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용혈암 4
“어야, 동생아! 으흑흑흑. 그래, 무엇이 부족해서 떠났는가? 무엇이 성가셔서 떠났는가?”
그가 돗자리가 깔아진 바닥을 내리치며 울부짖기 시작하자 베레모 사내가 얼른 다가가더니 일으켜 세웠다.
“와따, 형님. 이런다고 격포 형님이 살아나시것소. 나갑시다. 나가서 장례 대책도 세우고 그럽시다.”
“동생아! 동생아이! 동생이 좋아하는 사냥은 더 이상 못하게 됐구마이. 온 산천을 말처럼 뛰어댕기등마는 으띃게 차디찬 흙속에서 홀로 지낼 수 있으까이.”
그러나 황대장은 베레모사내의 손에 이끌려 접대실 밖으로 나가면서도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해저처럼 무거운 공기만이 가득 찬 빈소가 그의 울음소리로 인해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그 때였다. 노파 한 사람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빈소와 접대실을 왔다갔다 가며 독기가 선 눈을 두리번거렸다. 노파는 타잔의 어머니였다.
“이년, 어디 갔으까? 지 서방 잡어묵은 년!”
타잔의 회진댁을 찾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여강을 보고 대뜸 소리쳤다.
“네 올케언니는 여그 안 왔냐?”
“어머니. 제발, 조용히 좀 하세요.”
“내가 시방 조용히 하게 생겼냐? 내가 오늘 그년하고 사생결단을 낼란다.”
노파의 입에서 게거품이 일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노파는 빈소 옆 휴게실의 문을 벌떡 열어젖혔다. 하지만 그 곳에 회진댁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냐, 지 서방 쥑여놓고 인자는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구나. 하기사 여그가 어디라고 지 발로 들어와!”
노파는 영정을 끌어내리더니 손바닥으로 타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열했다.
“어머니. 제발 진정하세요.”
여강이 거듭 만류했지만 한참동안 눈물바람을 내던 노파가 갑자기 뚝 그쳤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던가. 회진댁이 슬그머니 빈소로 들어섰다가 그만 노파와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 노파의 두 눈이 번쩍 뜨여지면서 회진댁의 멱살을 다짜고짜 움켜쥐었다.
“오냐, 네 이년! 서방 쥑여놓고 무슨 염치로 이곳에 나타났냐?”
그러나 회진댁은 전혀 대꾸하지 않은 채 노파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날 잡아먹든지 알아서 하라는 무반응으로 대하자 노파는 더 분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다 알아봤다. 병원 직원들 둘이 밤중에 쳐들어와갖고는 술 묵고 잠자는 놈 수갑 채워갖고 정신병원에 델꼬 간 줄 내가 모를 줄 아냐?”
회진댁은 어이가 없어 그 와중에서도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토당토 않는 억지소리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만 것일까.
“웃어? 아나 이년, 더 웃어 봐라!”
노파가 머리채를 낚아채려다가 여의치 않자 그만 뺨을 여지없이 내리치고 말았다.
“서방 죽인 년이 낯짝도 두껍게 웃어?”
“오매, 엄니!”
회진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허리를 꺾었다. 보다 못한 여강이 노파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어머니. 제가 그렇게 하자고 했으니 이제 그만 하세요.”
“세상에 지 오라비 정신병원에 가라고 부추긴 동생도 있다더냐?”
“그럼, 어떡해요.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간다는데······.”
“저 년이 바람 피는 것은 죄가 안 되고, 몇 대 줴박은 것은 죄가 된다더냐? 지 잘못한 것은 생각 않고 지 서방 쥑여놓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것구나.”
노파는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다시 사진 속 타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넋두리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기 시작했다.
“시상에나 마상에나······. 내가 너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디 이 무슨 날벼락이라냐? 어이구, 어이구. 어쩌다가 저런 몹쓸 년 만나갖고 목숨까장 끊은다냐? 불쌍하고 또 불쌍한 내 아들…….”
