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송하훈 장편소설 십계

굴뚝에서 모락모락 불 때는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않았어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암자가 보이네요.”

불과 두어 시간 내려온 것 같은데도 벌써 온 몸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간신히 암자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다 올라갔을 때 주지 스님이 각삽으로 눈을 치우고 있었다.

“천지가 눈밭인데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주지 스님이 하던 일을 멈추고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멧돼지 사냥을 따라갔다가 조난을 당했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절을 찾아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영락없이 조난자 같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대뜸 꾸중부터 해대며 혀를 끌끌 차댔다.

“전국적으로 가축이 대재앙을 당하고 있는 판에 한가롭게 사냥이나 다닐 수 있습니까?”

“대충은 짐작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심각합니까?”

“금시초문도 아닐 터인데, 참으로 당신네들 한심한 분들이군요. 온 나라가 구제역 때문에 산 짐승을 생매장하는 살처분으로 생지옥이 따로 없는데 사냥이라니.”

주지 스님은 추위에 떨면서 산을 타고 내려온 우리들의 고통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꾸중을 하다가 내가 기침을 한차례 쿨럭쿨럭 해대자 안됐던지 방으로 안내했다.

“우선 따끈한 차를 마시세요. 몸이 좀 풀릴 거외다.”

주지 스님이 직접 차를 끓여 권했는데, 몇 모금 마시자 굳었던 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나와 여강이 차를 다 마시기를 기다리던 주지 스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오죽하면 남미륵사 대우 스님을 찾아가 동물 천도제를 지내고 왔겠어요. 시방 온 나라가 난리가 아니라니까요.”

“천도재라뇨? 동물에게도 천도재라는 게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망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지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살처분 된 소, 돼지, 닭, 오리 등의 넋을 위로하는 ‘비명액사 축생 천도재를 지냈다니까요.”

사실 날마다 신문·방송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달이 넘도록 보도를 하고 있는 구제역 재앙을 모른다면 이 나라 국민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2010년 11월 28일 경북 안동시에서 그 놈의 구제역이 발발되더니 그 세력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었다. 한 축산농가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전국 6개 시·도 113곳으로 늘었고, 살처분한 가축만도 120만 마리에 육박했으며, 국고 손실액만도 1조 1,000억 원을 넘어선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다보니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적 동물보호단체인 ‘세계 영농에 대한 연민’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한국 정부의 구제역 대처방식에 대한 비난 성명을 올리기까지 했다구요. 그 단체에서는 ‘돼지에 대한 생매장 살처분은 세계동물 보호기구(OIL) 규범을 명백하게 어긴 잔인한 행위’이며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예방 백신을 접종해야 하고 살처분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고 촉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거지요.”

주지 스님은 기가 막힌 일이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천문학적인 돈을 없애기 전에 백신접종을 해버리면 될 일을 왜 하지 않고 끝내는 그 많은 가축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나도 그 점에 대해서는 몹시 궁금한 일이었다. 그런데 주지 스님의 말은 딴판이었다.

“그거야 백신접종을 하게 되면 청정국가 지위를 잃게 될까봐 그랬겠지요. 또 구제역이란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축산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 게 아닙니까.”

그러나 끝내 이명박 대통령은 백신접종을 전국일원에서 모든 축산농가가 다 할 수 있도록 조치를 내렸다고 했다. 신묘년 새해 1월은 뉴스 시간마다 구제역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으므로 나 역시 여러 번 보았었다. 읍내 음식점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려고 했을 때 곁에 놓아진 신문이나 때마침 방영되는 TV 뉴스를 보았던 것이다.

“결국 구제역 때문에 해맞이 행사 등 굵직굵직한 신년행사가 전국적으로 취소되었는가 하면, 작년 이맘 때 쯤 화천 산천어 축제장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결국 취소되는 등 구제역이 경제 재앙으로 확산되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직간접 피해는 신종플루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스님은 다시 찻물을 찻잔에 채우면서 손끝을 바르르 떨었다.

“연초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구제역과 조류인플렌자로 인해 살처분 보상금, 방역장비, 인력동원비, 백신접종비 등의 비용은 축산업이 벌어들이는 부가가치로 볼 때 2009년도 7조원의 약 15%가 구제역으로 인해 증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주지 스님이 이윽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대체 구제역이란 무엇인가요?”

내 물음에 주지 스님의 눈썹이 한껏 치켜졌다.

