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위원회의 조직을 정비하다
여수시, 국무총리실, 해양수산부와 외교부 등 모두 13개의 기관에서 파견된 유치위원회는 처음에는 오합지졸의 조직이었다. 기강에도 문제가 있었다. 유치위원회의 기강을 잡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도록 만드는 김재철의 리더십에 대해 정찬용은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기업이든 공직이든 일단 일을 맡은 김재철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해나가는지를 잘 모르는 제3자의 눈에 비친 모습이 흥미롭다.
“김재철 위원장은 초기에 위원회 기강을 세우고 조직에 열정을 불어넣는 데 전력했다. 약속대로 월 1회는 언제나 회의에 참석했고, 잘못된 것을 보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직원들이 대충대충 하는 모습을 보이면 반드시 추궁하고 시정을 시켰다. 형식적으로 위원장을 맡은 것으로 생각했던 직원들 가운데는 혼쭐이 난 사람이 많았다. 매우 과학적이고 치밀한 분이어서 계획을 엉성하게 잡으면 올바르게 수정하도록 했고, 전략적인 틀은 직접 당신이 감수한 뒤 확정짓도록 지시했다. 그는 엄정한 분이었다. 맹장밑에 약졸은 없는 법이다. 모래알 같았던 조직에 영이 섰다. 분위기도 달라졌다. (…) 김재철 위원장은 자신이 먼저 20억 원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100여 억 원의 기금을 금방 모았다. 외교부 대사 출신 사무총장도 뽑았다. 또 나와 같이 일할 분으로 상임위원 두 사람도 위촉했다. 행정의 달인이라 할 이만의(전 환경부 장관)와 대외적 업무를 수행할 김항경(전 외교부 차관)이었다. 위원장과 상임부위원장, 상임위원 2명, 사무총장, 직원 40명으로 조직을 갖췄다.”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유치위원장 승낙한 6월 이후, 김재철은 집안에 큰 우환이 생긴다. 건강하던 부인이 8월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짐으로써 이후 7년간 힘든 투병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다.
여러 번 고사하기는 했지만, 그는 여수세계박람회는 보기 드문 기회라고 인식했다. 위원장을 맡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도 그가 평생을 가져왔던 신념, 즉 “우리 국민들이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수엑스포 유치에 자신이 발 벗고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여수에서 세계엑스포를 열면 부가가치가 얼마며 고용인원이 얼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보다는 여수엑스포가 우리 국민이 바다를 제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역사적으로 봐도 우리 국민은 바다로 나갔을 때는 발전하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쇠했다. 육당 최남선은 우리 국민이 바다를 잃은 후 왜소해지고, 가난하고 질투심 많은 소아가 됐다며 우리를 일으킬 사람은 바다에서 오는 자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고, 제곱미터 기준으로 70퍼센트가 산악지대일 정도로 경작 면적이 적다.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우리가 해방 후에 오늘날 이만큼 잘살게 된 것도 적극적으로 바다를 개척한 결과다.”
유치전을 승리로 이끌다
“일단 뛰어들면 이겨야 한다.” 김재철의 강인한 승부 근성이다. 젊은날부터 그렇게 단련이 되어 있었다. 유치전 또한 그에게는 하나의 승부였다. 마침내 그는 2006년 5월 30일에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무역협회장을 그만두고 난 지 3개월 후의 일이다. 당시 유치 경쟁국인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나 모로코의 탕헤르에 비해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폴란드는 유럽연합 36개국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중동 이슬람 국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국가들을 움직여서 지지세력을 넓힐 가능성이 높았다.
2006년 11월 미주지역 유치단 파견을 시작으로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김재철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유치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비롯한 삼성, LG, SK, 한진 등 최고경영자들로 구성된 유치위원들과 함께 회원국을 방문한다. 물론 회원국의 대표가 표를 던지기 때문에 재외공관들의 활동이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도 유치위원들은 비행거리만 해도 지구의 42바퀴를 돌 정도로 열심히 뛰었으며, 김재철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유치위원회를 이끌면서 유치전을 펼쳤다. 그 결과 2007년 11월 26일 파리에서 열린 제 142차 국제박람회사무기구 총회에서 2012년 세계엑스포 개최지로 여수가 결정되었다. 최종 표결 결과는 여수 77표, 모로코 탕헤르가 63표였다.
필자는 여수가 유치전에서 승리한 요인이 무엇일까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물론 세계의 분위기가 우호적이긴 했지만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적임자들을 뽑아서 전진 배치시켰기 때문이다. “CEO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어야 한다”라는 한 문장에 유치전 성공의 비결이 숨어 있다.
유치전의 핵심을 꿰뚫다
“문제 해결의 맥을 잡아라!” 김재철은 무엇을 해야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국가를 움직이는 일는 개인의 친분관계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득표전의 최일선에 있는 야전군은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관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공관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내고 김항경 차관을 선택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김재철은 그가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지원했다.
“올림픽을 유치하는 일과 엑스포를 유치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국가유치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친분으로는 안 됩니다. 공관들이 열심히 뛰어야 해요. 그 사람들을 열심히 뛰도록 만들기 위해서 김항경을 해외 전담 상임위원으로 그리고 이만의를 국내 문제에 전담하는 상임위원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위원장과 정찬용 상임부위원장, 상임위원 2명, 사무총장과 직워 40명으로 조직이 재정비되어 출범하게 됩니다. 사람을 뽑고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특히, 유치전 승리의 첨병인 재외공관이 최고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적임자와 후방 보급부대에 해당하는 유치위원회의 조직을 깔끔하게 이끌 수 있는 인물을 배치시킨 일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최고경영자가 되면 그가 수행해야 할 임무는 업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전진 배치시키는 일이다. 평생 동안 조직을 이끌면서 갈고닦은 실력이 유치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한편,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에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국가를 설득하는 일에서도 성과를 거둔다. 여러 측면에서 보면 그의 사업 인생에는 항상 크고 작은 목표가 있었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해야 했다. 여수엑스포를 유치하는 일도 국가를 설득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늘 ‘성공의 결정적 요인’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도 승리하지 못할 때는 이 점에서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재철은 2008년 2월 22일에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다. 아래 등급인 국민훈장 모란장은 이미 1998년에 받은 바 있다. 또한 김재철은 건실한 기업활동을 통해 수출 증진에 기여함으로써 기업인이 받을 수 있는 산업훈장 가운데서 금탑산업훈장 (1991), 은탑산업훈장(1986), 그리고 동탑산업훈장(1982)을 모두 받은 바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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