노파의 한바탕 소란으로 문상객들은 하나 둘 빠져나가더니 이제 정작 남은 사람은 황대장과 베레모 사내뿐이었다.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얼굴이 붉게 물들어졌는데도 그들은 밤샘을 할 모양이었다. 주방을 보던 동네 아주머니가 닭죽을 펄펄 끓여 속풀이라도 하라는 듯 건네자 그들은 남김없이 먹었다. 역시 살아있는 사람은 먹어야만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의 모든 주도권은 회진댁이 알아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엄연히 망자의 아내요, 망자와는 촌수도 없는 무촌의 관계임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망자의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장례는 그녀의 의도대로 화장으로 치러졌다.
화장장은 지방도로에서 한참동안 들어간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마을을 벗어나 이 산 저 산 산뿌리까지 채워진 저수지를 돌고 돌아 양지바른 곳에 있는 화장장은, 그러고 보니 그 뒷산에서 예전에 멧사냥을 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타잔의 장례를 마치고 삼우제까지 지내고나자 그날 밤 황대장과 베레모 사내가 나를 불렀다. 그들은 미리 약속 장소에 나타나 나를 기다리면서 지루했는지 안주를 시켜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일루 앉으시오. 바쁜 양반을 불러서 미안하구만요.”
황대장이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수척해진 것으로 보아 타잔의 죽음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삼우제는 잘 지냈당가요?”
내가 자리에 앉자 대뜸 황대장이 축축한 눈길을 건네며 물었다. 그는 마치 내가 타잔의 식솔이나 되는 것처럼 전후 사정을 묻는 것이었지만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자자, 우선 술부터 한 잔 하면서 천천히 얘길 나눕시다.”
그가 새 안주 하나를 더 시키고 나서 내게 술을 권해왔다. 나는 그가 권한 대로 천천히 한 모금 목에 털어 넣었는데, 아무래도 갑작스런 타잔의 죽음에 대해 이모저모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니까, 죽은 사람만. 산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살아가니까 말이여.”
그러나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결론부터 내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누가 타잔 형님을 정신병원에 가뒀답니까? 그 멀쩡한 사람을······. 미치지도 않는 사람을 거기다 처넣었으니 미쳐불 것이 아니것소.”
베레모 사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결국 그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왔다. 차라리 총기 사건으로 인해 감방에 갔더라면 스스로 목숨만큼은 끊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격포가 언젠가 내게 와서 하소연을 하드라고. 애 엄마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디 괴롭다고 말여. 그래 내가 물었지. 현장을 봤느냐구? 그러나 격포는 고개를 흔들드구만. 그렇지만 애 엄마가 자복만 하면 용서를 할 것 같은디 전혀 뻣뻣하게 버틴다고 말여.”
그 때 나는 회진댁이 그 남자와 함께 굴참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그들은 폭격을 피하는 사람처럼 잽싸게 그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아보니까 가족 중에서 두 사람이 도장을 찍어야만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가 있다는디, 그렇다면 결국 여강이 그 일을 거들었다는 것밖에 안 되는디······.”
황대장이 그 일이 사실이지 않느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야 오라버니가 감옥에 가게 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 방법을 쓴 게 아니었을까요? 제가 그 집 가족도 아니고 다만 식객에 불과한 처지여서 자세한 내막은 모릅니다.”
내 말에 황대장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4년 전 쯤 멧사냥을 갔을 때였소.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갑자기 내가 넘어지면서 그만 방아쇠를 잡아당겨 버렸소. 앞을 걸어가던 격포가 꽝하는 총소리와 함께 픽 쓰러지면서 가슴과 다리에서 피가 줄줄 새는데, 얼마나 놀랐것소. 다급한 나머지 가슴에서 줄줄 새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죽어서는 안 돼!’하고 부르짖고 있는디, 격포가 하는 말이 걸작이었소. ‘형님, 혹 내가 죽더라도 내가 오발해서 이리 된 것이라고 말하시오. 그동안 내가 짐승들을 많이 잡다보니 죄를 받아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부다 생각할 텐께요.’ 이러는 것이었소.”
어느 틈에 황대장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 때 곁에 있던 베레모 사내가 황대장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따, 형님이 옛날 얘기를 끄집어내니까 자꾸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
황대장이 말을 이었다.
“나는 살다보니 살인자가 되는가 싶어 천 길 땅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소. 119차에 실려 병원으로 급하게 가면서도 일체 내가 그랬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격포 동생이었소. 병원 의사한테도 자신이 넘어져서 오발한 것이라고 말했던 격포였는디, 하늘이 도왔는지 다행히도 갈비뼈가 맞아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평생 은인처럼 생각해 온 격포가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고 나니 내 마음이 어쩌것소.”