“그야 가축의 입과 발굽에 물집이 잡히는 전염병을 말하지요. 치사율이 5-55%에 이르기 때문에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 즉 우제류에서 발생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 동창생 한 사람이 축산공무원이어서 물어봤더니 구제역 살처분을 하는 공무원 10명 중 7명은 식욕부진, 불면증, 스트레스를 호소한다고 그래요. 살처분된 소가 죽어가면서 새끼를 낳았는데, 그 갓 태어난 송아지에 근육 이완제를 주사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하더군요. 수의사, 담당공무원, 방역관 등으로 구성되어 ‘몰이조’ ‘묶음조’ ‘투여조’ ‘운반조’로 나뉘어 일을 진행하는데, 먼저 몰이조가 소를 사육장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을 때 일부 소들은 나가지 않으려고 버틴답니다.”

“소도 저 죽을 때를 알고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들어봤습니다만······.”

“당연한 말이지요. 몰이조가 몰아내어 사육장 밖으로 내몰린 소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끈으로 머리 부분을 고정시킨 후 일렬로 세운답니다. 그런 후 수의사 2명이 죽음의 주사인 근육이완제 0.1g을 혈관에 주입하면 15초 이내에 푹 쓰러진다는 겁니다. 그런 소들을 차량으로 운반하여 매물장소로 옮겨지는데, 그 때 죽은 소의 배가 가스로 인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더군요. 그 때 낫으로 배를 찔러 가스를 빼내는데, 이미 죽은 소를 또 한 번 죽이는 꼴이 되어 몸서리가 처진답니다. 더구나 잘못 찔러가지고 내장이 터져 나오면 속엣것이 토해질 만큼 고약한 냄새와 함께 피가 솟구치는 바람에 금방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다는 거예요. 온 몸에 피칠갑을 하면서 그 작업을 한다는 것인데······. 공무를 띠고 일하는 사람이 그 지경인데 그 소를 키운 축산농가 주인의 심정은 어떻겠어요? 참혹하게 죽어가는 소를 바라보는 그 쓰라린 심정이······.”

어느 틈에 주지 스님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여 있었고, 목소리조차 축축해졌다.

“친구인 축산공무원은 그 장면을 몇 차례 겪은 뒤로 눈만 감으면 매몰 작업이 떠오르면서 트라우마(Trauma)에 시달린다고 그럽디다. 잠을 자다가 헛소리를 하곤 그런가 봐요. 친구 말로는 지옥도가 따로 없었대요. 축산 농가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 텅 비어 있고, 마을 이곳저곳에서는 대량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었으니······. 축산 부농을 꿈꾸던 마을은 한 달 사이에 공동묘지로 변해버렸다는 겁니다.”

그 때 여강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주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소나 돼지한테만 구제역이 있지 흑염소한테는 없나봐요. 제 오라버니가 흑염소를 많이 키우고 있는데, 전혀 걱정을 하지 않더라구요.”

“오라버니가 흑염소를 키웁니까?”

“흑염소를 천 마리 정도 키우고 있어요. 얼마나 짐승을 예뻐하고 좋아하는지 몰라요. 오라버니 말로는 인간은 변하지만 짐승은 한결같다고 그러더군요. 배만 부르면 주인밖에 모른대요. 죽으면서도 주인을 사모하는 눈빛이 간절하다는 게 짐승인데, 바로 그 짐승과 함께 살아보아야 짐승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짐승이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서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어도 새끼 낳아서 데리고 오는 게 흑염소라는 겁니다. 그러니 짐승이야말로 얼마나 좋은 것이냐는 거지요. 자연초를 먹이기 위해 방목하면 살이 되고 젖이 되면서 새끼까지 낳아주니 말이지요.”

“그런데 이번 구제역 발생은 흑염소한테는 없었습니다. 1월 초에 수 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해남에서 나타나는 바람에 전남 영암군산림항공관리소 소속 헬기가 조류 인플루엔자 예방을 위한 항공방제 지원을 하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양성반응을 보였답니다. 12일에는 나주와 염암 지역 오리농가 6곳이 조류 인플루엔자로 확인되자 전남지역은 모두 12곳으로 늘어나게 되었답니다. 그러자 반경 3km이내 농가를 살처분하는 것으로 결정함에 따라 이번 매몰된 닭과 오리는 270만 여 마리에 이르러 한 해 최대 재앙으로 우려하고 있답니다. 이 오리들 역시 소처럼 산 채로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밀어 넣고 흙을 포클레인이 덮어버렸는데, 꽥꽥거리며 죽어가는 오리 모습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며 사람으로서는 못할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주지 스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님 말씀 듣고 보니 보통 재앙이 아니었군요. 다행히도 오라버니 흑염소농장은 별 탈이 없었지만······.”

