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정관웅 칼럼]한국 차 문화 지평을 여는 백련사 여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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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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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 칼럼]한국 차 문화 지평을 여는 백련사 여연스님
목포대학교, 24일 여연스님에 명예박사 학위 수여

차의 미덕으로 수행자로,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내재적 가치를 일깨우는 여연 스님

24일 오전 11시 목포대 70주년 기념관에서 열리는 '목포대 학위수여식'에서 우리 차()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는 여연 스님.

 

 

다문화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보면 수로왕의 제사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역사가 장구하기도 하다. 2천 년 동안 하늘은 물론이요, 돌아가신 선조나 가정의 각종 의례에 한 잔의 차를 신물로 썼던 존재는 지구상에 우리뿐일 것이다. 차다례는 오랜 옛적부터 우리의 생활 속에 뿌리 내렸던 기층문화로서 세계적 유산이다. 한잔의 차로 탄생을 축복하고, 하늘과 선조에게 제사했던 아름다운 양속이다.


<삼국사기>를 통해 제 27대 선덕여왕 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록과 고구려 벽화를 통해 서도 삼국시기의 차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즉 고분에서 발굴된 전차(錢茶)를 통해 볼 때 무덤까지 넣은 점으로 미루어 고분의 주인공이 생전에 차를 몹시 좋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차를 부처에 공양한 점을 통해서도 이때 차를 널리 음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차생활은 일본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데, <일본서기>에는 메이천황13년 백제의 성왕이 담혜화상 등 16명의 스님에게 불구와 차를 일본에 보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 <동대사요록>에도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가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되어 있다.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만든 음료를 차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율무차, 인삼차 등과 같이 곡류, 과실류, 식물의 잎··뿌리 등으로 만든 기호음료 전체를 칭하기도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차란 차나무의 잎을 말한다. 율무차는 탕에 속하는 것이다.
차나무는 식물학상 산차아목(山茶亞木), 산차과(山茶科), 차속(茶屬), 차종(茶種)의 종자식물로서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이다. 차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의 동남부와 인도의 아샘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종은 잎과 나무가 작은 관목으로 '중국 소엽종'이라 하고 추위에 강하고 녹차용으로 적합하다.
인도종은 인도와 중국 운남성 일부의 열대, 아열대에서 자라며, 잎이나 나무가 큰 교목으로 '인도 대엽종'이라 하고 홍차용으로 적합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나무는 모두 '중국 소엽종'으로 다 자란 경우도 2m를 넘지 않지만, 중국 운남성에는 높이가 30m나 되는 수령이 천년에 가까운 차나무도 있다. '중국 소엽종''인도 대엽종'은 전혀 다른 종류의 차나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염색체 수가 같으므로 세포유전학적인 차이는 없다고 한다.
차나무가 자라기 위해서 기후는 연평균 기온 13도 이상, 강우량은 연평군 1,400mm이상이어야 하므로 고온과 많은 비가 필수적이다. 녹차용 차는 좀 냉랭하고 안개가 짙은 지방에 적합하며, 고지대일수록 차의 수획량은 적지만 향기가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화개땅이 차나무가 자라는데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차의 기원에 대한 설은 중국 신농씨 때부터 음용했다는 설과 주나라 때부터 마셨다는 두 가지 설이 팽팽하다. 그러나 전한시대인 기원전 59년에 작성된 노비매매문서인 <동약>에 차를 끓여 즐겨 마셨다는 기록을 미루어 보아 적어도 한나라 때부터는 차의 재배와 음용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차를 음용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7세기 초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서기 48년 가락국 수로왕에게 시집오는 야유국 공주의 배에 비단, , 은 등의 패물과 함께 차나무 씨가 실려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신빙성 있는 기록은 흥덕왕 828년 사신이었던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었는데, 이때부터 차를 마시는 풍속이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에는 이미 대중화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각 시기별 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목포대는 초의문화제를 창립해 한국의 차를 널리 알리고, 국제 차 품평대회에서 차의 질을 감별하는 기준을 마련해 차 품질 향상에 기여하고 목포대에 차 관련 대학원 과정 '국제차문화협동과정' 신설을 도와 해당 분야 관련 학문으로 발전시킨 여연스님의 공헌을 인정해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여연스님은 "차를 하나의 전문 분야로 생각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고증하려했던 노력을 눈여겨 봐준 것 같다""수행자로서는 처음으로 차 관련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만큼 전통 차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의 차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여연스님은 지난 1948년 태어나 1970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에 해인사 혜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인도 다람살라 티베트 문헌도서관에서 수학하고 스리랑카 게라니야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서 근본불교와 팔리어를 연구했다.
이후 백련사 주지를 역임했고 불교잡지 '해인'을 도반들과 함께 창간해 편집주간을 지냈으며, 불교신문 논설위원 주간, 조계종 개혁회의 사무처장, 1112대 조계종 종회회원,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을 지냈다.
또한, 동국대 불교대학원 차문화컨텐츠학과와 ()차인연합회 다도대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하고 초의문화제 초의상과 부산여대 다촌상을 수상했다. 현재 강진군 백련사 회주, ()일지암초의차문화연구원 이사장, 한국차문화학회 창립 초대회장과 ()대한민국 차품평회 초대 이사장, 부산여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이야기삶속의 차 (1)를 보면

