을 형성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하나의 철학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마다 가진 철락의 옳고 그름이나 순도라는 면에서는 차이가 난다.
초심, 뒷심, 열심 위에 삶과 직업을 구축
일터에서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일할 것인가? 직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고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자기 계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 모든 것은 개개인의 철학과 그 반영물인 이상(적인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그는 젊은 사원들과 중간 관리자들에게 ‘세 가지 심(心), 즉 초심, 뒷심 그리고 열심 위에 자신의 직업과 인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당신의 삶과 직업을 강점 위에 구축하라”고 말한다.
● 초심 : 작심삼일하지 말고 처음 시작하던 마음을 계속해서 잊지 말아야 한다.
● 뒷심 : 어떤 상황에서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 열심 : 해야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이는 김재철의 인생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핵심적인 생활철학이라 할 수 있다. 폭풍우 속에서도 좌표를 명확히 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선장처럼 우리 역시 인생 항로의 좌표를 명확히 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선장처럼 우리 역시 인생 항로의 좌표를 명확히 하고 하루하루,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가 초심, 뒷심, 열심이다. 이처럼 기업에서도 철학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업의 생명은 ‘영속성’에 있고, 이를 위해서 반드시 구성원 모두가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가치를 문건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이를 체계화할 수 있어야 하며, 세 번째는 행동 수칙 등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현장에서 실천해야 한다.
동원정신과 행동강령
그가 강조하는 ‘세 가지 심’은 앞에서 이미 설명했던 동원정신(열성, 도전, 창조)과 행동강령(원칙을 철저히, 작은 것도 소중히, 새로운 것을 과감히)과 결합해 조직에게는 성장을, 개인에게는 성공을 가져다 준다. 이 모든 노력들의 최종적인 결과물은 계속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회 필요기업’이 되는 일이다. 그가 임직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가치는 궁극적으로 그런 기업이 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에 해당한다.
동원 필로소피와 6가지 실천지침
“성과는 철학이란 가치와 실천법의 조합에서 탄생한다.” 그는 철학을 현장과 현업에서 제대로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지침과 방법을 6가지로 정리해서 제시하고 있다. ‘동원 필로소피 6가지 실천지침’에도 그의 삶의 체험과 지혜,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 열정적 행동 : 우리 모두 열정적으로 행동합시다
2) 분명한 목적 :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목적을 분명히 알고 합시다
3) 소통 협조 : 서로 소통하며 협조합시다
4) 성과 계량화 : 일의 성과는 항상 계량화하고 손익을 스스로 점검해 봅시다
5) 기쁘고 즐겁게 : 일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삽시다
6) 사회필요기업 : 우리가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국가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합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이 사내 인재 육성을 위한 소프트웨어라면 하드웨어는 강연을 받을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동원리더스아카데미’는 2007년 6월에 문을 열었다. 배산임수의 완만한 경사지 위에 우뚝 선 연수원은 아래에는 널찍한 과수원과 평야가 펼쳐져 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위치도 좋지만 연수원에는 창업자의 정신과 꼼꼼함이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본관 입구에 그 어떤 연수원에서도 볼 수 없는 인도양과 태평양과 같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수조가 펼쳐져 있다. 수조의 바닥이 검정색 타일이고 주변은 초록색 잔디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잠시 대양을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수조 위에는 동원그룹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동원 31호, 공모선 동산호, 그리고 다목적 참치 선망선 장보고호의 모형이 떠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교육생들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 모형을 통해 기업의 뿌리를 알고 초심을 생각하게 된다.
이곳을 방문한 송승용 작가는 이런 후기를 남겼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모형 선박이었습니다. 동원그룹의 모태인 원양어선의 모습이었는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회사의 창업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넓은 세상을 품고 꿈을 키우는 기업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도전 정신이 느껴지곤 합니다. 깔끔한 분수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모형 원양어선들을 보면서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습니다. 찬찬히 건물 내부를 보다 보니 아주 인상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김재철). 당신은 세계 지도를 거꾸로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면서 큰 꿈을 키우자는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도전정신이 담겨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서 김재철은 자신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전한다. 매년 신입사원들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한 해 두 해 지나서 “내가 한 이야기 가운데 무엇이 기억나는가? 라고 물으면, 머뭇거리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신입직원들과 꼭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결과로 정리한 몇 개의 문장들은 그의 삶의 핵심 철학을 말해주고 있었다.” “철저하게 하라.” “확실하게 하라.” “끝까지 하라.” 그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성공하려면 무언가 남달라야 한다”는 점과 “남들이 뭐라 하든 집념을 갖고 밀어 붙인다”는 자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다른 사람과 김재철을 뚜렷하게 차이나게 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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