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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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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자
장여옥(수필가/ 광주주월교회 장로)

왜 이러지 ······ .

언젠가부터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다. 새아침을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맞는다. 안과를 찾았다. 건조증이라는 병명으로 간단하게 처방을 해준다. 그러나 눈은 조금도 편안하지 않는다. 또 다른 안과를 찾는다. 결국 전국의 안과 병원을 쇼핑하게 되는 현실이 되었다.

종합병원 신경외과를 찾아서 MRI검사를 했다. “이상 없음으로 나온다. 한편,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를 하면서도 마음은 망연하다. 이제는 한의원을 수 없이 찾아 다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락을 만져 치료하는 곳을 2년이 넘도록 다녔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도 그만 두고 싶었다. 학생들 앞에서 책 읽기가 무척 힘들다. 되도록 학생들을 등 뒤로 위치하게 하는 자세로 수업을 진행했다. 남편에게 강의를 그만두고 싶다고 의논을 하자, 집에만 있게 되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라며 거절한다.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추락했다.

눈을 통해 내 인생이 추락해버리는 현실이었다. 왜 이럴까? 하나님께 30대 후반부터 매일 저녁 눈가에 아이크림을 바르면서 하나님! 저는 책을 참 좋아합니다. 70살까지 돋보기 쓰지 않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다. 주위에 돋보기를 사용하여 책을 읽는 분들이 두통 등을 호소하는 경우를 가끔 보았다. 그렇기에 지혜를 동원하여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다.

결혼을 하여 두 자녀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대학원에 입학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께서 권유해주신 국문학을 전공하게 됐다. 고교시절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외에는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신학대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 목회자의 길은 나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길은 온유함이 바탕이 되어야 되는데, 난 불의함을 참지 못한다. , 성급한 베드로를 닮은 성격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성격을 새롭게 다듬어 쓰신다는 사실이다.

고교시절 선생님들의 권유를 뿌리치며 돌고 돌아서, 40세가 되어 대학원 국어국문학을 전공 한 것이다. 푸르른 창공을 맘껏 나는 한 마리 파랑새처럼 행복이 충만하여 공부를 했다. 평소에도 강의 듣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대학원 수업은 즐거움을 노래하게 했다. 이어서 박사과정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부터 눈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저녁마다 하나님께 드렸던 눈에 대한 기도가 무색한 형편이 됐다.

대학에서 강의 평가가 추락하던 다음 학기에는 마음을 추슬렀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지구상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은 서핑 선수가 파도를 이용하듯, 장애를 극복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을 올리며, 비장애인에게는 희망과 도전을 선물하기도 한다. 난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러한 결단은 강의평가가 정상의 궤도로 돌아왔다.

눈이 힘들어서 늘 쉼을 얻고 싶었지만, 나의 일상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신앙이 연약한 언니는 네가 일이 많아서 피곤하니, 새벽예배라도 쉬어라.”고 권한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고교시절부터 누렸던 새벽시간이다. 한 가지도 나의 삶의 지경에서 밀려날 수는 없었다. 몹시 아픔가운데도 중고등학생들과 해외단기선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리고 우리교회 창립 58년 만에 여 장로 1호로 안수를 받게 됐다. 이어서 박사학위논문이 통과되는 날까지 왔다.

묘안을 만들어냈다. 아픈 눈이 표가 나지 않도록 항상 미소로 포장을 해 버리자. 그동안제자들은 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항상 웃는 모습의 교수님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고교 시절 안이숙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서적을 읽고 많은 도전을 받았었다. 그 분은 감옥에서도 그리스도인의 향기와 빛이 드러났다. 난 그 때부터 하나님! 저에게도 항상 선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드러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눈이 아픈 언젠가는 큰 딸이 엘리베이터의 거울 앞에서 엄마의 미소가 참 예뻐서 눈이 아픈지를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나의 아픔이 잘 포장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그동안 눈이 낫기를 원했던 간절한 기도를 끝내기로 했다. 내 눈은 지금처럼 나와 함께 하자. 하나님께서 교만 할 수 없고, 잘난 체 할 수 없도록 주신 병이다. 항상 바보처럼 미소 지으며 살자. 이러한 결단을 하고 난 시점이 분명하다. 시나브로 아파왔던 눈이 이제는 시나브로 좋아지고 있었다.

오늘은 나의 눈앞에 신세계가 열렸다. 어제 왼쪽 눈 백내장수술을 하였다. 하루 밤을 안대로 가린 후 오늘 떼어내니, 어지러움을 일으킬 만큼 온 세상이 맑고 밝다. 지천명이 지난 지금에 돋보기를 쓰지 않고 책을 보는 현실이 참으로 행복하다. 물론 눈이 아플 때에도 돋보기 없이 많은 책들을 보며,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지금은 그동안 썼던 안경을 버릴 수 있는 시력이 나온다.

하나님은 8년에 걸쳐서 나의 기도에 응답 이상에 응답을 해 주셨다. 나의 삶을 좀 더 겸손하게 하셨으며, 전능하신 주님을 체험토록 하셨다. 아픔을 함께 안고 가고자 하는 순간부터 주님의 섬세한 계획 가운데 치유하심과 만지심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도하기가 놀라 우리만큼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뒤돌아보면 가장 멋지게 응답해주신 주님을 보게 한다.

장여옥 수필가약 력 : 강진군 옴천면 출생

광신대학교, 동신대학교 출강.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모란촌문학동인회 회장 역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광주주월교회 장로.

6회 활천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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