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30년, 강진의 멋과 맛을 지켜온 갯벌탕 원조
맛의 중심부는 전라도,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음식
강진의 독특한 음식문화
강진은 맛의 고장이다. 전라도가 맛의 중앙으로 소문나 있는데 강진은 그 중심축에 있다. 남도답사 일번지로서 청자도요지, 영랑생가, 다산초당, 백련사, 무위사 등 볼거리도 많지만 먹거리로서도 단연 으뜸의 고장이다.
강진이 왜 먹거리의 고장으로 통해 왔을까. 강진이 맛의 고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름진 평야가 있고 청정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장흥에서 발원한 탐진강 물줄기는 군동평야를 거쳐 광활한 강진만의 뻘밭으로 흐른다. 강진만의 뻘밭은 아홉골의 구강포 강물이 서로 상봉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느 지역보다 독특한 해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은어, 숭어, 바지락, 낙지, 뱀장어, 재첩, 전어, 도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산물 중에 짱둥어가 있다. 모든 해산물이 제각기 맛을 자랑하고 있지만 짱둥어의 맛은 그 중에서 일품으로 친다.
개펄은 조류나 강에 의해 진흙이 쌓인 습지로써 썰물 때 드러나는 지역만을 가리켜 갯벌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짱둥어는 갯벌이 서식지이다. 바닷물이 죄 빠지고 어머니 젖가슴처럼 부드러운 진흙이 드러날 때면 짱둥어는 밖으로 나와 쏘다니기 시작한다. 이 때 이순임 여사의 낚싯대가 허공을 가르며 짱둥어를 훔쳐낸다.
뻘썰매 타고 54년, 음식경력은 30년
이순임 여사가 강진만에서 짱둥어를 잡기 시작한 것은 열네 살 때부터였다. 올해로 반세기도 넘는 오십하고도 사년이란 세월동안 바다낚시에 푹 빠져 지냈다. 그 많은 세월동안 짱둥어를 잡았기 때문에 이순임 여사만의 노하우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순임 여사에게 있어서 절대적 무기는 물론 낚시대요, 낚시 바늘이다. 그리고 한 척의 뻘썰매가 필요하다, 낚시대는 그 줄이 7m 가량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조그만 기척에도 잽싸게 도망치는 짱둥어를 잡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짱둥어가 잠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을 때 휘익, 소리와 함께 낚싯줄이 그 곁으로 다가가고 낚시 바늘이 갯벌 위에 떨어진다.
“갯벌 위에 낚시바늘이 떨어질 때 짱둥어가 있는 곳에서 2~3cm 안에 떨어져야 하지라. 그러면 백 프로 성공이지라.”
그러니까 낚싯줄이 허공을 크게 가르며 7m 밖에 있는 짱둥어 곁으로 낚시 바늘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리고 낚시줄을 잽싸게 잡아당기면 짱둥어는 낚시 바늘에 끼여 꼼짝없이 잡히고 만다.
“낚시줄을 어떻게 던지느냐가 노하우이구만이라.”
아니나 다를까 이순임 여사가 던지는 낚시 바늘은 짱둥어 바로 곁으로 정확히 떨어졌고 순간적으로 짱둥어는 포획되자마자 낚싯줄은 거두어졌다.
그렇다면 낚시 바늘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순임 여사는 일반 낚시 3개를 바느질실로 묶어 사용했다. 혹은 4개를 바느질실로 묶어 사용했는데, 3개짜리를 사용할 경우 상처가 덜 나는 반면 4개짜리는 상처가 더 생긴다고 한다.
“한 여름에는 3개짜리를 사용하지라. 아무래도 여름철에는 짱둥어에 상처가 생기면 얼른 죽기 때문이지라. 그러나 선선한 가을에는 4개짜리를 사용하구만이라. 날씨가 시원하니까 상처가 나도 얼른 안 죽은께요.”
당연히 낚시 바늘이 4개짜리는 잘 잡히고 3개짜리는 조금 약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순임 여사는 짱둥어의 생리를 잘 이용해서 3개짜리냐, 4개짜리냐를 고른다. 낚시 바늘을 살펴보니 낚시 바늘 중심부에 있는 가느다란 쇠는 자전거 바퀴살에서 구한 것으로 비록 실로 묶은 것이었지만 단단했고 튼튼했다.
“갯바람이 부는 날에는 아무래도 낚싯줄이 바람에 날리기 때문에 덜 잡을 수밖에 없지라. 그러나 날씨만 도와주면 하루에 1.000 마리는 거뜬하지라. 보통 날에 200~300마리는 보통이고요.”
짱둥어는 무슨 물고기인가
짱둥어는 망둥어과에 속한다. 서 · 남해 연안에 분포하는 물고기로써 광양만 · 해남 · 영암 · 강진만 · 순천산이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엔 장동어(長東魚)라 표기되어 있고, 전어지(佃漁志)엔 탄도어(彈塗魚)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아마도 뛰며 돌아다니는 물고기라서 그렇게 불렀을까.
