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양이나 들고 가시지요.”
등 뒤에서 정겨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환희 스님이 어제처럼 또 그렇게 서있었다.
“아닙니다. 그냥 가겠습니다.”
솔직히 그녀를 마주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시 나를 붙들었다.
“잠깐만요.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라뇨?”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어떤 부탁을 해도 반드시 들어주겠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백꽃 그림 한 점 그려주세요.”
어젯밤 그려준 달마가 맘에 들자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이곳이 동백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었을까.
“왜 하필 그것을?”
“글쎄요.”
“알겠습니다. 그려드리지요.”
그러나 나는 그 뒤로 동백꽃을 그리지 못했다. 아무리 그려보려 해도 잘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찢고 또 그렸다가 찢기를 반복했던 세월이었지만 언젠간 동박새가 찾아들 만큼 잘 그린 그림을 반드시 그리고 말겠다고 늘 되새기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제3장 멧돼지 사냥
“이,겨,라!”
“이,겨,라!”
국사봉 농장에서 달포 쯤 보내던 그날 아침, 갑자기 밖에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시골 아낙네 셋이 쪼그리고 앉아 손뼉까지 쳐대며 열심히 응원가를 외치고 있었다. 약초나 값나가는 난(蘭)이라도 캘 요량으로 호미와 망태 하나씩을 들고 이 높은 산중까지 올라온 아낙네들이었다.
무슨 영문인 줄 몰라 잠자코 아낙네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을 살펴보니 제법 덩치가 큰 노루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노루를 좇는 사람은 타잔이었는데, 그는 팬티 하나만 달랑 차고 맨발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좇고 있었다. 그러나 노루는 날 잡아봐라 하면서 뛰었고, 노루 좇는 사람은 산 험한 줄을 모른다는 말처럼 필사적으로 좇고 있었다. 둘은 국사봉 중턱을 빙빙 돌면서 잡느냐, 잡히느냐 숨 막히는 대결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잠깐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졌고, 이내 또 모습을 드러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었지만 간격은 여간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참말로 보통 양반이 아니네.”
“큼매 말이여. 추운디 계곡에서 냉수마찰을 하는가 싶등마는 갑자기 노루가 나타난께 저러코롬 쫒고 있당께.”
“맨 손으로 노루 잡겠다고 맨발로 뛰어댕기는 사람은 머리털 나고 첨 구경하네.”
아낙네들은 산 속을 뒤질 생각은 까마득 잊은 채 둘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루가 국사봉 주위를 세 바퀴 쯤 돌며 도망치고 있을 때 아침 해가 어느덧 높게 떠올랐다. 그런데도 노루는 잡히지 않고 잘도 도망을 치다가 그만 그루터기만 남은 다랑논으로 달아났다. 타잔이 그쪽으로 몰았는지 아니면 노루가 활로를 찾겠다고 제 발로 들어갔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노루는 바투바투 이어진 다랑논 두어 개를 훌쩍 뛰어 넘으며 도망쳤다.
그런데 다랑논은 수렁논처럼 질컥거렸던지 갑자기 노루의 속도가 느려졌다. 타잔 역시 발목이 푹푹 빠지는데도 거침없이 노루의 뒤를 쫓아가자 위기를 느낀 노루가 더 이상 도망을 가지 않고 홱 돌아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도망 다니느라 이미 입가에는 거품이 허옇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노루는 발악을 하듯 뿔을 세우고 타잔에게 달려들었다. 궁지에 몰리면 대드는 법이고 악이 나면 뒷다리를 문다던가. 그러나 노루는 제대로 뿔을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앞발 하나가 풀썩 꺾기면서 아예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재빠르게 노루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 세 번……. 노루의 머리통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도 노루가 쉽게 죽지 않자 다음 순간 타잔은 한 마리 사냥개처럼 노루의 멱을 야무지게 물었다. 노루는 마지막으로 ‘음매’하고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안타깝게도 타잔은 관세음보살이 아니었다. 노루는 두 발을 허공에 내지르며 발버둥을 치다가 이내 시나브로 늘어졌다. 족히 4시간은 좋이 걸린 혈투였다.