필자와 차()의 인연은 벌써 35년 가까워진다. 참으로 비릿하고도 아련한 생의 출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초의스님과 차는 마치 벼락치듯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먼 생의 출구에서부터 윤회의 물결과 인연의 흔적들이 내 생() 내면에 깊이 잠재했었던 것 같다. 갓 출가를 한 필자는 선방수좌들이 공부하는 남해 용문사에서 공부를 했다. 초겨울 추위가 절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원주스님을 감기에 들게 했다. 당시 남해는 남해대교가 없던 시골이어서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마땅한 약이 없어 고민을 하는 나에게 한 보살이 넌지시 민간담방약을 일러줬다. “지난겨울 안거 때 보니까 스님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후원 찬장에 있는 무슨 풀을 달여 마시고 몸이 낫는 것을 봤습니다.”

 

 

<여연 스님>

 

 

나는 급히 찬장을 뒤졌다. 보살의 말처럼 찬장 깊숙한 곳에 대나무가 그려진 푸른 통에 푸르스름하게 말린 아주 작은 풀잎들이 반통 넘게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질그릇 약탕기를 꺼내고 숯불을 지펴 그 풀잎을 전부 쏟아 붓고 부채로 부쳐 달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푹 삶은 그 풀잎국물은 농익다 못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녹색이었다.  

냄새를 맡아 보니 쓴 냄새가 코를 독하게 찌르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소중한 약은 약인 모양이다. 이렇게 독하게 쓴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내가 제대로 골라 달인 게 분명하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정성스럽게 체에 걸러보니 사발로 반쯤됐다. 나는 좋은 감기몸살약이라며 원주스님에게 드렸다. 단숨에 약사발을 마신 원주스님은 얼굴을 찡그리며 도대체 무슨 약이기에 이렇게 소태보다 쓴가.’라고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일을 자초지종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원주스님은 갑자기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여보게 행자 그 차가 얼마나 귀한 차인 줄 아는가. 큰 스님 공부하시는데 가끔식 드리려고 소중하게 보관해온 것인데. 그걸 전부 다 달이면 어쩌란 말인가. 자네는 차도 모르나.”

  도대체 매미 날개 같기도 하고, 감나무잎을 말려놓은 것 같기도 했던 이상한 풀잎들이 차인지 그 무엇인지 알기나 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쓸 만한 차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던 시절 한약으로 고았으니 얼마나 쓰고 어이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나의 차 생활의 첫 경험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뉘라서 차 한 잔의 깊은 맛을 헤아릴 수 있으랴. 잡것이 한번 스치면 차의 오롯한 진성(眞性)을 잃나니.”하며 한국의 다성 초의스님이 동다송´에서 노래한 이시가 내 삶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차는 이렇게 마치 천둥번개처럼 삶을 통째로 관통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차의 미덕은 어디서 오는가

강진은 차와 관련이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 왕실은 고려와 달리 초엽부터 왕실 행사에 차를 의례로 행하는 일이 적었으며, 일부는 형식만 남아 차를 쓰지 않거나 술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관례적인 차생활은 계속되고 의식도 격식화되었다. 궁중에서 지내는 모든 제사에 차례가 포함되어 궁중에서의 차례를 관장하는 기관으로서 골처럼 '다방을 내시원에 설치되었다.
귀족, 승려, 문인 사이에서 애용되던 차는 고려시대의 전통이 조선시대 초엽까지 계속되어 차를 즐겨 마셨다. 일반 평민 역시 차가 생산되는 지방을 중심으로 기호음료로서 애용되었다