“그래서 남미륵사 대우 스님과 함께 동물 천도재를 지내고 온 길입니다. 남미륵사 대우 스님은 음력 3월 3일 날 천도재를 지내왔고, 9월 9일에는 영산재를 지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월 음력 3일은 기도, 18일은 지장재일(地藏齋日), 24일은 관음재일(觀音齋日)을 지켜온 스님입니다. 꽃과 음식과 과일을 넉넉하게 준비하고 재일을 잘 지키는 스님인지라 동물들을 위해 천도재를 부탁했더니 쾌히 승낙을 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구제역으로 인한 짐승들의 아비규환을 차마 모른 체 할 수 없어서······.”

주지 스님이 혀를 두어 번 차고 나서 다시 찻잔에 차를 부었다.

“그런데 남미륵사 대우 스님과는 교분이 두터우신가 봐요.”

여강이 주지 스님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대단한 스님이지요. 나는 대우 스님의 거대한 대작불사도 그렇지만 어려운 중생들을 위해 자비의 손길을 끊임없이 펼친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시는데요?”

“어버이 날이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모셔놓고 위안잔치를 해왔지요. 뿐만 아니라 연말이면 불우이웃과 독거노인을 위해 수 백가마니의 쌀과 수 천 포기의 김장김치를 나눠드린다는 겁니다. 돈이 없어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송아지 한 마리씩을 줘서 키우게 하는 등 장학사업도 펼쳐온 스님이지요. 더군다나 장학기금으로 해마다 1천만 원씩 쾌척하는 분이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 뿐만이 아니더군요. 제가 만불전 천정화를 그리기 위해 두 달 남짓 남미륵사에 일을 했는데, 나이 드신 노환자들을 많이 모시고 있더라구요. 마치 요양원이라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불화작가이시군요.”

주지 스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부끄럽습니다.”

“불심에 마음과 몸을 가탁한 화사께서 사냥을 하다니, 불벌이 무섭지도 않는가 싶군요.”

“그냥 몰이꾼으로서······.”

“몰이는 사냥이 아닌가요? 성추행이란 말도 사냥개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데, 아무려나 화사의 신분으로 사냥을 다 하다니······. 전등록(傳燈錄)에 나오는 선사들 가운데도 자신의 육신을 굶주린 짐승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분들도 계시고, 중국 법지(法持) 선사는 제자인 지위(智威)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를 새와 짐승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고 유언한 후 입적을 하셨지요. 조선시대 일선(一禪) 스님도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산에 내다버려 짐승들이 뜯어먹게 하라’고 유언을 하셨단 말이지요. 또 중국의 혜안(惠安)국사도 ‘내가 죽거든 숲 속에 놓아두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다 자비심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 자비는 베풀지 못할망정 짐승을 죽이겠다고 나섰으니······. 헛!”

주지 스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처럼 나무관세음보오살, 하고 중얼거렸다.

“스님에게 꾸중을 듣고 나니까 후회가 되는 모양이군.”

암자를 벗어나서 길인지 야산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산길을 더듬더듬 걸어 내려가면서 그녀가 놀리듯이 말했다.

“솔직히 스님의 말씀이 옳지 않습니까.”

나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나서 잠시 흙구덩이로 파묻히는 소떼들을 떠올렸다. 세상은 그 난리를 떨고 있는데도 산 속에서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동물들을 죽이는 사냥에 동행했던 나였다.

“멀쩡하게 살아온 걸 보니 용감하요!”

베이스캠프인 캠핑카 보리호에 도착하자 타잔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산신령이라도 만난 게로구먼.”

황대장이 흰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정말입니다. 산신령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얼어 죽을 뻔 했습니다.”

내가 간밤에 일어났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자 다들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밤새 퍼부어 내리던 하늘은 말짱 개어 있었다. 온 땅을 눈으로 뒤덮게 했던 하늘이 이제 눈부신 햇살로 가득 찼다. 따끈한 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나자 황대장이 지금까지 잡아놓은 멧돼지들을 운반하자고 재촉했다. 차량으로는 위험천만했으므로 다들 도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잡아놓은 멧돼지를 어떻게 찾지? 눈이 워낙 쌓여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겠다니까.”

소형 쌍안경을 호주머니에서 꺼내든 황대장이 여기저기 산 계곡을 훑어보다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잡아놓은 산신령이란 멧돼지를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눈이 쌓인 산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가 힘든 판이어서 멧돼지를 묻어두었던 계곡을 찾아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성 싶었다. 쌍안경으로 여기저기 훑어보던 황대장이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영감님께서 아무래도 앞장을 서주셔야겠습니다.”

“그렇게 헙시다. 다들 나를 따라오는 기요.”

노인이 신발을 고쳐 신고 걸어 나갔다. 차량을 움직이기란 엄두를 낼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다들 도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이 아니었더라면 산신령이란 멧돼지를 잡지도 못했을 것이고, 잡아놓고도 가져오지 못할 뻔한 일이었다.

“죽자사자 잡아놓고 그 녀석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세를 닷돈어치나 할 일이제.”