가슴에 붙은 지느러미를 이용해 도약하는 짱둥어는 날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물 위를 걷기도 하는 물고기이다. 물에서는 헤엄을 잘 치지 못하지만 뻘에서는 미끄러지듯 민첩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번개 같다고나 할까.
“짱둥어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지라. 오염도를 측정할 수 있고, 일광욕을 하는 물고기여서 비린내가 없구만이라. 그리고 목을 잘라도 피가 나오지 않아서 지혈효과가 있구만이라. 5개월 반 동안 동면을 하기 때문에 잠퉁이처럼 잠을 잔다고 해서 짱둥어라고 부르는지 모르것구만이라. 재래식 항아리에 짱둥어 100마리 쯤 넣고 거기에 인삼과 당귀를 넣은 다음 졸이면 소주 댓병 정도 엑기스가 나오는디 그것을 세 차례 먹으면 일년내내 몸살이 뭣인지 모르지라.”
짱둥어 박사 이순임 여사. 짱둥어 얘기는 계속된다.
“짱둥어는 벚꽃이 필 때 동면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오구만이라. 그리고 첫서리가 내릴 때 들어가지라. 그러니까 낮 기온이 18도를 넘어야 밖으로 나오는디 짱둥어를 잡을 때는 주로 7월 하순 이후부터 10월까지구만이라.”
강진의 대표 음식이자 전설적인 별미
짱둥어는 전설적인 별미 음식이다. 강진은 한정식이 유명하지만 짱둥어 역시 유명해서 외부 사람들이 즐겨 찾곤 한다. 김선태 목포대 교수는 「강진문화답사기」에서 ‘강진의 산하는 산(山)과 수(水)가 서로 조응하여 빼어난 풍광을 연출하고 여기에 물(物)이 풍부하여 걱정이 없어 편안하니 그야말로 강진(康津)이요, 편안하고 여유로워 풍류가 또한 있으니 가히 탐진(耽津)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강진의 풍수는 여자의 하체 또는 요니 형국(女陰 形局)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평론가 김훈은 ‘강진만의 바다는 따스한 요니(女陰)처럼 육지를 파고들어 조붓하고 아늑하였다. 등 푸른 여름산맥들이 그 요니의 바다를 따라서 만의 하구로 치닫고 있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실재로 강진만의 모습은 대섬(竹島)가 있어 더욱 여성의 자궁임을 설명하고 있다. 자궁은 풍수지리적으로 해석할 때 명당에 속하는데, 그 명당에서 생산되는 물고기가 곧 짱둥어인 것이다.
다도해를 스쳐 지나온 바닷바람과 함께 바닷물이 탐진만을 흠씬 적시다가 슬그머니 썰물이 되어 빠지고 나면 청정지역의 뻘밭은 짱둥어들의 세상이 된다. 바로 그 짱둥어가 우리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전설적인 음식이 되어 오늘까지 강진의 대표적 음식으로 그 위상을 지켜내고 있다.
전설적인 음식, 짱둥어는 어떤 별미를 만들까. 먼저 탕을 말한다면 짱둥어의 살을 발라내고 머리뼈를 갈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어 펄펄 끓인다. 이 국물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강진의 매생이와 같다. 술을 많이 마신 후 속이 쓰려도 탕의 국물은 입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죽처럼 부드러우면서 독특한 향이 느껴지는 탕. 바로 갯벌탕이다. 갯벌에서 생산되는 짱둥어를 이용해 끓였기에 갯벌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치고 얼마나 자연스럽고 투박하면서 정겨운가.
전골은 20여 마리의 짱둥어를 넣고 콩나물과 고사리, 토란대, 고구마순, 무, 양파, 호박 등을 넣고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인 것을 말한다. 갯벌전골은 짱둥어가 통째로 넣어졌기 때문에 절반씩 한 입 베어 먹을 수 있는데 그 맛이 혀끝을 녹이게 한다.
구이는 6~7년 자란 짱둥어를 즉석에서 구워먹는 것을 말한다. 살이 도톰하게 찐 짱둥어를 대꼬쟁이에 낀 다음 구워먹는 방식인데 짱둥어 자체가 큰 물고기가 아니고 작기 때문에 입에서 설탕처럼 녹아내리는 맛이다.
회로도 먹을 수가 있다. 회는 머리를 잘 다진 다음 썰어서 참기름에 발라 고추 된장과 함께 깻잎에 싸서 먹는데 쫄깃쫄깃한 그 맛이 일품이다.
탕, 전골, 구이, 회 등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먹을 수 있는 짱둥어. 이제 그 음식은 강진의 대표 음식이자 전설적인 별미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게 됐다. 소설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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