논두렁에 벌렁 드러누워 한참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던 타잔이 매흙질된 채로 벌떡 일어나더니 노루를 불끈 보듬고 다랑논 밖으로 나왔다.
“대단하요! 대단해! 맨손으로 노루를 다 잡었당께…….”
땀으로 범벅이 된 타잔에게 아낙네들과 함께 힘껏 박수를 쳐대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씩 웃어보였다.
“산에 있는 모든 짐승은 다 내 것이라요.”
임무를 완수하고 난 특공대원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사냥을 떠나기로 한 날 오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계곡으로 내려가서 몸을 씻고 돌아왔을 때 한 대의 지프가 요란스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농장 입구에 나타났다. 얼룩무늬 사냥복을 입은 엽사 두 사람이었는데, 한 사람은 빨간 모자를 썼고 또 한 사람은 검은 베레모를 쓴 모습이었다.
“항렬이 나보다 더 높으시네.”
가장 연장자인 황대장이라고 하는 빨간 모자의 사내가 내 이름을 듣고 나더니 단번에 항렬을 알아맞혔다. 어제 아침 내 방에 들른 타잔이 함께 사냥을 떠나자며 권유했을 때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 황대장이란 사람과 후배 한 사람이 함께 올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들이었다.
“그래도 저보다는 연세가 많으시니까 말씀을 낮춰서 하십시오.”
내가 공손하게 말하자 황대장이 정색을 했다.
“우리 성씨가 상놈이 아닌 바에야 그럴 수야 없지요.”
“형님, 세상은 이렇게 좁다니까요. 산중에서 종씨를 다 만나구만여. 허허허!”
타잔이 크게 웃고 나서 금방 잡은 노루를 불끈 들어 올리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나저나 타잔 형님은 알아줘야 혀!”
베레모 사내가 타잔의 등짝을 때려가며 감탄을 했다.
“어야, 동생! 내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뭣이겠는가? 노루라는 게 말이여, 산꼭대기에 사는 노루는 일반 노루하고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쓰네. 생각해 보소. 맹감 같은 것을 따먹는 노루하고 낮은데서 솔잎이나 밭곡식을 먹는 노루하고 어디 같을 수가 있겠능가? 뛰는 각도가 틀리니까 말이여.”
“사냥을 떠나기 전에 형님 덕택으로다가 노루 피 좀 맛보게 생겼구만요.”
베레모 사내가 두 손을 걷어붙이더니 송곳처럼 날카롭게 생긴 칼로 노루의 목을 따내자 뜨뜻하면서도 붉은 피가 솰솰 흘러나왔다.
“자, 한 모금씩 마셔 보십시다.”
베레모 사내가 유리컵에 담아서 황대장과 타잔에게 노루피를 건네준 후 내게도 마실 것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차마 마실 수가 없었다. 처음 노루를 잡았을 때 피칠갑이 된 녀석의 머리통을 보아버렸기 때문에 도저히 마실 수가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베레모 사내가 이 좋은 것을 마다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도치램프로 털을 말끔히 제거했다. 그리고 연탄불살개 여러 개를 지펴 노루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오슈. 노루 고기는 부드러워서 그만이라니까.”
황대장이 나를 불렀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피칠갑이 된 채 죽어가면서 눈을 껌벅거리던 노루의 그 측은한 눈망울까지 보아버린 터여서 고기 한 점 역시 도저히 한 목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 때 박수를 쳐대며 응원하던 아낙네들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우리도 조깐 얻어묵으라고 왔구만이라.”
“잘 왔소. 원래 노루 뼈는 세 번 우려먹고도 또 우려서
사위를 준다요. 오늘 차분히 뼈를 고와서 잡숫고 가시오.”
베레모 사내가 노루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쟁반에 담아 내밀었다.
“참말로 살다 봉께 노루 고기를 다 얻어묵게 생겼네.”
“그랑께 성님, 내가 뭐락 합디여? 오늘 약초 캐러 가자고 안 합디여?”