이번 사냥은 순전히 노인의 경험과 기지로 성공한 것이어서 마지막까지 노인을 믿는다는 듯 타잔이 내게 밝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나 막상 계곡으로 내려가서 그 산신령이란 녀석을 찾아냈을 때였다. 이번엔 운반이 문제였다. 전혀 경험이 없는 내가 지켜보아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지프라도 있으면 예비타이어 위에 턱 걸쳐가지고 쉽게 내려갈 수도 있으련만 아무리 생각해도 막고 품을 일이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구만.”

타잔이 왼쪽 허리에 꽂은 칼을 뽑아들더니 어깨보다 굵은 소나무의 밑동을 여러 차례 내리쳤다. 두 개의 긴 통나무로 들것을 만든 다음, 멧돼지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제각기 묶었다. 그러나 정작 그 육중하게 생긴 멧돼지를 짊어지고 내려갈 사람은 황대장, 타잔, 베레모사내 뿐이어서 결국 나도 합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나는 속으로 기가 막혀서 울부짖었다. 나는 자꾸만 멧돼지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아파오는데도 그들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좋아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냥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지만 나는 죽을 맛이었다. 산신령을 옮기고나서 다시 그 다음 날 잡아놓은 멧돼지까지 운반하고나서야 사냥은 끝이 났다.

“다리나 한쪽 주지 뭘 한 마리씩이나······.”

노인에게 나중 잡은 멧돼지 한 마리를 선사하자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마을 분들과 나눠 드십시오.”

타잔은 노인과 악수를 하며 퍽 선심을 쓰는 척 하였는데, 나는 그의 웃음에서 처음으로 넉넉한 여유와 행복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사냥의 즐거움을 꿈을 꾸듯 뇌까렸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사냥보담 더 멋진 일이 천지에 또 있을까. 산에서 뛰놀고 달리는 짐승들을 잡는 재미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꿔줄 수가 없제. 숨 막히는 빌딩 속에서 인간들을 향해 사냥하는 사람들 보담 대자연 속에서 진짜 사나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내 대장부제.”

그는 그러다가 문득 운전하는 내 옆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몹시 강렬했다.

사냥해보는 맛이 워쪄? 사냥을 하다보니 동굴 속에서 하룻밤 보내기도 하고, 사육하는 짐승이 아니라 살아서 깊은 산, 낮은 산, 높은 산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짐승을 잡는 재미가 워쪄냐구? 세상에 널려진 짐승들은 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우리가 취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이런 세상을 함께 살아보자구.

노인과 헤어진 후 타잔의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짧은 겨울 해는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 어둠이 쫙 깔렸다.

그 때 갑자기 총소리가 들려왔다. 차를 멈추고 밖을 내다보니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고랭지 배추밭 이곳저곳을 비추고 있었는데, 고라니 한 마리가 총을 맞고 쓰러지고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추를 아삭아삭 씹기 위해 눈을 헤치고 내려왔다가 인간의 손에 그만 숨통이 끊어지는 고라니였다.

총소리는 거듭 들려오고 있었다. 이번엔 드넓은 콩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뛰어보는 고라니였지만 밭둑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픽 쓰러지고 말았다.

“아악!”

쓰러진 고라니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온 몸을 떨다가 이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인간과 짐승의 한 치 양보 없는 대결이군.”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역시 사냥은 카섹시스야.”

요 며칠간의 일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두 눈을 살포시 감아 보이는 그녀였다. 그녀는 이번 사냥에서 총 한 번 쏘아보지 못했으면서도 살육의 현장을 만끽했던 모양이었다. 나무와 돌,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야수와 폭력의 모습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 오라버니가 해년마다 사냥하는 것으로 활력과 생기를 찾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어.”

그녀는 뭔가 확신이라도 했다는 듯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리기까지 했다.

“사냥은 선사시대부터 남성만의 전유물이었지. 선사시대 동굴 미술에서도 황소와 남자 사냥꾼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그녀는 동굴 미술에서 사냥꾼과 사냥감을 말하고 있을 때 바로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그림의 시작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타잔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캄캄한 밤인데도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잡아온 멧돼지를 서둘러 해체작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먹는 일이군.”

그랬다. 털을 벗겨낸 멧돼지는 차라리 백옥이었는데, 이윽고 칼을 사용해 목이 잘려나가고 갈비뼈가 도려지고 있었다. 무쇠칼이 아닌 창끝처럼 작고 뾰족한 칼이었다.

한쪽에서는 연탄 불살개를 여러 개 포개 고기를 익히고 있었다. 베레모 모자가 익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더니 감탄사를 연발했다.

“죽여주는구만! 기름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으니 원. 우리 법능 선생님도 한 점 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