황대장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제7장 나는 산도 무너뜨릴 수 있다
월남사 준공식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월남사 대웅전 앞에는 양쪽으로 화환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사부대중이 경내에 가득 찼다.
천수 스님은 대웅전 앞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분이 마냥 좋은지 시종 웃으며 오는 사람마다 악수를 하거나 합장을 해 보이는 천수 스님의 얼굴은 하나의 달덩이였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삼라만상을 비추는 달덩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거동은 뭐랄까, 5월 만개한 모란꽃 같다고나 할까? 그만큼 그의 모습은 화려함 그것이었다.
“어서 와. 내 올 줄 알았지.”
천수 스님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축하드립니다.”
“법능 화사가 잘 그려줘서 법당이 환해졌어. 신심이 절로 나는 탱화가 아니던가.”
그는 내 손을 잡고 흔들기까지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뭔가 한 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문 채 대웅전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번 천수 스님을 만나고 돌아가던 길에 만났던 월남사 전 주지 목암스님이었다. 그 스님과 함께 용혈암을 갔던 때가 떠올랐다.
“법능 화사님, 오랜만입니다.”
“오늘 준공식 및 점안식 때문에 오신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서 저 아래 용혈암엘 들렸더니 별스런 화가가 있습디다.”
“별스런 화가라니요?”
목암 스님은 뜻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화사님도 그림을 그리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용혈암 동굴에 벽화를 그리겠다고 나타난 여자가 있더라구요.”
동굴에 벽화를 그린다니?
문득 여강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타잔 일행을 따라 멧사냥을 갔을 때 동물벽화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는데, 쇼베 벽화를 보고 전문가들은 ‘선사시대의 레오나르드 다빈치’라고 경탄해마지 않았다고 했고, 스페인의 선사시대 동굴을 일컬어 ‘시스티나 성당’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했었다. 나는 그녀의 동굴벽화의 지식에 주눅이 들었고 법문을 듣는 느낌이었는데, 어쨌든 그녀가 동굴벽화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 그녀의 이름이 박여강 씨가 아니던가요?”
“아, 네. 자기를 소개할 때 박 여강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춘 채 다시 물었다.
“그래요? 그럼 백련사에서 용혈암 복원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승낙이라도 받고 하는 걸까요?”
“제가 듣기로는 승낙을 받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름을 아시는 걸 보니 서로 아는 사인가 봅니다.”
“네, 조금.”
갈수록 미궁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승낙을 받고 안 받고도 문제였겠지만 동굴의 벽면이 매끄럽거나 고루지 않고 우둘투둘했는데 어떻게 벽화를 그리고자 했을까?
“이해가 쉽게 가질 않습니다. 설마 끌과 망치로 벽화를 그리겠다는 것은 아닐테고,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리겠다고 했습니까?”
나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엉뚱하고도 생경한 발상에 얼른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설마 이름 있는 성지에 발칙하고도 불경스러운 벽화를 그리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녀는 바보부처를 그리겠다느니, 아니면 농사꾼부처, 어부부처, 공무원부처를 그리겠다고 발칙하면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말을 해오지 않았던가.
“궁금하시다면 제가 설명을 드리는 것 보다 직접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좌우지간 가서 보시면 놀랄 것입니다. 소승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좀 보아왔습니다만, 별쭝나고도 고생스럽게 동굴벽화를 그리겠다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이윽고 월남사 준공식이 시작되었다. 천수 스님을 위해 사부대중이 모인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모든 행사는 천수 스님에 대한 찬양일색이었다.
그런데 분명 대웅전과 해월루 등 단청을 도맡은 환희의 얼굴이 행사 내내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감사패 하나는 받는 게 행사의 요식이기도 해서 그녀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환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남미륵사에서 있었던 만불전 준공식과 관음전 준공식이 자꾸만 떠올랐다.
준공식 날짜에 맞춰 남미륵사에 도착했을 때 환희도 와 있었다. 그녀는 청바지 차림으로 만불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내가 그린 지옥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또 뵙군요.”
“감사패를 준다기에…….”
“저두요.”
그런데 지난 번 관음전 단청을 할 때와는 달리 얼굴이 무척 수척해 있었다.