“다 동생 덕이네.”
아낙네들이 뜻밖의 별미를 맛본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사냥에는 여기 계신 화가 선생도 가실 것잉께 그리 알드라고요. 그리고…….”
타잔이 나를 가리키며 캠핑카 보리호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큰 도움을 받을 거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타잔의 안내로 그들은 캠핑카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 차는 산 속의 항공모함이나 다름이 없네 그랴.”
황대장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캠핑카에 침대와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 여간 감동하는 눈치였다.
“자, 이제 슬슬 떠나보더라구. 여강이도 가려면 이 차에 타든지 아니면 황대장 차에 타든지······,”
보리호에 먹을 것을 잔뜩 싣고도 부족해 됫병짜리 플라스틱 소주병을 두 박스나 더 실은 타잔이 그녀를 재촉했다. 그리고 내가 앞장서서 보리호를 몰고 나가자 황대장과 베레모 사내는 지프에 개를 실은 소형 차량을 매달고 뒤를 따랐다.
“법능 선생! 사나이로 태어나서 사냥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랍니다.”
타잔이 방향을 제시하는 대로 운전을 하고 있는 내게 그는 또 사냥 예찬을 늘어놓았다. 사실 사냥을 싫어할 사 내가 누가 있을까. 사내라면 누구나 엽총을 등에 맨 채 지프를 타고 산야를 휘젓고 싶은 충동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어디 사냥뿐이겠는가. 등산도 그렇고 낚시도 그렇고 클라이밍이나 산악자동차 등 자연과 더불어 즐기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마찬가질 터였다. 그러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이 콩밭에 있기 마련이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한 발 내딛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줄 알면서도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곧 예술가의 마음이 아닌가.
“여기가 적당할 것 같구만.”
이윽고 지방도로를 4시간 가량 달린 후 산 타잔이 차를 세웠는데, 기껏 일곱 채 밖에 되지 않은 마을이어서 깊은 산 속에 내던져진 집들처럼 느껴졌다. 다 쓰러져가는 빈 집 만도 두 채나 되는 오지마을인데도 그나마 사방이 둥근 연꽃 모양으로 산세를 이루고 있어서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는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부터 사냥을 하자는 것이었다. 홀로 깊은 산 속에서 쌀과 된장만으로 몇 달이고 버텨본 적은 있었지만 낯선 사람들과 합류해 잠자리를 구해보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인연일 터였다.
“누구시오?”
대부분 녹슨 양철지붕이었지만 유독 새로 지은 듯한 콘크리트 슬라브 집으로 무작정 들어가 주인을 부르자 노인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영감님, 우리는요 이곳으로 사냥을 하러 온 사람들인데 하룻밤 재워주실랍니까?.”
타잔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밖이 추우니 어서 들어오시구랴.”
노인은 할멈과 단 둘이 살고 있었지만 집 안 내부는 대식구가 살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저녁을 알아서 먹겠다고 해도 한사코 할멈은 호박과 밀가루를 버무려 만든 호박죽을 푸짐하게 내놓았다.
타잔은 준비해온 쇠고기를 노인 앞에 내놓으며 함께 먹자고 했다. 저녁을 마치고나자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멧돼지 사냥을 오신 포수양반들 아니요?”
“그렇습니다만······.”
타잔이 대답했다.
“내가 이래봬도 왕년에 사냥을 좀 했던 사람이오. 비록 몰이꾼에 불과했지만서두······. 내 나이가 올해로 일흔 여덟인디 말이지. 평생 살아옴시로 괴기를 처음 먹어본 것은 멧돼지 괴기였소. 괴기로는 멧돼지 괴기가 젤이제.”
그런데 노인은 장대한 기골하며 옹이가 매듭처럼 박힌 손바닥이 도무지 팔순을 바라보는 늙은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혈색이 좋고 길게 늘어진 어깨가 어린이 다리처럼 굵은 것으로 보아 근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노인이 두어 차례 밭은기침을 하고나더니 귀가 솔깃해지는 소식을 전했다.