귀족, 승려, 문인 사이에서 애용되던 차는 고려시대의 전통이 조선시대 초엽까지 계속되어 차를 즐겨 마셨다. 일반 평민 역시 차가 생산되는 지방을 중심으로 기호음료로서 애용되었다. 그러나 불교 배척으로 차를 가장 만힝 소비하는 사원의 재정사정이 곤란해지면서 차의 증산은 물론 사원 주변에 있던 많은 차밭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사원이 산속으로 쫓겨나 차생활의 명목이 이어졌던 사원과 평민 사이의 교류가 적어지므로서 차를 즐기는 인구도 줄어들었다.
결국 조선 시대에는 차의 저변 확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나마 남녘 사원에서 적으나마 차가 만들어져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에 19세기에 이르러 다시 차가 성행하였는데, '다도'라는 용어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당시 차를 중흥시킨 인물로서 정약용과 초의선사, 김정희 등을 들 수 있다. 정약용은 강진의 유배 생활 중 차를 즐기기 시작하여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 칭하고 차와 관련한 많은 시를 남겼다. 또 강진을 떠나면서 제자들과 함께 '다신계'를 조직하기도 했다. 초의선사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도 통달하여 당시의 석학과 교류하면서 <동다송><다신전>을 지어 우리 차의 우수성을 주장했다. 초의선사와 많은 논쟁을 벌였던 추사 김정희 역시 유배생활을 차로 달래면서 차에 관한 많은 시와 일화를 남겼다.

차는 또 그 과학적 효능에 있어서 이 시대의 삶과 또 다른 동반자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도륭은 고반여사´에서 진짜 좋은 차는 갈증을 없애고, 음식을 소화시키며 가래를 제거하고 잠이 들게 하며, 소변이 잘 나오고, 눈을 맑게하여 머리가 좋아지게 한다. 식사가 끝날 때마다 차로 입안을 가시면 기름기가 말끔히 제거되며 뱃속이 저절로 개운해진다. ()사이에 낀 것도 차로 씻어내면 다 삭아 줄어들어서 모르는 동안 없어지기 때문에 번거롭게 이를 쑤실 필요가 없다.

이에는 쓴 것이 좋기 때문에 자연히 이가 튼튼해져서 충과 독이 저절로 없어진다.”고 적고 있다. 차는 또 모든 음식 가운데 으뜸이다. 단순한 으뜸이 아니라 희()()()()()() 등 인간의 모든 성정을 통칭해 으뜸이라는 것이다. 초의스님은 동다송´에서 모든 음식 가운데 차만이 홀로 육정의 으뜸이다.”고 격찬한다. 진나라의 뛰어난 문장가였던 장맹양도 정식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갖은 요리는 그 맛이 절묘하고 뛰어나네. 향기로운 차는 육정의 으뜸이어서 넘치는 맛이 천하에 퍼진다.”고 품평하고 있다. 신농은 또 식경´에서 차를 오래마시면 사람이 힘이 있고 뜻을 즐겁게 한다.”고 적고 있다. 음식중의 으뜸인 차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하루하루의 삶을 즐겁게 하는 약리적인 작용을 한다.

차는 만병지약(萬病之藥)이라는 말이 있다. 차가 실생활에서 약용으로 식용으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차의 강물은 여전히 깊고 멀다. 우리시대 문화코드로 새롭게 복원되고 있는 차는 우리시대의 삶과 문화를 바꾸는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오늘 우리가 차를 마시고 차를 생각하고 차를 곁에 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여연 스님의 차를 하나의 전문 분야로 생각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고증하려했던 노력들과 앞으로 전통 차의 이론화와 체계화, 문화 계승에 노력해 한국 차 문화 지평을 여는 것과 우리에게 우리시대의 삶과 문화를 바꾸는 깊은 인연으로 자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녹차

정관웅

색깔이 온다

은은하게 퍼져가는 차()향기

말할 수 없는 무늬가 있다

잔물결 일지 않게 그녀가 지나간다.

하얀 종아리가 눈길을 잡아끌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

가라앉지 않는 것

이미 심장은 멈춘 뒤다

웃고 있는 눈

울고 있는 가슴

이제는 멀어진 기억의 꽃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그렇다면 차의 미덕은 어디에 있는가. 명나라 도륭은 고반여사´(考槃餘事)에서 차는 행실이 바르고 덕을 닦은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음료다. 백석의 맑은 샘물을 길어 끓이는 절차를 법도에 맞게 하여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이 한결같이 계속하여 그 법식을 완전히 익히고 깊이 음미하여 정신이 융회하고 심취해서 제호나 감로에 비교할 만한 참다운 맛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서 다도를 휼륭하게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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