“얼굴이 몹시 야위었군요. 무슨 일이라도?”
내 말에 그녀는 그저 쓸쓸한 미소만 지을 뿐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는데 불쑥 그녀가 물기 머금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끝내 단청값을 받지 못했어요.”
그녀는 잠시 남미륵사 앞으로 흘러가는 강물줄기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긴 뱀처럼 흘러가는 강물 위로 가을 햇살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강물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은 질펀한 들판이었는데, 모내기를 앞둔 논들이 물을 가득 채우고 강바람에 잔 이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떤 스님이 단청불사를 하겠다고 해서 한 달 가까이 일을 했었지요. 그런데 일이 끝나자마자 못주겠다고 버티는 거예요.”
“부도를 냈습니까?”
“부도까지는 아니구요.”
“금액이 많을텐데요.”
“어차피 제가 여러 화공들에게 지급해야할 인건비지요, 뭐.”
“그 큰 금액을 어찌하려구요?”
나는 목젖이 타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뜻밖이었다.
“언젠간 주겠죠, 뭐.”
“그러다가 끝까지 안 주면 어찌 감당하렵니까?”
그녀는 내 말에 씩 웃으면서 말했다.
“결국 부처님을 위한 일이니까 받고 안 받고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겠죠.”
나는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억대의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는, 더구나 그 금액이야말로 부처님을 위한 일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월남사 준공식은 남미륵사와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웅전 앞에서 군수, 군의회의장 등 각계 관관단체장과 가까운 사찰의 주지 스님들이 나란히 서서 테이프커팅을 하고난 후, 천수 스님의 인사말과 군수, 군의회의장의 축사로 간단히 준공식을 마쳤다.
그런데, 월남사 준공식이 끝나자 찾아온 손님들을 대하기도 바쁠 천수 스님이 날 불렀다.
“그냥 헤어지면 안 되지. 나랑 차 한 잔이라도 하고 가야되지 않겠어?”
천수 스님은 내 어깻죽지를 한쪽팔로 감싸며 주지실로 안내했다. 좌정한 그가 찻물을 대우면서 차에 대해 설명했다.
“이 차는 일제 강점기 때 처음으로 만든 옥판차라는 차지. 월출산에 야생하는 야생차를 따서 만든 차라고 생각하면 돼.”
“잘 마시겠습니다.”
“이곳은 차의 성지여서 해년마다 봄철에 다신제(茶神祭)를 모실까도 생각하고 있어.”
천수 스님은 연이어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특별히 할 말도 없으면서 나를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 얘기는 누구한테도 해서는 안 돼.”
하고 먼저 비밀을 지켜줄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을까. 내가 알고 네가 알고 하늘과 땅이 알고 있는데, 어떻게 비밀이 지켜질 수 있을까. 내가 잠자코 있으려니까 천수 스님이 말을 이어나갔다.
“법능 화사도 그림을 그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세상에 아가씨가 절 한 귀퉁이에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 줄 모르겠더라구. 법능 화사도 그 얘기쯤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 아마? 무위사 벽화 이야기 말이야. 한 늙은 금어가 극락전 벽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그 금어는 이렇게 말했다지. ‘내가 벽화를 그리는 100일 동안 어떤 누구도 극락전에 들어오면 안 된다. 또 들어다보아서도 안 된다’라고 했어. 주지스님은 궁금했지만 참고 견뎠는데 마지막 날 그만 문틈으로 눈알을 들이대고 말았지. 그랬더니 놀랍게도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벽화를 그리고 있질 않겠나. 그 파랑새는 아마타삼존의 관음보살 두 눈에 점안을 마악 하려다가 주지스님의 눈을 발견하곤 밖으로 날아가 버렸어. 그 파랑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다나.”
천수 스님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바로 그 파랑새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님 피리를 부는 비천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법능 화사 같으면 무엇에 비유하고 싶겠어? 홀로 벽화를 그리는 아가씨의 모습이?”
“스님 말씀대로 한 마리 새처럼 보이겠지요.”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 뜸을 들이는가 싶어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영락없이 한 마리 새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녀는 다른 화공들을 다 보내고 나서도 사흘 동안 홀로 마지막 작업을 하더라구.”
천수 스님은 갑자기 천정을 쳐다보며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축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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