“포수양반들! 꼭 미리 알아보고 온 것 같소. 어제 모처럼 뒷산엘 올라갔는디 멧돼지 발자국을 발견한 기여. 아마 200킬로가 넘지 않을까 싶을 만큼 큰 것이었소.”
노인의 말에 타잔 일행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를 질렀다.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제보를 해주는 사람이 생겼으니 사냥은 절반이나 한 셈이었다.
“어째서 우리가 민가를 찾았는지 인자 알겠지요? 바로 정보요, 정보!”
타잔은 내 얼굴 가까이 자신을 얼굴을 갖다 대며 웃어보였다.
“나는 발자국만 보아도 멧돼지가 수컷인지 암컷인지, 그리고 얼마나 큰지도 알 수 있어. 그러니 내일 당장 시작을 해보는 기여.”
“고맙구만이라, 어르신. 그러면 낼 아침 일찍 출발을 해봅시다.”
타잔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고마워했는데, 노인의 말대로라면 이번 사냥은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이곳은 멧돼지가 많은 편이여. 그러나 멧돼지는 본능적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당장 서두르는 편이 나을 기라.”
타잔을 비롯해서 황대장과 베레모 사내는 노인의 말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어르신. 제가 시방까지 여러 마리의 멧돼지를 잡아보면서 말입니다. 멧돼지처럼 독한 동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 번은 멧돼지를 잡아놓고 보니까 창자가 하나도 없드라구요. 총알이 복부를 관통하자 창자가 삐져나왔는데, 아 글쎄 그 창자가 나올 때마다 제 발에 밟혀 끊어지는데도 도망을 가드라구요.”
황대장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
“잘 아시겠소마는 총 맞은 멧돼지는 끝까지 좇아가서 죽여야만 된단 말이여.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민가에까지 와서 말썽을 부리니까.”
하고 손으로 멧돼지가 날뛰는 시늉을 해보였다.
나는 무심코 그들의 얘기를 귓등으로 흘러들으며 방안 여기저기에 눈길을 돌려보고 있었는데, 웬 신문기사를 오려서 벽에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누렇게 탈색된 그 신문기사는 <산돼지를 꼬박 일곱 날 쫓았지. 독허제 독혀>라는 제목이었다. 나는 무심코 눈알을 들이대고 읽어 내려갔다. 날짜를 보니 2006년 12월 22일자 한겨레신문 기사였다.
······전에 산전벌이 할 땐데, 하루는 자고 나서 본께, 콩밭이 쑥대밭이 돼 부럿어. 그 때는 안식구하고 자슥들은 모두 산 아래에 있고 나만 산 우에 올라가 살 때여. 그래 가마이 본께 돼지란 놈이 밭에 와서 콩이고 감자고 다 해치고 묵는다 말이여. 우리 식구한티는 피 같은 곡슥인디 말이여. 고놈이 와서 묵어 붕께 얼매나 속이 탔것어. 그래 고놈을 때리잡아 동네사람들하고 묵었지. 옛날에 긔기 먹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요새는 묵지 말라고도 허는 모양이던디, 그때사 긔기가 젤이라. 그기 첨이라. 긔기 맛을 본 것도 첨이고 짐승 잡는 것도 첨이여. 그래 그 때부터 산짐승을 잡으러 댕깃지. 동네 사람들끼리 허는 것이니께 나가 전문적인 포수는 아녀. 그래도 우리는 산을 잘 알고 있은께. 간혹 전문 포수들이 산에 와도 우리들이 안 데불고 가믄 그것들은 봉사나 마찬가지여.
······ 겨울에 돼지를 잡으로 나갔는디 꼬박 일곱 날을 쫓아가서 잡았제. 그 놈도 독허고 그 한겨울에 칠일이나 따라간 나도 독허고 그래. 산에 눈이 있는데 그 발자국을 따라서 헤매고 다녔다 말이여. 돼지가 느려터진 것 같아도 산돼지는 얼매나 빠른지 사람들이 따라가지를 못하는디, 그 놈을 따라 일곱 날이나 따라간기여. 마을 사람 넷이서 함께 갔는디 내가 선창 던지고 후창을 세 개나 맞아도 이놈이 도망을 가는 기여. 그래 그 놈이 흘린 피를 보고 잠도 안 자고 따라가서 잡았제. 그 담이 문제여. 그 놈이 집채만 허니께 그걸 끌고 또 일곱 날이나 걸어서 집에 온기여.
······ 젊은이들은 산을 거스르지 말어. 산을 거슬러서 안되는 겨. 깔보면 안 되는 거라 말이여. 산이 가마이 있은께 요 간사스러븐 사람덜이 지가 잘난 줄 알고 산을 이길꺼라 생각하는디, 가마이 있던 산이 한번 쓱 움찔거리면 사람 같은 거는 꼼짝 헐 수가 있는가. 택도 없는 일이제. 산이 가마이 있는 거 같지만 가마이 보믄 산은 살아있는 거라 말이여. 그러이 중요한 거는 마음가짐이라 이기여. 마음을 잘 다스려야 산도 나한티 베풀어 준다 준다 이 말이여. 그라믄 또 내가 산한티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하는기여. 요새 사람들은 그저 받을라고만 허는디 그라믄 안 되는 기여. 생각혀 봐. 내가 또 줘야 산도 나헌티 또 주지. 안 그렇겠는가?
신문에 난 주인공은 바로 노인이었다. 비록 흑백사진이었지만 창을 들고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은 늠름하기까지 했다.
다음 날 아침, 노인의 집에서 시래기 국으로 아침을 해결한 일행은 본격적인 멧사냥에 나섰다. 타잔은 노인과 황대장, 베레모 사내와 함께 지프를 타고 앞장을 섰고, 나는 여강과 함께 보리호를 몰고 뒤따라갔다.
그런데 마을을 벗어나 바야흐로 험한 길이 시작되었을 때 앞에 가던 지프가 갑자기 멈췄다. 웬일인가 싶어 보리호에서 내렸더니 황대장이 산신제(山神祭)를 지내자는 것이었는데, 그 말에 타잔이 돗자리를 풀밭에 깔고 그 위에 제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배, 사과는 쟁반에 놓고 시루떡은 비닐만 벗긴 채 박스째 놓았으며 돼지머리는 빈 박스 위에 올려놓았다.
“모두 자신이 소지한 엽총을 제상 앞에 놓고 시작해보더라고.”
황대장의 말에 타잔과 베레모 사내가 뒤따라 엽총을 땅바닥에 놓았다. 그 때 여강이 사냥개들을 차량 안에서 풀어놓자 꼬리를 흔들어댔다. 입가를 날개처럼 치켜세우며 바윗덩어리라도 으깰 기세로 짖어대는 놈, 삵처럼 앞발 하나를 들고 당장 멧돼지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놈, 긴 귀를 늘어뜨린 채 혀를 빼어 물고 날카롭게 사방을 쏘아보는 놈······. 이런 사냥개 앞에서는 어떤 멧돼지도 살아남을 수 없을 성 싶었다.
“옛날 명포수들은 계곡물에서 목욕재계를 한 후에 산신제를 지냈다고 했다등마. 우리가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는 일이제마는 산신령님께 잘 보살펴 주십사 하고 인사를 드려야지 않것는가.”
황대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하고나자 타잔이 먼저 제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산신령님께 아뢰구만이라. 우리가 이곳에 와서 사냥을 하고자 하니 부디 총기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주시고, 멧돼지 콧구멍이라도 반드시 볼 수 있도록 해주옵소서. 특별히 200킬로 나간다는 멧돼지를 반드시 잡게 해 주옵소서.”
타잔이 납작하게 엎드려 두 번 절하고 뒤로 물러서자 황대장과 베레모 사내가 연이어 절을 하고나더니 돼지 콧구멍에 만 원 권 지폐를 쑤셔 넣었다. 나도 가만히 지켜보기가 쑥스러워서 만 원 짜리 한 장을 슬그머니 제상 위에 놓아두었다.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옛날 사냥꾼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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